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에 누구를 찾아 오셨습니까? 문차요비님.”

내가 물었다.
 
“안중근의 부인이 남편의 영혼이 행방불명되어 집에 오지 않는다고 수색원을 내었어. 그대는 안중근의 영혼이 어디에 갔는지 알고 있지?”
“문밖이 저승이라는데,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그분이 어디에 갔는지 제가 어떻게 압니까?”
 
안중근 의사에 대한 기억을 보관하고 있어야 할 나의 집단무의식이 뒤죽박죽이 된 것 같았다. 기억이 쓰레기통이 되면 그분을 꺼내어 소설에 쓴다는 일이 용이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부천으로 가면 찾을 수 있을 것이야.”
“왜죠?”
“이 나라에서 가장 애국심이 필요한 도시로 갔을 테니까.”
“그곳이 부천입니까?”
“그렇지.”

안중근 의사의 동상이 하얼빈 번화가에서 철거되어 국회로 와서 전시되다가 부천으로 온다고 보도되었다. 그 이유는 부천 사람들이 애국심의 상징인 안중근 의사의 동상이 부천으로 와야 한다고 떼를 썼기 때문이다. 갑자기 안중근 의사의 영이 나타났다. 
 

▲ 하얼빈시의 번화가에서 부천으로 이사 온 안중근 의사 동상

“다른 사람은 믿지 못하겠으니 자네가 내 동상의 관리인을 하게.”
 
나는 어이가 없었다.
 
“무리한 요구가 아닙니까?”
“다른 사람들의 애국심이라는 것을 믿지 못하겠으니까 하는 말이지.”
 
나는 한동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나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아닙니까?”
“너 같은 애국자가 10명만 있었어도…….”
“대한국이 망하지 않았다……. 이거죠?”
“그래.”
“다케코! 네가 이 사람을 교육시켜야 하겠다. 이 사람은 아직도 생각의 수준이 초등학교 5학년이야.”
 
문차요비가 죽자에게 지시하였다.

“너를 철들게 하려면 우리가 어려서 하던 소꿉장난을 다시 시작해야 하겠네. 그래야 네 몸의 어디가 고장이 났는지 찾을 수 있지. 내가 의사 할게 너는 환자 해.”

나는 두 귀신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6학년 때 철부지 5학년인 너를 사랑한 죄밖에 없는데 오늘 날 내가 받아야 할 형벌치곤 너무나 가혹하군.”
 
죽자는 불평하면서 나를 쓰러뜨렸다. 나는 바닥에 쓰러졌다. 거기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철부지가 아니었어.”
 
나는 항의하였다.

“너는 내가 하는 말을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알아들은 적이 있었니? 왼쪽으로 가자고 하면 오른 쪽으로 가고, 밥 먹자고 하면 과자 달라고 하고…….얼마나 내 속을 썩였는지 알아?”
 
죽자의 말을 듣고 보니 내가 철부지가 틀림이 없었던 것 같았다. 죽자가 내 몸을 꾹꾹 찔러보았다.

“어이구 아파. 칼로 찌르는 거야? 손톱 좀 깍지.”
“너, 귀신이 손톱 깎는 것 보았냐?”
“나를 혼내 주려는 것이지?”
“그렇다. 그래.”

죽자는 내 몸 여기저기를 찔러 보고 쓰다듬어 보고 나서 머리를 가로저었다.

“몸이 엉망진창이군요. 술을 너무 많이 마셨어요. 소설은 안 쓰고 술만 마셨나? 이 사람은 치유가 필요합니다. 이 몸으로 마고 어머니의 강박관념을 치유한다는 것은 불가능해요.”
“그런 건강으로 이등의 졸개들에게 목숨을 도둑질 당한 안중근을 치유할 수 있겠냐?”

안중근 의사가 불평하였다.

“제가 곁에 붙어서 핥아 준다면 기력을 회복하여 치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죽자가 말했다.
 
“핥아 주겠다고?”
 
나는 맙소사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 이 꼬마를 사랑한 죄밖에 없어요.”
“알았다. 핥아 주도록 해라.”
 
죽자가 귀신의 차가운 혓바닥으로 따끈따끈한 내 몸을 핥아준다니 생각만 해도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귀신님, 다른 방법은 없나요?”
“왜, 내가 핥아주는 것이 싫은 게야?”
 
죽자의 얼굴이 파랗게 변했다. 그리고 눈초리가 치켜 올라갔다. 순간적으로 귀신의 본모습이 나타난 것이었다.

“아니. 다만 차가운 것이 싫어서.”
 
나는 어물어물 말하였다.

“차갑게 하진 않을 것이니 그리 알아.”
 
죽자는 자존심이 상하여 소리 질렀다. 죽자가 귀신이므로 화가 나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위기를 벗어나야 하였다.

“안중근의사의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갑자기 누군가 와서 문차요비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내가 그를 보니, 지체 높은 귀신들이 달고 다니는, 말하자면 선재동자와 같은 존재였다. 안중근 의사의 동상을 배에 실어 온다고 하더니 이미 실어 온 모양이었다. 국회의사당에서 전시를 한다고 했는데, 소리 소문 없이 세워졌다니 놀라웠다. 

“아니 벌써?”

문차요비가 물었다.

“부천에서 출세한 사람들이 모여서 기념식을 한다고 난리법석입니다.”

과연 동자의 말이 맞았다. 공원 하나가 안중근공원으로 새로운 단장을 해 가고 있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웬 하얀 개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진돗개였다. 청와대에서 파견한 진돗개가 틀림이 없을 것이다. 개의 이름이 해피였다.

“무슨 일로 왔어?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내가 물었다.
 
“멍멍!”
“짖지 말고 말로 해.”
“끙끙”
 
아무래도 박정희 대통령이 연락병으로 보낸 것 같았다. 하얀 진돗개가 앞서 가기 시작하였다. 나를 안내하여 어디론가 가려는 것이 분명하였다.

“네가 나를 안내하러 왔냐?”

하얀 진돗개가 꼬리를 살랑거렸다. 나는 하얀 진돗개를 따라 가기로 하였다. 나는 하얀 진돗개가 전동차를 타라고 하여 전동차에 올라탔다. 1호선 전동차였다.

“어디로 가려는 거야?”
 
답답하게도 하얀 진돗개는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는 부천역에서 뛰어 내렸다. 나는 그를 따라 내렸다.
 
“여기는 내가 사는 도시가 아니야?”
 
하얀 진돗개는 나를 이리저리 데리고 다리고 다니다가 안중근 동상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동상의 얼굴이 고초를 겪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인간이 속을 썩이면 동상도 속을 썩이는 구나.”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계속)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