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차요비와 선재동자
“내가 언제부터 여기에 서 있었는데 왜 이제 오는 거야?”
 
안중근 의사의 동상이 화를 내었다.

“내가 필요합니까?”
“그대는 내가 임명한 관리인이야.”
“내가 동상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과연 그럴까? 진짜 할 일이 없는 거냐?”
“그렇다니까요. 할 일은 시민이 뽑은 시장님에게 있겠지요.”
“그대가 놀고 있으니 내가 일거리를 하나 주겠다.”

나는 안중근 의사가 무슨 엉뚱한 일을 시킬지 몰라서 약간 겁이 났다.

“아베라는 자가 나를 폭력의 공포라고 말했다던데 사실이 그런가?”
“제가 마두나찰의 말대가리를 그의 머리에 씌어 놓았더니 트라우마가 생긴 모양입니다.”
“치유가 필요해.”
“앞으로 저는 안중근 의사님의 치유에 힘쓸 것입니다. 아베에 대해서는 관심 없어요.”
“고맙군. 언제부터?”
“공원을 둘러보고 나서요.”
 
나는 동상을 둘러보았다. 공원은 안중근 의사를 하얼빈역 앞에서 이곳으로 모셔다 세우지 않았다면 동네 공원에 불과한 보잘 것 없는 공원이었다. 공원의 격이 갑자기 높아져 관광객들이 오기 시작하였다. 그것도 중국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이 돈을 내어 하얼빈 역전에 동상을 세웠는데, 요즈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동상을 가져가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정부에서 가져오지 않을 수 없었다. 정부에서 동상을 세울 곳을 찾기 위하여 공모에 붙였더니 역사 콤플렉스에 걸린 부천시의 공무원들이 돈수백배頓首百拜하고 이곳으로 모셔다 세워드렸다.
 
“이곳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안중근 의사가 불쾌한 얼굴로 서 있으므로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까지 내 몸에 흐르는 피를 닦지 않고 그대로 놔둘 것인가?”
 
자세히 보니 동상의 왼쪽 다리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사형당할 때 흘리기 시작한 피가 한도 끝도 없이 흐르려는 것 같았다. 관광버스가 공원 앞에 서더니 일단의 사람들이 내렸다. 와글와글 떠들면서 오는 것을 보니 중국 사람들이었다.
“야, 동상에서 피가 흐르는군. 누군가 상처를 건드렸나봐.”

한 나이 든 여자가 말했다. 그러나 얼른 입을 다물고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중국인들은 와글와글 떠들다가 썰물처럼 공원을 빠져나갔다.

“놀랍군요. 중국 사람들이 오다니요.”
“나에 대한 연민의 정이 있나 봐.”
“피를 닦아 드려야 하는데, 세척을 한다고 해도 닦아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고민이군요. 피를 닦아낼 방법이 있을까요?”

나는 걱정이 되어 물었다. 안중근 의사가 공원 앞에 있는 상가를 가리켰다. 가전제품을 파는 상점이었다. TV들이 일제히 화면을 켜놓고 있었다.
 
“음악을 잘 들어 보게.”
 
힐링이라는 주제를 붙여 내보내는 음악을 악사들이 연주하고 있었다.
 
“자네가 소설을 1편 써서 나의 상처를 치유해 주게.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 국가안위노심초사國家安危勞心焦思 이따위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소설은 쓰지 말고 참말로 상처를 핥아주고 감싸주는 소설을 쓰란 말이야.”
“세상에 남기신 글씨가 모두 세계 명작이던데 마음에 안 듭니까?”
“이제 그런 글들은 지루해.”

안중근 의사의 심경에 지각변동地殼變動이 일어난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결국 힐링하는 소설을 쓰지 않으면 아니 될 것 같았다.

“힐링해 드리겠습니다.”
“힐링이 뭐야?”
“심리치료라는 것이지요. 정신치료라고도 하지요.”
“나는 미치지 않았네.”
“광인狂人들만 그런 치료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세조 때부터 고종 때까지 활인서活人署에서 의생醫生들이 힐링이라는 것을 해왔습니다.”
“의생들이?”
“무당들이지요.” 
“그렇다면 알아서 해.”
“제가 안 의사님의 함자를 도용하고, 생명도 도용했다고 영계에 잡혀가서 처벌을 받았으니 제게도 힐링이 필요 합니다.”

▲ 하얀 진돗개
내 곁에는 내 환부를 핥아주겠다고 곁에 붙어 다니기 시작한 죽자가 있었다. 죽자가 동상을 핥아드린다면 치유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죽자를 안중근 의사의 동상에게 붙여 드리기로 하였다. 그러나 죽자의 승낙을 받아야 하였다.

