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 무당은 살풀이무가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살풀이무가는 신라시대에 산화가라 부르던 무가이다. 개인이 제사 지낼 때 살풀이무가를 부르며 홀로 굿을 한다는 뜻이다. 신라시대에 불가에서 산화가라 불렀다. 

 
“신라시대의 불교는 선교와 무교가 섞여 있었다. 선교가 서서히 무교로 탈바꿈해가던 시대에 있었던 과도기적인 종교였다. 무녀巫女와 무승巫僧이 살풀이하는 꽃을 뿌리며 무가를 불렀다. 무녀는 굿을 할 때 그렇게 하였고, 무승은 제를 지낼 때 그렇게 하였다. 그 시대에 살풀이 무가를 산화가라 불렀다.”
 
노산 선생이 내게 말했다. 
 
“지금 시대에도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오래인 안중근 의사의 살을 풀어야 합니까?”
“풀어내야지.”
“이해가 잘 가지 않는군요. 나라에서 추모제를 지내지 않습니까? 그것으로 되지 않을까요?”
“추모제는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인연의 끈을 계속해서 이어주기 위하여 지내는 제사일 뿐이야. 명절날 드리는 인사와 같은 것이지. 살과 추모제는 전혀 다른 것이야.”
“전혀 다르다…….”
 
내게는 풀어야 할 과제가 생긴 셈이었다.
 
“몸에 침범해 끼어 있는 살이 살煞인데, 살풀이는 산 자를 죽이려고 몸에 들어와 낀 살을 풀어낸다는 뜻이다. 이 살을 풀지 못하고 인명人命이 죽으면 살殺이 된다. 살煞은 몸을 치는 일종의 화기火氣인데, 살煞자의 받침인 화灬자가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 오행五行에서 화기가 승한 것을 말한다.”
“살을 푸는 방법이 살풀이 춤인가요?” 
“무가를 보면 음양오행의 원리를 풀어서 무가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렇게나 기분 내키는 대로 만든 무가가 아니다. 그래서 음양오행을 철학적인 기조로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에 음양오행의 철학적 기조가 허물어지면 이를 살이라 한다. 그래서 허물어진 살을 복원하여 음양오행의 원리로 돌려놓는 것이 살풀이가 된다.” 
 
보름달 무당이 수건의 한 끝을 가볍게 쥐고 높이 들어 올렸다가 힘차게 뿌렸다. 앞으로 뿌리기도 하고 옆으로 뿌리기도 하고 원을 돌고 나서 뿌리기도 하였다. 뿌릴 때는 잠깐 정지했다가 기를 모아서 뿌리는 것이었다. 
 
▲ 일월오악도日月五嶽圖는 중국에 없고 우리에게만 있다. 음양오행을 그림으로 형상화 한 작품이 일월오악도이다. 일월오악은 한국학의 기본이 된다. 절기상으로는 칠월칠석날 저녁의 해와 달의 위치도이고, 천문상으로는 자미원에 속한 북극오성과 해와 달이다. 가운데 봉우리가 북극성이 조응하는 백운봉인데, 임금의 자리이고 임금의 자리는 백악白岳이다. 백악 밑에 조선시대에 유궁柳宮이 있었고, 조선왕조시대에 경복궁을 지었다.
 
“저렇게 하면 살이 풀리는 것인가?”
 
나는 그러한 생각이 들었다.
 
“요즈음 추는 전통무용 살풀이춤은 흰 수건을 잡아 꽃을 뿌리듯이 수건을 놓지 않으며 뿌리는 춤이다. 흰 수건은 꽈배기 꽃으로 불리는 마화麻花를 상징한다. 마화는 마고 꽃이라는 뜻이다.”
“꽈배기처럼 꼬인 마고의 살을 풀어준다는 뜻인가요?” 
“그렇다고 말할 수 있지. 이렇게 추는 살풀이춤을 신라에서 산화공덕散華功德이라 하였다. 산화공덕을 다른 말로 가양可禳이라 하였다. 가양은 살풀이라는 말이다.” 
 
살풀이춤에서 산화 대신에 쓰는 수건의 길이는 길지 않다. 한손으로 잡고 춤을 추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도살풀이에서 쓰는 수건의 길이는 살풀이춤에서 쓰는 수건보다 길이가 2배나 길다. 그래서 두 손으로 잡고 춤을 출 수 있다. 보름달의 춤사위가 멋지게 돌아간다. 감추어진 몸의 흐르는 선에서 교태가 찰찰 흐른다. 보름달 무당이 추는 춤을 보면, 마음이 동하게 된다. 
 
