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배주를 3병을 마시고, 요리도 탕수육 한 접시를 더 시켜 먹고 나서야 귀신이 된 안중근 의사와 귀신동맹을 맺을 수 있었다. 그가 내가 안중근 의사의 일대기 집필을 마칠 때까지 조언자가 되어 주기로 한 것이다. 그가 스스로 조언자가 되겠다고 했으므로 나는 걱정할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다.

내가 그를 관찰하니 그는 나와 같은 분량의 술을 마셨으면서도 전혀 술을 마신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영혼은 육신과는 다르군요.”
“자네, 제사 지낼 때 왜 술을 올리는지 아나?”
“모릅니다.”
“귀신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일세.”

안 의사가 들으나 마나 한 말을 하고 있었다.

“자네의 눈에 영들이 보일 것일세.”

나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영들이라니! 영들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자네의 뒤쪽에 세상을 떠난 조상들이 와 계시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 몸을 뒤로 돌려 자세히 보려 하였다. 그러자 조상들이 한 분 두 분 모습을 나타내었다. 나는 축축한 바닥에 엎드려 절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아버지를 한 번도 뵌 적이 없었지만 어느 분이 내 아버지인지 알 수 있었다. 내가 발산하는 주파수와 아버지가 발산하는 주파수가 근접해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도 내가 누구인가를 알아보신 것 같았다. 내가 절을 하고 나서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의 혼과 저의 육신이 사는 세상이 서로 다른데, 아버지는 무슨 일로 아들이 사는 세상에 오셨습니까?”
“내가 네게 오고 싶어서 왔겠느냐?”
“무슨 말씀인지…….?”
“너의 앞에 계신 분이 불러서 왔다.”

안 의사가 불러서 왔다는 것이었다.

“이왕 오셨으니 방에 들어가 한 상 차려드리고 무엇을 원하시는지 들어봐 주게.”
 
안 의사가 그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나는 주인에게 방에다 상 하나에 청요리를 가득히 차려 달라고 주문하였다. 주인은 놀라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래서 자초지종自初至終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인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상에 요리를 차려 주었다.
 
할아버지를 가운데 자리에 모시고 서열에 따라 좌우에 앉으시도록 하였다. 나는 절을 하고 술을 한 잔 한 잔 권했다. 조상들은 술을 받아 마셨다. 술이 금세 떨어졌다. 나는 술을 또 시켜서 대접하였다.
 
“너는 우리에게 술을 주고 음복주를 마시지 않을 것이냐?”
 
아버지가 내게 물었다. 그 바람에 나는 조상들이 주는 음복주를 다 마시지 않을 수 없었다. 제사를 파하고 나니, 나는 어지간히 술에 취해 있었다. 이제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어 취하는군. 취해.”
 
조상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북창동의 청요리 집을 나왔다. 밖은 내 어릴 때의 기억 속에 있는 거리와는 너무나 다른 거리였다. 거리에서 볼 수 있었던 중국옷을 입은 늙은이들을 볼 수 없었고, 집 앞에서 의자에 앉아 있는 편족을 한 할머니들도 볼 수 없었다. 

▲ 산신각山神閣의 신단神壇. 신단에 모신 주신主神은 산신山神이고, 산신은 단군왕검檀君王儉이고, 단군왕검은 감응신령感應神靈이다. 감응신령은 우리의 집단무의식集團無意識을 지켜 주고, 트랜스 상태로 들어간 신도信徒가 집단무의식을 출입하는 동안에 아니무스(동녀童女)와 아니마(동자童子)가 길 안내자가 되도록 돕는다. 이때 신명神明과 조상이 접신接神이 되거나 접령接靈이 된다. 이를 강신降神이나 강령降靈이라 한다.

 
나는 태평로 큰길로 나왔다. 언제나 이곳은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빛이 도는 쇳물이 지저분하게 길에 고여 있었다. 내가 덕수궁 담 옆으로 난 길을 비틀거리며 걸어가는데 노산 선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여보게, 안 의사가 내게 오셔서 대접 잘 받았다고 한 말씀하고 가셨네. 그런데 자네에게 주라고 선물이라면서 인형을 하나 주고 가시네. 인형가게에서 샀대. 인형이 안 의사를 많이 닮았군.”
“그래요?”
“당장 와서 받아 가.”
“시간도 늦고 술에 취해서 내일에나 가야 하겠습니다.”
 
나는 안 의사가 주고 갔다는 인형에 무언가 조화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산 선생과 얽히면 조화를 당하지 않은 적이 없었던 것이다.
 
