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0년대에 지은 강화도성당

“주가가 어디에 있소?”
“나를 왜 찾는가?”
 
주가는 안중근을 매일 남부여대하여 광산촌으로 몰려드는 민초로 생각하여 거만하게 물었다.
 
“그대가 주가인가?”
“그렇다.”
 
안중근은 그자 앞에 우뚝 섰다.
 
“그대는 어찌하여 천주교를 비방하며 다니는가?”
 
안중근이 따졌다. 집 안에 있던 자가 밖으로 나가더니, 삽시간에 4,5백 명의 광부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의 손에 몽둥이와 돌이 들려 있었다. 곧 안중근을 후려치고 던져 박살을 낼 기세였다. 안중근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단도를 뽑아 들고 재빨리 주가의 오른 손을 잡고서 큰 소리로 꾸짖었다.
 
“네가 비록 백 명의 무리를 가졌다 하나, 네 목숨이 내 손에 있으니, 알아서 하라.” 
 
주가가 겁을 잔뜩 집어 먹고 좌우를 향하여,
 
“물러가라!”

고 소리쳤다. 아무도 접근하지 못했다. 안중근은 주가의 오른손을 잡은 채로 문 밖으로 끌고 나와 10여리를 동행했다. 한적한 곳에서 풀어주고 성당으로 돌아왔다. 내가 당시의 프랑스 신부를 만나려고 영계통신을 해 보니 그는 자기가 인간 세상에 나갈 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고 거절하였다.

“지옥에라도 가 계신 거요?”
“신부가 지옥에 가서야 되겠소?”
“그렇다면 잠깐 오시구려. 그대가 미결사건을 하나 해결하시오.”
“내버려 두시오. 자연히 잊혀 질 것이요. 그러니 들쑤셔 골치 아프게 하지 마시오.”
 
홍 신부가 난처해하였다. 나는 달리 해 볼 도리가 없었다. 나는 영계통신을 끝내고 현실로 돌아와야 하였다. 내가 낙담하여 아무  생각 없이 축 처져 있는데, 문차요비가 나타났다.
 
“무슨 일인지 내가 도와줄까요?”
 
문차요비가 물었다.
 
“내가 청을 하면 들어주겠소?”
“말해 봐요.”
 
나는 결심하고 말하기 시작하였다. 
 
“옹진에 사는 백성 이경주라는 자가 참판 김중환이라는 자에게 돈 5천냥을 빼앗겼소. 돈을 찾아주고 싶은데...”
“살아 있는 당신의 마음이요? 아니면 세상을 떠난 안중근의 마음이요?”
“죽은 안중근의 마음이요.”
“당신의 일이 아닌데 왜 죽은 사람의 일에 마음을 쓰는 거요?”
 
문차요비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물었다.
 
“소설 때문이요. 힐링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데 마음에 걸리는 것은 다 풀어야 하거든.”
“그렇소? 힐링 콘텐츠를 만든다...가상하구려. 그것도 죽은 안중근의 마음이겠지?”
“그렇소.”
“그 문제는 내가 해결해 주겠소. 내가 해결해 주는 대신에 당신이 내게 해 주어야 할 조건이 하나 있어요.”
“조건?”
 
오는 것이 있다면 가는 것이 있다고, 문차요비가 내게 무엇인가를 요구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말하시오.”
“언젠가 나는 당신의 나라로 와야 할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그날에 대비해야 해요.”
“당신이 왜 한국 땅에 와서 살게 된다는 것이요?”
“내가 있어야 할 땅이 물속에 가라앉게 되는 때가 올 것입니다. 그때 나는 나를 따르는 일본의 귀신들을 몽땅 데리고 한국 땅으로 와야 해요.”

문차요비가 이상한 말을 하였다.
 
“그게 무슨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요?”
“당신의 나라에 유명한 대덕고승이 한 분 있었지요. 세상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분이에요.”
“그가 누구요?”
“10년 전에 세상을 떠난 분인데, 요동과 만주가 한국 땅이 되고 일본이 한국 땅에 붙는다고 예언했지.”
“그런 헛소리를 왜 하는 것이요?”
“헛소리가 아니라 한국의 운명이 그렇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내가 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요.”

▲ 1900년대에 지은 서울의 명동 성당


 
나도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한반도가 동해안에서 지진이 나 동쪽 땅이 침몰하고, 동남쪽의 땅도 침몰하고, 서해안 쪽의 영토가 한반도의 2배가 되는 땅이 새로 생긴다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일본 영토의 2/3가 침몰한다고도 했지요. 앞으로 일본은 한국을 침략할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지진이 일어난다는 것이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당신이 귀신들을 이끌고 한국 땅으로 온다는 것이요?”
“한국은 인간의 땅이 아니라 귀신들의 땅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위하여 있는 땅이 아니란 말입니다.”
 
나는 전혀 이런 괴상한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게 무슨 말이요?”
“한국이 동북간방東北艮方이라는 귀신의 방위에 있기 때문이요.”
“귀신의 방위라…….”
 
그런 말은 일본의 음양사나, 한국의 역술가가 하는 말이었다. 그런 말을 귀신이 하고 있었다. 

“귀신들에게 땅이 왜 필요해요?”
“섭섭하게 그런 말 하지 마시오.”
 
문차요비는 화를 내었다.
 