“고구려의 무남舞男과 무녀들이 칠성춤을 출 때 입었던 긴소매 저고리에서 긴 소매를 띄어내 별도로 도살풀이춤용으로 길이가 긴 수건을 만들어 썼을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집 주인이 전쟁터에 갔다가 집에 돌아올 때에 집 앞에서 무남과 무녀들 일곱 명이 춤을 추었지. 도살풀이춤을 추었던 것이다.” 
“고구려와 신라가 다 살풀이춤을 추었다는 말이군요.”
“그렇게 볼 수 있지.”
“선생님만이 주장할 수 있는 획기적인 이론인 것 같습니다.”
“하긴 그렇지. 보름달 무당의 춤을 보고 있으면 떠오르는 알고리듬이지. 재미있는 것은 고구려는 춤을 그림으로 남겼고, 신라는 노래를 문자로 남겼다는 것이야. 그러니 이 둘을 합쳐보는 것도 뜻있는 일일 거야.”
 
도솔가는 신라 경덕왕 때의 국선國仙 월명사가 경덕왕 앞에서 불렀다는 살풀이 무가이다. 살풀이가 개인의 살을 푸는 무가라면 도살풀이는 국가의 살을 푸는 무가이다. 
 
▲ 고구려의 칠성춤(두열斗列)과 신라의 도살풀이춤(도솔무兜率舞-도산화무都散花舞). 칠성춤은 칠성살을 푸는 춤이다.
 
살풀이
 
오늘 이에(今日此矣)
살풀이 노래 불리러(散花唱良)
뽑아 아뢴(巴寶白乎隱)
마화야 너는(花良汝隱)
곧은 마음(直等隱心音)
명을 받잡아(矣命叱使)
오로지 미륵자리(以惡只彌勒座)
몸주 세우라(主陪立羅良)
 
노산 선생이 나직하게 도솔가를 불렀다. 
 
“월명사는 무당이자 선사이자 불승이 혼합되어 있는 무선불巫仙佛이었기 때문에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음양오행이 허물어진 살과 3가닥으로 꼬여 있는 고를 풀 수 있는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였다. 살풀이 무가가 천지신명을 청배하는 굿거리인 산천거리 무가에 많이 섞여 있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오늘 이곳
살 맞은 살륭님의 터에 
삼성대왕 살풀이 하여
산신살 토신살 부근산 살 풀고 
관귀살官鬼煞 풀렵니다
나라님 살풀이하는 정성으로 이 굿 드리오니 
살 맞은 산 살 풀러 오시는 감응신령님
산신살, 토신살, 부근산살 풀고…….
 
마화를 산화한다. 마화를 뿌려 살풀이 한다는 뜻이다. 무남과 무녀가 먼저 삼성대왕이신 한인·한웅·단군왕검을 살풀이해 드리면, 삼성대왕이 나의 살을 풀어주신다는 의미가 있다. 말하자면 ‘삼성대왕 힐링’인 것이다. 
 
무당이 사뿐사뿐 다리를 들어 올렸다가 내려놓는다. 꽃잎이 나풀거리며 날린다. 손을 내밀어 산화한다. 또 꽃을 집어 들어 산화한다. 꽈배기(마화麻花)가 풀어지듯이 엉켜 붙은 살이 조금씩 풀려간다. 이것이 산화공덕散花功德이다. 살풀이 공덕이라는 뜻이다. 여기에 마화 공덕이라는 뜻이 있다. 
 
무당은 수건을 풀어 살풀이한다. 살풀이하는 무무巫舞 앞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동정銅鼎이 서있다. 동정에 3개의 다리가 있다. 무당은 앞다리에서 시작하여 끝다리 사이를 오가며 수건을 나부끼며 살풀이 한다. 나라에 낀 살을 푸는 것이다. 동정에는 삶은 제물이 들어 있다. 가운데 다리는 원을 도는데 쓴다. 회무回舞를 추는데 쓰는 것이다. 
 
무당이 혼자서 살풀이춤을 출 때는 수건의 기능은 살기煞氣를 씻어내는 데에 있다. 그래서 살기를 씻어내야 할 대상을 앞에 두고 수건으로 살기를 닦아 준다. 마치 미역을 감기는 듯하다. 일종의 정화의식이다. 부정풀이가 되는 것이다. 
 
무당 여럿이 도살풀이춤을 출 때는 수건의 길이를 길게 하여 두 손으로 맞잡고 춘다. 동정의 앞다리와 끝다리에 대응하기 위하여 두 손을 다 쓰는 것이다. 
 
이때 도살풀이 무가를 지어 부르면 살풀이가 된다. 도살풀이 무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에 낀 살과 나라에 낀 살을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국가적 액을 막는 방법이 된다.  
 
나는 안중근 의사의 영이 나타나 보름달 무당이 던지는 흰 수건에 휘둘리는 것을 보았다. 수건이 안중근 의사의 영에 낀 살을 씻어내고 있었다. <끝>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