“알았네. 2시경에 오게.”
“왜요? 좀 일찍 가면 안 됩니까?”
“그 시간에 보름달 무당을 오라고 했어.”
“함께 만나자고요?”
“음, 인형이 마음에 걸려서.”
“걸리다니요?”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그런 인형이 아닌 것 같아서 말이야. 비방秘方을 해 달라고.”
“알겠습니다.”

다음 날 나는 한 시경에 집에서 출발하였다. 내가 안 의사를 만나고 나서 그런지 왜귀들이 기념관 앞에 진을 치고 있었지만 시비를 걸지 않았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책상 위에 안 의사처럼 생긴 인형이 놓여 있었다. 어디가 아픈 인상을 주는 인형이었다. 서양 사람처럼 말쑥하게 정장을 하고 있었다.
 
“어디가 아프구나.”
 
하는 행각이 들었다. 내가 도착하고 한동안 기다리니 보름달 무당이 왔다. 차가 밀려서 늦었다는 것이었다. 

“어제 노산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가도를 해 보았습니다.”
 
보름달 무당이 말했다.

“뭐 보이는 것이 있던가?”
“네.”

보름달 무당은 가방에서 향로와 향곽을 꺼내었다. 향로를 놓고, 향곽에서 향을 꺼내어 불을 붙여 사방에 휘두르다가 꽂았다. 사기邪氣가 가시라고 향을 피우는 것이다. 나는 노산 선생의 책상 위에 놓인 낯선 인형을 바라보며 보름달 무당이 무슨 말을 하는지 기다려야 하였다.
 
“비방이 필요한가?”
 
노산 선생이 물었다.
 
“비방은 필요 없겠습니다.”
 
보름달 무당이 대답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노산 선생이 안심하자 인형을 들어서 내게 주었다. 나는 인형을 받았다.

“내게 잘못된 애국심 콤플렉스를 일으키게 하는 물건이야.”
 
나는 노산 선생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 어리둥절해졌다.
 
“설명이 필요합니다.”
“이 인형이 누구를 닮았나?”
“안 의사를 닮았지요.”
“표정은?”
“고통을 호소하는 표정이군요.”
“그래. 바로 그걸세. 이 표정이 속임수를 가진 표정이라 잘못된 애국심을 유발한다는 말이야. 이 인형을 만든 자의 사기에 걸려들 소지가 있는 인형이야.”

노산 선생이 너무 오버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된 애국심의 표출이라…….”
“사실 나는 애국심을 잘못 표출했던 시기가 있었네.”
“?”

나는 오리무중五里霧中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노산 선생님에겐 어울리지 않는 말씀 같습니다.”
“사실이야. 자네, 진보주의자들을 보게. 그들은 애국심 콤플렉스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불쌍한 자들일세.”
“그렇게 보세요?”
“그들이 1989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20여 년 동안 헤매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야.”
“애국심 사기에 걸려들었단 말인가요?”
“그렇지. 그들은 치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어린 애와 같은 자들이야.”
 
나는 머리를 끄덕거렸다.
 
“애국가를 부르기를 거부하고, 국기를 부정하는 것은 그들이 잘못된 애국심 콤플렉스에 걸려있음을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일세.”

그들이 추종하는 이념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니고요?”
 
“그들은 그렇게 믿고 싶겠지. 설사 그렇다 해도 그들이 무슨 권리로 우리를 괴롭히는가?”
“우리에게 권리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겠지요. 개인의 자유도 없고.”
 
나는 말을 돌렸다.

“어제 기도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인형이 동자로 변하여 저를 어디로 데려가는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안개가 끼어서 어디로 갔는지 확인을 할 수 없었습니다.”

▲ 안중근 의사는 조부가 안인수, 부가 태훈이다. 자는 준생, 손자는 웅호이다. 조부의 함자는 인수仁壽이고, 신대현감을 지냈으며 상당한 자산가였고, 부의 함자는 태훈으로 신동으로 불릴 만큼 준재俊才였다.
 
나는 그 말을 하면서 가슴이 답답하였다. 아무래도 인형과 함께 있는 동안 무엇인가 사건을 겪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자라……. 동자가 인형이 되었다…….”
 
칼 융은 집단무의식에 내장되어 있는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존재를 아니무스(Animus)나 아니마(Anima)라 하였다. 아니무스는 여자에게 들어 있는 남성성을, 아니마는 남자들에게 들어 있는 여성성을 말한다.
 
보름달 무당은 나와 노산 선생이 나누는 대화의 추이를 주의 깊게 살피고 있었다. 드디어 보름달 무당이 입을 열었다.

“인사하세요. 손뼉을 3번 치세요. 그러면 안 선생님의 집단무의식 안에 있는 안 의사가 감응하실 것입니다.”
 
