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들을 대접하기 위하여 차린 상. 신을 대접하고자 하는 사람이 신이 되어 마시고 먹어야만 신에 대한 대접이 된다. 신을 대접하는 상은 대접상待接床이고,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차린 상은 제상祭床이다.

“내가 당신을 부르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여기에 와 있는 거요?”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분이 이곳에 있다고 하여 찾아왔습니다.”
 
문차요비는 사랑의 결핍이 있는 곳에 나타나는 귀신이므로 누가 문차요비에게 사랑을 찾아 달라고 청원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아도 사랑의 결핍을 청원할 만한 누군가가 보이지 않았다.
 
“보시오. 없지 않소? 잘못 찾아온 것이 아니요?”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문차요비는 내가 한 말에 수긍하였다.
 
“다케코 어떻게 된 것이냐?”
 
문차요비가 시종하는 여관女官에게 물었다. 다케코는 죽자의 일본식 이름이었다. 죽자가 문차요비를 수행하고 있었다.
 
“신호가 오는 곳이 있습니다.”

▲ 복숭아에서 태어난 일본의 모모타로오

 
죽자가 말했다. 신호를 보내는 곳은 성주산의 동쪽 자락에 있는 평범한 주택가였다. 무엇인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표시로 볼 수 있었다. 나는 나의 아니마를 불렀다. 아니마는 언제나 나의 집단무의식 속에 있으므로 나의 부름에 응답하였다.

“저기가 무엇을 하는 곳이야?”
“요즈음 신들의 출입이 빈번해진 곳입니다.”
“그래? 무슨 일로?”
“아직은 파악되지 않습니다.”
“이상한 일이군.”
“오늘은 8일이라 우주의 도수가 변하는 날입니다. 신들에게 대접하겠다고 제사를 지낼 가능성이 있습니다.”
“가정집에서?”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아니마, 성주산 산신각으로 가자. 오늘 감응신령이 하강하셨으면 성주산 문서를 보여 달라고 해야겠다.”

나는 문차요비와 함께 문차요비가 타는 구루마 위에 앉아서, 성주산에 있는 산신각으로 갔다. 문자요비가 온다고 소문이 퍼졌는지 성주산에 진을 치고 사는 조선 귀신들이 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귀신들이 몰려들었다.

“사랑의 결핍으로 귀신이 된 자들이야. 사랑을 부르짖는 각 종교에서 버림받은 자들이 틀림이 없어.”

 

▲ 아직 복숭아에서 태어나지 않은 한국의 도부신인

문차요비가 말했다. 나는 산신각으로 들어갔다. 귀신들은 따라 들어오지 않았다. 복숭아를 들고 있는 동녀를 동자가 지키고 있었다. 도부신인이 복숭아 안에 들어 있었다. 산신이 문차요비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단군왕검이 하강해 감응신령의 업무를 개시한 것으로 보였다.
 
“단군왕검이시여! 인사드립니다.”
 
나는 손뼉을 짝짝짝 8번 쳤다.
 
“인사하세요. 복숭아를 아사가와(조강朝江)에 띠워 기비(길비吉備)로 흘러가도록 해 주신 단군왕검이십니다.”
 
내가 문차요비에게 말했다. 문차요비가 단군왕검에게 인사하였다.
 
“그대가 무슨 일로 일본에 있지 않고 이곳에 왔느냐?”
 
단군왕검이 물었다.
 
“청원을 하나 해결해 주려고 왔습니다.”
 
문차요비가 대답하였다.
 
“누구의 청원이야?”
“성주산 문서를 확인해야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성주산 문서를 열기엔 좀 이르지 않느냐?”
“그러나 누군가 자꾸만 신호를 보내서 확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단군왕검이 백호가 깔고 앉은 서책을 하나 꺼내어 펼쳤다. 성주산의 미래에 대하여 쓴 책으로 보였다. 
 
“성주산의 동쪽 끝자락에……. 이게 뭐냐? 왜 신들이 모이는 거야?”
 
단군왕검이 소리쳤다.
 
“어떤 신들이 모입니까?”
“복합형으로 생긴 신들이다.”
“복합형 신들이요?”
 

▲ 처녀단處女蛋

나는 납득이 가지 않았다.
 
“각성바지의 문중이 멸망할 때가 되면 나타나는 신들이다.”
“인류의 멸족滅族이 시작되었습니까?”
“너는 남사고비결을 읽어보지 않았느냐? 인류가 멸망하여 10 리에 1명이 남는다고 하였느니라.”
 
단군왕검은 산 밑을 관찰하였다.

“제가 다녀와서 무엇이 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보고 와서 보고 드리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그거 좋은 생각이다. 그렇게 하라.”
“저도 함께 가보겠습니다.”
 
문차요비가 말하였다. 우리는 산신각을 나와서 문차요비에게 신호를 보내는 곳으로 갔다. 그 집은 H자형으로 생긴 도로의 중간지점에, 그만그만한 규모의 집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3층이었다. 밖에서 계단을 올라가니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방으로 들어가니 잔칫상이 차려져 있었다. 제단에는 신의 이름을 써 붙인 잔들이 줄지어 놓여 있고, 잔에는 투명한 소주가 부어져 있었다. 제단 위에 음식은 하나도 차려져 있지 않았다. 자리를 내주어 우리는 상 앞에 앉았다.
 
