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ite Bufflo calf woman. 한자로 바꾸어 쓰면 백파발로여인白婆發鷺女人. 백모신모白旄神母이다.

나는 방을 드나들 때마다 백색 버펄로의 여인을 보게 되었다. 한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안심하게 되었다. 나는 편안하게 앉아서 하루에 1시간씩 『안응칠역사』를 읽어나갔다. 내가 책 읽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밤 11시였다. 12시에 책 읽기를 마치면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습관적으로 그 일을 반복하였다. 

그림을 벽에 건지 3일이 되던 날, 나는 책 읽기를 끝내고 잠자리에 누웠다. 편안한 밤이었다. 나는 꿈을 꾸었다. 흰 버펄로의 여인이 흰 소를 타고 내게 나타났다. 
 
“나를 당신 방에 초대했으면 물 한 잔이라도 주세요.”
 
그녀가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말하였다. 그 말이 혹시 맥족의 언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흰 버펄로가 킁킁거리고 있었다. 초원으로 가자는 뜻인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곧 올리겠습니다.”
“당신은 지금 우가부족牛加部族의 사냥터에 들어와 있습니다. 나는 이곳을 지키는 우모牛母입니다.”
“우모라는 말은 처음 듣는 말입니다.”
“사가부족巳加部族에게는 사모巳母가 있고, 마가부족에는 마모馬母가 있고, 양가부족에는 양모羊母가 있고, 저가부족에는 저모猪母가 있고, 구가부족에는 구모狗母가 있습니다. 당신은 사가 부족에 있는 사모만 알지요?”
“사모는 누구입니까?”
“샤먼입니다.”
“아! 샤먼!”
 
나는 문득 보름달 무당이 떠올랐다. 그는 영어로 말하면 코리언 샤먼이었던 것이다. 샤먼이란 뱀 족표를 인종 아이콘으로 쓰는 풍이족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인디언 샤먼이십니까?”    
“그렇습니다. 내가 있는 곳은 나바로의 오래비 클랜입니다.”
 
나바로의 오래비 클랜은 나바로에 있는 오래 된 인디언 마을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 먼 곳에서 무슨 이유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코리언 샤먼이 보름달이 뜨는 날 내게 부탁하여 당신을 찾아왔습니다.”
“무슨 부탁을 하였습니까?”
“당신을 도와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장 도움을 청할 일이 없었다. 
 
“접신이 필요하면 내게 말하세요. 나는 항상 당신의 곁에 있습니다. 그러면 내가 당신이 원하는 시대로 데려다줄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이 기회에 안중근 의사에게 접신을 할 수 있도록 부탁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만나보고 싶었던 것이다. 
 
“접신을 부탁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 드리겠습니다.” 
 
우모는 내게 다가와서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우모에게서 소 냄새가 났다. 노산 선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러자 우모는 사라졌다. 그림으로 들어간 것이다. 
 
“『안응칠 역사』는 다 읽었나?”
“아직도 읽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더뎌? 서둘러. 다음 프로젝트가 기다리고 있으니.”
“다음 프로젝트라니요?”
“소와 관련이 있는 프로젝트가 있네.”
 
나는 소와 거리가 먼 사람인데 소에 관한 프로젝트가 있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역사와 관련이 있습니까?”
“있지. 소를 키워 농사를 지은 예족穢族을 예족濊族과 맥족 알고리듬으로 찾아가자는 것이야.” 
“시조를 찾자는 것입니까?”
“그런 셈이지.”
 
그렇다면 우모의 신세를 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1차 독촉이야.”
 
노산 선생이 이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안중근 의사를 아시나요?”
 
나는 벽에 있는 우모에게 물었다. 
 
“그분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찾아 주십시오. 급하게 되었습니다.”
“눈을 감으세요.”
 
▲ 일본 정부가 일한합병을 발표하였다. 한국의 황제는 스스로 퇴위하여 일본천황을 받들어 모시고 일본정부에 통치를 위임한다고 인쇄되어 있었다. 또한 한국을 조선으로 다시 고쳐 부른다고 하였다.
 
나는 앉은 자세를 편안하게 하고 눈을 감았다. 우모가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았다. 내 손을 낚아채듯이 끌어 올리니 내가 그대로 달려 올라갔다. 그는 나를 자기의 뒤에 앉혀 주었다.  
 
“연도를 말하세요.”
“1900년대면 되겠어요.”
“가야 할 곳은요?”
“한성입니다.” 
 
버펄로는 어디론가 달리기 시작하였다. 마치 탱크의 바퀴가 무한궤도를 달리며 앞으로 나가는 것 같았다. 갑자기 내 앞에 호외가 한 장 날아와 내 얼굴을 덮었다. 나는 호외(號外,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 임시로 발행하는 신문이나 잡지)를 얼굴에서 벗겨내어 읽었다. 나는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일본을 박살을 내고 싶어졌다. 
“이러면 안 돼지.”
 
나는 지나간 역사에 아무 짓도 할 수 없어서 속수무책束手無策이었다. 
 
“왜 그럽니까?”
 
우모가 물었다. 
 
“한국의 역사에 화가 나서 그럽니다.”
“앞으로 화나는 일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참으셔야 해요.”
 
우모가 하는 말이 맞았다. 일본이 한국을 합병시킨 해가 명치 43년, 서력으로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한 해였다. 대한제국은 연호로 융희 4년, 단기로 4242년을 맞고 있었다.   1910년은 서양역사에서 한국이 공망空亡에 빠져 사형이 선고되는 해요, 한국역사에서는 사망이 선고되는 해요, 단기역사에서 2번 사형이 선고되는 해였다. 
 
“이제 당신이 오고 싶어 하는 시대로 왔습니다.”
 
우모가 말하였다. 내가 내려다보니, 우리가 동궁 앞 상공에 와 있었다. 동궁은 세자가 거처했던 궁인데, 대궐문에 일장기 2개가 게양되어 있고, 일본순사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조선 사람들은 남녀 할 것 없이 그 앞에 모여 있는데 모두 흰색의 한복을 입고 있었다. 
 
“내려주시죠.”
 
흰 버펄로는 육중한 몸을 사뿐히 궁 밖에 안착하였다. 나는 내렸다. 
 
“내가 필요하면 나를 불러요.”
“무어라고 부르지요?”
“우모라고 불러요. 당신이 부르든 아니 부르든 나는 올 것입니다.”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