보름달 무당이 멋진 상담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보름달 무당이 하라는 대로 하였다. 아이러니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중근 의사에게 일본 신사에서 하듯 절하다니! 그러나 생각해 보니 3번 손뼉을 치는 것은 옛날에 삼신이나 혹은 삼성을 청배하던 통신법일 수 있었다. 삼헌三獻이 이 방법을 썼다고 볼 수 있다.

보름달 무당은 내가 절을 마치자, 내 등 뒤로 돌아가 잠깐 내 뒷목을 주물러 주었다. 목에서 긴장을 풀어주려는 것이었다. 시원한 느낌이 왔다. 보름달 무당이 손을 얹은 채로 말하였다.
 
“눈을 감으세요. 제가 선생님이 안중근 의사가 직접 말씀할 수 있도록 도와 드리겠습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안중근 의사님께서 직접 말씀해 주십시오.”
 
보름달 무당이 눈에 보이지 않는 안중근 의사에게 말했다. 내 입술이 저절로 움직이는 느낌이 들더니, 나는 갑자기 트랜스 상태에 빠졌다. 보름달 무당이 내게 보여준 놀라운 능력이었다. 내 입이 말하기 시작하였다. 기이한 일이었다. 칼 융 구스타브가 말한 집단무의식이 깨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안중근 의사가 내 입술에 와서 말하였다. 목소리는 내 목소리가 분명하였으나 주파수에 변동이 있는 것 같았다. 갑자기 나는 무엇을 물어야 할지 몰라서 당황하였다. 보름달 무당이 내 목덜미에서 손을 떼었다. 나는 트랜스에서 빠져나와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안 선생님이 안 의사님을 만나고 싶을 때 안 의사님을 부르세요. 그러면 오실 것입니다.”
“어디에서 오시지요?”
“선생님이 가지고 계신 집단무의식이라는 곳에서 나오십니다.”
“나의 집단무의식은 어디에 있지요?”
“선생님의 쿼크 안에 있습니다.”

나는 보름달 무당이 하는 말을 믿기로 하였다. 나는 양주 땅을 다녀온 후에 또 『안응칠역사』를 또 읽기 시작하였다. 그 기록은 내가 알고 싶은 것을 세세하게 기록하지 않아서 다른 기록들을 찾아보아야 하였다. 그래서 안중근 의사 심문기록을 찾아보았다. 최종으로 만든 사료인데, 제목이 『극비極秘흉행자급협의자조사서兇行者及嫌疑者調査書』로 되어 있었다. 극비문서로 분류되어 있었고, 피의자조사서라는 제목이 정해져 있어서 재판에 넘어가기 전에 심문한 기록임을 알 수 있었다. ‘흉행자 급 혐의자’라 한 것으로 보아서, 이토 히로부미 살해자임을 말하고 있었다. 조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날인 10월 26일에서 시작하여 조사를 마친 11월 7일까지 13일 동안의 심문기록이었다. 
다음에 읽게 된 기록은『이토 히로부미 암살범 안중근 소전小傳』이라는 책에서 발취한 것이다. 이 책은 청삼대학교수青森大学教授인 일본인 시천정명市川正明이라는 사람이 썼다. 전편이 약 2만자, 115폐이지 분량이다. 폭이 좁은 노트에 정중한 필체의 한문으로 쓴 것이다. 시천정명씨는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분노를 쓴 것”이라 하였다.
그의 부친 안태훈이 1874년 갑신년에 경성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임금이 정부를 혁신하고 국민을 개명開明으로 인도하고자 외국에 파견할 우수한 청년 70인을 선발하였다. 안태훈은 70인 중에 1인으로 선발되었다. 이들 청년의 우두머리가 박영효朴泳孝였다. 그해에 박영효 주도로 정변을 일으켰고, 청군淸軍이 개입하여 정변은 실패로 돌아갔다. 박영효는 일본에 망명하였고, 동지였던 학생들은 사로잡혀 처형되거나 유배되었다. 안태훈은 도망쳐 향리鄕里에 숨었다. 이때, 그의 생각이 바뀌어, “국내 정세가 날로 악화되어 가고 있으니, 부귀공명富貴功名을 이루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여유로운 일생을 보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였다.
 
안중근 의사는 부친 안태훈의 의사에 따랐다. 그는 급히 가산을 정리하였다. 그가 7, 80인의 일가 동족을 이끌고 찾아간 곳이 신천군信川郡 청계동淸溪洞이었다. 그는 그곳에 은거隱居하기로 하였다. 안중근이 14세(1892년) 되던 해에 조부 인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조부가 자기를 사랑하며 길러주시던 정을 잊지 못하여 심히 애통한 나머지 병을 앓다가 반년이나 지난 뒤에 회복되었다.(계속)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