“나는 마고다. 태상노군에게 술 1잔 받아야 하겠다.”
 
여자가 내게 명령조로 말했다. 내상노군은 노자를 말한다. 이 여자가 어떻게 내 몸 안에 노자가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마고에게 술 1잔을 따라주었다. 그가 술을 마셨다.
 
“보화보살은 태상노군에게 술 1잔을 대접하라.”
 
내 곁에 앉은 여자가 내게 술을 따라 주었다. 나는 술을 마셨다.
 
“안주도 대접해야지.”
 
마고가 내게 말하였다.
 
“우주 연합군이 계단 밑에 와 있다. 내응상감內應上監이 술 3잔을 대접하고 오라.”
 
내 맞은편에 앉은 젊은이가 술병과 잔을 들고 방 밖으로 나갔다. 

“태상노군 곁에 있는 여자야, 일본 여자귀신이지?”
“일본 여자귀신인 것만은 맞습니다만…….”
“그런데 무슨 일로 귀신이 이 지엄한 자리에 온 것이냐?”
“모모타로를 찾으러왔습니다.”
“모모타로를 왜 여기에서 찾아?”
“모모타로가 태평양전쟁 때 행방불명이 된 후로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잘못 찾아왔어. 이미 우주연합군에 편성되어 여기저기 전쟁을 하러 다니고 있어.”
“여기에도 옵니까?”
“성주산에 번을 서러 오지.”
“만날 수 있나요?”
“만나서 뭐 하게?”
“그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뭔데?”
“그가 토벌해야 할 곳이 하나 있습니다. 그 일을 해야 합니다.”

“토벌?”
“새로 태어난 요귀妖鬼입니다.”
“이미 이토오는 죽었지 않은가?”
“말머리를 씌어 주었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날뛰는 요귀가 있습니다.”
“그래?”
 
마고가 끙끙거리다가 한숨을 쉬었다.
 
“그건 단군왕검하고 상의해서 처리할 문제야. 여기에서 지체할 일이 아니야. 산신각으로 가봐.”
 
마고는 나와 문차요비를 방에서 내쫓았다. 문차요비의 구루마가 산신각 앞에 도착했다.
 
“단군왕검이시여, 알아보았습니다. 마고대신이 하강해 계십니다. 인간을 소멸시킬 계략을 꾸미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벌써 세월이 그렇게 많이 흘렀나…….”
 
문차요비의 눈길이 수상했다. 곧 달려들 듯 한 자세로 동녀를 노려보았다. 곧 무엇인가 사단이 날 것 같았다.

“모모타로오상이 여기에 계시는 군요. 모모타로오상이 기비를 떠난 지 오래 되었는데 돌아오지 않으셔서 항상 걱정했습니다.”
 
문차요비가 복숭아에게 절하였다. 
 
“이분은 당신이 찾는 분이 아니요. 도부신인이라는 분이요.”
 
내가 말했다.
 
“그렇지 않아요. 모모타로오상이 맞습니다.”
“문차요비야, 을미년에 이 땅에 온 적이 있느냐?”
 
단군왕검이 물었다.
 
“있습니다.”
“그때 모모타로오를 찾지 못했는가?”
“찾기는 했으나 데려갈 수 없었습니다.”
“무슨 말이냐?”
“동녀 앞이라 말 못하겠습니다.”
“왜, 비밀이냐?”
“비밀이라기보다 민망해서…….”
“민망하다니?”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괜찮다. 말해 보라.”
“이건 저희 귀신 가문에 아주 오래 전부터 전해 오는 전승입니다. 오늘 이 말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 또 몇 백 년을 아무 의미 없이 기다려야 할 것 같아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이 너무 많다.”
“처녀단處女蛋을 먹은 사내가 동녀와 관계해야만 복숭아에서 모모타로오상이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처녀단이라면 새알심이냐?”
“아닙니다.”
“그러면?”
“팥죽에 넣는 새알심과 같은 새알심이 아니라 순결한 처녀의 오줌에 삶은 계란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정서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었던 것이다. 놀란 단군왕검이 뒤로 자빠질 것만 같았다.
 
“신빙성이 없는 말이야.”
 
내가 말했다.
 
“일본엔 처녀단을 먹겠다는 지망자가 많이 있습니다.”
 
동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모모타로오상이 한국에 또 있다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소문이 일본 전역에 퍼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무수한 젊은 사내가 한국으로 몰려들 것입니다. 동녀를 납치하려 할지도 모릅니다.”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냐?”
“멀쩡한 정신으로 하는 말입니다.”
“일본에 가면 절대로 이 사실을 발설하지 말라.”
 
단군왕검이 엄명을 내렸다.
 
“우주연합군에 경비병력 지원을 요청해야겠다.”
 
단군왕검이 말했다. 나는 그들과 헤어진 다음에, 내가 사는 집으로 돌아와 문을 닫아걸고 향을 피웠다. 나는 머리가 어수선하였지만 『안응칠역사』를 읽기 시작하였다.(계속)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