“미안해요. 당신을 화나게 할 의도는 없었소.”  
“사람은 죽으면 그의 영혼이 모이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이 한국 땅입니다.”
“그런데 왜 귀신들이 이 땅에 모입니까?”
“새로이 태어날 세상의 판을 짤 사람을 지켜주기 위해서입니다. 그 일이 귀신들이 할 일이에요. 그 사람이 이 땅에서 태어날 것입니다. 새로운 세상의 판을 짜려면 그 사람이 있어야 해요. 그를 지켜줄 군사가 귀신들입니다.”
“새로 태어날 사람이 누구요?”
“안 의사에게 물어 보시오. 그가 죽은 지 1백년이나 되었으니 이젠 하늘의 비밀을 알고 있을 거요.”
“당신이 말해주지 않겠소?”
“지금 나는 언동을 조심해야 해요. 책잡히는 일을 해서는 아니 되기 때문에.”
 
문차요비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를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물을 것이 있었다.
 
“내게 의문이 하나 있어요. 당신은 귀신으로서 많은 사람을 접할 수 있는데, 왜 일개 소시민에 불과한 나를 찾아온 것이요?”
“당신의 질문 때문에 내가 못살겠어.”
 
문차요비가 한숨을 쉬었다.
 
“말해 봐요.”
“그것은 당신이 새로이 태어날 분과 인연이 있기 때문이요.”
“새로 태어날 분이라니?”
“그 정도로만 알고 있어요. 저절로 깨달아질 때가 올 것입니다.”
 
나는 또 대답을 거절당했다. 나는 문차요비에게 말하여 안중근 의사에게 얽혀 있는 고를 하나 풀어 주어야 할 것이 있었다. 
 
“내가 청할 것이 있소.”
“무슨 청?”
“고약한 군인을 하나 혼을 내 주어야 하겠어요.”
“그런 거라면 어렵지 않지.”
“안 의사가 사건을 해결해 주려다가 미결로 남은 사건입니다. 해주 병영에 위관으로 한원교라는 자가 있었는데, 지방 백성인 이경주라는 자의 처와 재산을 몽땅 빼앗아 간 사건입니다.” 
“아니, 군인에 그런 자가 있소?”
“나라가 망하려니 그런 자가 생기는 것이요. 나라를 지켜야 할 자가 백성을 수탈하다니. 더구나 마누라까지 빼앗아 가고.”

나는 화가 나는 것을 참기 힘들었다.
 
“모모타로에게 말하여 당장 잡아와야 하겠군.”
 
문차요비가 나보다 더 흥분하였다.
 
“형편없는 여자도 잡아 와야지.”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면서 너무 흥분하는 것 아니요?”

문차요비가 웃었다.

“그자를 잡아다 혀가 쑥 빠져나오도록 혼을 내 주라 하겠소.”
“귀신들이 어떻게 귀신을 혼내 주는지 내가 구경을 해도 되겠소?”
“구경하시오. 그런데 그런 끔직스런 것을 왜 보려 하시오?”
“대신들이 얼마나 황제를 속이고 기만하였는지 황제에게 보고하려는 것이요.”
“불쌍한 황제.”
“이등도 잡아 올 수 있을까?”
“그건 이등을 지키는 귀신군대가 많아서 불가능할 거요. 그를 잡아 오려면, 아마 일본 귀신과 한국 귀신이 전쟁을 해야 할 거요.”
“특수부대로 체포조를 만들어서 몰래 보내면 안 될까?”
“이등의 목숨의 권한을 안중근이 가지고 있으니 그래도 되겠느냐고 상의해 보시오.”
 
나는 안중근 의사가 승낙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이등이 이미 처벌을 받았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건 그렇고, 해결해 주어야 할 사건이 또 하나 더 있소.”
“말하시오.”
“김충환이라는 고관이 있는데, 백성의 돈을 빌려가 주지 않는 자요. 그자도 혀가 쑥 빠지게 혼을 내주었으면 좋겠소.”
“그 자도 내가 혼쭐을 내 주겠소. 그들의 후손들이 조상을 대신하여 처벌을 받게 될 것이요.”

사실 이 사건은 이미 나라에서 가해자와 이경주의 처를 잡아 들여 처형하여 일단락이 된 사건이었다. 이러한 사건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남으로 백성들은 병을 얻지 않는 이가 없었다. 안 의사의 부친 안태훈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문차요비와 상당히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문차요비는 수하에 있는 귀신들을 보내어 몇 번째 하늘에서 어떠한 벌을 받고 있는지 모를 그들을 찾아내어 혼쭐을 내주고 내 앞에 나타났다. 
 
“당신과 내가 한 약속을 다 지켰기에 당신에게 통보하러 왔습니다.”
 
문차요비가 말했다. 문차요비의 시녀 둘이 몇 개의 사람 머리를 줄에 메어 끌고 와서 내 앞에 놓았다.
 
“당신이 혼을 내주라는 사람들과 그들과 연루가 된 자들의 목을 가져왔소. 확인해 보시오.”
 
머리는 몸에서 오래 전에 분리되어 백골만 앙상하였다.
 
“이자들에게 몸을 주어 일으켜 세워라.”
 
문차요비가 명령하자 어디에선가 뱀의 몸이 나타나 두개골을 뒤집어썼다. 그러자 머리는 해골이요 몸은 뱀인 귀신의 형상이 되었다. 나는 만족하였다. 처벌을 받았다는 것이 중요했던 것이다.
 
“치워라.”
 
귀신들이 해골 뱀을 데리고 사라졌다.
 
“나와 함께 가야 할 곳이 있소,”
 
문차요비가 말했다.(계속)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