▲ 마츠리(祝祭) 때 일본 사람들이 메고 다니는 신여
나는 문차요비를 따라서 남산으로 갔다. 저 멀리 조선신궁이 올려다보였다. 내가 바라보는 때가 일제 강점기였다. 조선신궁으로 가는 길을 소화통이라 하였고, 미쓰부시라 불리는 백화점이 있었다. 그때 나의 나이가 7살이었고, 나는 백화점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남산 바로 밑에는 이제 내가 갓 전학해 온 남산초등학교가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며칠을 배우고, 충무로 3가 쪽에 있는 일신국민학교가 개교하자 그리로 옮겨가야 하였다. 내가 사는 집은 일신국민학교 아래쪽에 있는 적산敵産 건물이었다. 이 집은 3층인데 제약회사 건물이었다. 사루소부로카농이라는 이름의 관절염치료주사약과 보혈제인 포도당주사약을 만들고 있었다. 이 건물은 중부경찰서 앞에 있었고, 건물 앞은 골목이었고, 골목 앞에 집들이 1줄로 서있고, 그 앞은 인도였고, 인도 앞은 남산에서 내려오는 2차선의 큰길이었고, 길 건너에 중부경찰서가 있었다.
 
“저 건물을 잘 알지요?”
“잘 알아요.”
 
그 건물은 1.4후퇴 때, 누군가 방화하여 충무로 일대가 모두 불타버렸을 때 함께 불타서 없어진 건물이었다. 그런데 그 건물이 유령의 집처럼 서 있고, 이미 다 불타버린 북일식당이니, 신신약국이니, 신신다방이니, 과자점이니 하는 집들이 그대로 경찰서 건물 앞에 일직선으로 서있었다. 골목을 들어가면 평화여관이 있었다. 
 
“앞으로 나는 이곳에 거처를 정하고 있을 것이요.”
“저긴 내가 살던 집인데…….”
“당신과 함께 살자는 것이야.”
“나는 산 사람이고 당신은 귀신인데 이 없어진 집에서 어떻게 함께 산다는 것이에요?”
“내가 귀신이니까 홀로영화 1편만 찍으면 당신이 와서 나와 동거가 가능할 것이요.”
“동거요? 귀신과 함께요?”
“내가 비록 귀신이긴 하지만 나는 절세미인이요. 내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으면 내가 귀신이라는 것을 알아볼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요. 아마 나에게 반하여 혼이 나갈 사람들이 더러 있을 것이요.”
“그들을 반하게 해서 어떻게 하려고?”
 
나는 귀신의 마음을 알 수 없어서 걱정이 되기 시작하였다.
 
“귀신을 만드는 것이지.”
“귀신을 만든다고요?”
“그렇소. 당신의 첫사랑을 만나게 해 준 귀신도 나요. 당신의 첫사랑이 나를 만나게 해달라고 청원하여 내가 만날 수 있게 해 주었지.”
“내겐 첫사랑이 없었소.”
 
내게 첫사랑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내가 당신이 하는 말을 다케코에게 말해주면 다케코가 불같이 화를 낼 거요. 그러면 귀신의 본색을 드러내 당신을 괴롭히게 될 것이요.”
“귀신의 본색이요?”
 
나는 몸이 졸아드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당신이 어렸을 때부터 당신을 지켜보아 왔으므로 당신의 비밀을 하나하나 다 알고 있소. 잘 생각해 보시오. 내가 기억하는 당신의 첫 사랑이 누구인가를.”
  
나는 머리를 쥐어짜 보았으나 첫사랑이라고 할 만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없습니다.”
“아래 집에 살았던 예쁜 아가씨를 떠올려 봐.”
 
나는 아랫집에 살았던 나보다 1살 위인 죽자竹子를 떠올렸다. 그 여자아이는 나의 어릴 적 친구일 뿐이었다. 성격이 선머슴 같아서 나를 애완동물처럼 끌고 다녔다. 
 
“죽자라는 여자 친구가 있었소.”
“그 여자아이가 그대의 첫사랑이야.”
“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정말 아니라고 할 텐가?”
 
내가 또 아니라고 하면 무슨 사건이 일어나게 될지 모르므로 문차요비가 말하는 대로 수긍해 주었다. 
 
“앞으로 당신은 다케코와 자주 만나야 할 거야. 내가 그렇게 해 줄 것이니까.”
 
오랜 세월이 흘러간 지금, 나는 죽자에 대하여 아무런 감정을 없었다. 
 
“다케코가 오면 애정표시를 해 주어야 할 거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서운해 할 테니까.”
 
나는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였다. 
 
“당신이 살던 집에서 두 사람이 만난 기념으로 보물찾기 놀이하자.”
“이 집안에 보물이 숨겨져 있나요?”
“있지. 따라와.”
 
문차요비가 다케코를 부르자, 어디에선가 죽자가 나타났다.
 
“다케코, 이제부터 이 사람을 보호하라. 명령이다. 말을 안 들으면 혼을 내 주어도 좋아.”
 
나는 화가 났지만 꾹 참아야 하였다. 문차요비가 우리 두 사람을 데리고 내가 살던 집 지하실로 내려갔다. 지하실에는 약을 재어두는 창고와 또 제품의 원료가 든 통을 두는 방이 있었고, 또 다른 방 하나는 굳게 잠겨 있었다. 늘 잠겨 있어서 들어가 보고 싶었던 방이었다. 복도가 어두웠는데도 우리는 용케도 잘 찾아갔다. 문차요비는 3번째 방에 가서 내게 문을 열라고 시켰다.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문을 열었다. 문은 기다렸다는 듯이 스르륵 열렸다.
 
방안에는 신여神輿、어여御輿(みこし、しんよ)라 불리는 가마 1채가  치장한 장식품을 황금빛으로 번쩍번쩍 빛내며 놓여 있었다. 일본의 축제일에 조상신을 모시고 다니는 가마였다. 일제로부터 해방이 된 지가 언제인데, 가마가 아직도 보관되어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7월 17일 아침 일찍이 남산에 있는 조선신궁에서 일본의 남자들이 미코시를 메고서, 끌고 밀며 산에서 내려오면서 축제는 시작되었다. 미코시가 남산을 내려와 제약회사로 오는 것을 순행順行이라 하였다. 
 
“저 안에 어떤 조상신을 모시고 축제를 했는지 기억나지 않느냐?”
 
문차요비가 내게 물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나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저 안에 내가 타고 있었다. 그때 나는 너를 보았어. 다케코도 보았지.”
 
문차요비가 웃으며 말하였다. 그때 내 아버지는 제약회사 직원이었다. 나는 회사의 2층에서 부모와 죽은 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보일러에 조개탄을 넣어 불을 때었고, 2층에서 주사약병을 나무통에 넣어 살균하는 일을 하였다.(계속)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