“죽자 누나야, 안중근 의사님 동상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 드릴 수 있겠어?”
“내 혀로?”
“음”
“동상을 핥아 본 적은 없지만 한번 해 보지.”
“의사님의 상처를 닦아 줄 저의 여자친구를 소개하겠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죽자를 내려다보았다. 달빛에 죽자의 얼굴이 파랗고 창백하게 보였다.
 
“아주 예쁜 아가씨로군. 조건 없이 해 줄 수 있는가? 보수를 달라고 하면 나는 줄 수가 없네.”
“보수 같은 것은 필요 없습니다.”
“그럼 공짜로 해 줄 거야?”
“세상에 공짜가 어디에 있습니까?”
“공짜로 안 해 주겠다……. 그럼 뭐를 달라는 거야? 말해 보게.”
“제가 이 사람의 만신창이가 된 몸을 핥아서 치유해 주기로 했는데 치유가 다 되면 그때 혼인을 하려고 하니 주례를 해 주셨으면 합니다.”
“귀신과 산 사람이 혼인하다니, 이건 억지가 아닐까?”
“영혼결혼이라는 것이 있으니까 억지는 아닙니다.”
“그래? 그렇다면 좋아. 승낙하지.”

죽자는 문차요비에게 나와 혼인하면 여기에서 살아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문차요비가 된다고 말하였다. 안중근 의사의 동상의 얼굴에서 고뇌의 빛이 사라지고 밝은 모습이 되었다.

“부천은 귀신이 살기에 좋은 도시입니다.”

문차요비가 안중근 의사에게 말하였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소?”
“이곳에 삼신산이 있고, 우주군대가 삼신산을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소?”
“삼신산의 하나인 성주산을 보세요. 우주연합군이 하루에 2번 영계 터미널에서 근무교대를 하러 내려옵니다.”
“나는 모르고 있었소.”
“육정육갑신六丁六甲神이 아침에 오면, 육병육을신六丙六乙神이 저녁에 와서 교대합니다. 안 의사께서 의병중장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계시니, 힐링이 끝나면 마고로부터 호출이 있을 것입니다. 근위대장을 하라고 할 것입니다.“
“그래요?”
“외계인의 침공에 대비해야 할 것입니다. 보좌관으로 쓸 마음에 드는 귀신이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일본 센다이라고 하는 곳에 나의 지인이 혼자서 허공을 떠돌고 있어요. 그 사람을 이리로 불러 주었으면 좋겠어요.”
“지바 씨를 말하는 것입니까?”
“그렇소.”
“그를 불러오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어떻게 불러오게?”

하얀 진돗개가 꼬리로 내 다리를 툭툭 치고 있었다. 아마 자기가 할 일을 마쳤다는 의사표시인 것 같았다. 하얀 진돗개가 바이 바이하고 사라졌다.
 
“귀신들을 센다이로 보내어 불러오겠습니다.”
 
지바가 올 수 있다니 다행이었다. 
 
“황제 폐하를 만나서 내 부친의 무죄함을 밝혀주어 고맙네.”

안중근 의사가 생각난 듯이 말하였다.
 
“누가 그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까?”
“영계통신靈界通信이지.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려야 하니까 황제 폐하를 알현해야 하겠어.”
“공원 밖으로 외출할 수 있습니까?”
“가능하지.”

광희 황제를 만나보는 일이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갑자기 막걸리 생각이 났다. 뱃속이 출출하기도 하였다.

“부천역 골목에 제가 친구가 오면 찾아가는 막걸리 집이 있습니다. 거기에 가셔서 한 잔 하시지요. 술값이 많이 들지 않습니다. 막걸리 한 주전자에 빈대떡 한 장이면 족하니까요.”
“그거 가지고 간에 기별이나 가겠나?”
“그럼 배로 시키지요.”
“그것도 안 될 것 같은데.”
“그럼 3배로 시키지요.”
“주머니가 가벼워 보이니 그 정도로 하세. 아니, 한 잔만 해도 족해.”

우리가 막걸리 집으로 이동하기 전에 치료를 마쳐야 하였다. 죽자가 열심히 내 몸을 핥아주었다. 죽자는 굉장히 긴 혀를 가지고 있었다. 긴 혀가 내 몸을 휘감듯이 핥아나갔다. 너무나 얼음장 같아서 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드디어 상처 핥기가 끝났고 나는 상처가 나았다.(계속)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