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히 도당제라 불리는 굿이 대동굿이다. 대동굿은 오래 전부터 마을에서 해 온 굿이다. 하늘과 땅을 잇고 영과 사람을 이어주는 굿이 대동굿이다. 무당이 감응신령을 청배하면 단군왕검이 감응신령으로 오셔서 굿을 주관한다. 이 때 감응신령이 부르면 영계에 있는 많은 신명들이 굿에 참여할 수 있다.

우에노 도시코 여사는 하루에 한 번 도시락을 들고 나를 찾아왔다. 그 시간에 나는 반드시 ‘지구에서 온 사람이 쉬어 가는 집’에 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말처럼 풀을 먹지 않아도 되었고, 비록 하루에 한 번이긴 하지만 밥을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상하게도 나는 우에노 여사를 만나면서 이 이국의 여자에게 애정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미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마치 유배지에 와서 사람이 그리워 느끼게 되는 인지상정(人之常情) 같은 것이었다.
 
내가 우에노 여사의 도시락을 먹기 시작한 지 사흘째 되는 날, 우에노 여사가 뜻밖의 소식을 가지고 왔다. 
 
“한국의 양주에서 도당굿을 한다고 감응신령이 다스리는 지역이 떠들썩합니다. 이 날은 누구나 다 굿을 구경하러 갈 수 있습니다.”
“나도 갈 수 있을까요?”
“갈 수 있습니다. 굿을 하다가 무당이 호명하면 지상으로 내려갔다가 와야 하니까요.”
 
듣던 중 반가운 말이었다.
 
“굿을 언제 하지요?”
“사흘 후입니다. 그때 제가 모시러 오겠습니다.”
 
나는 한 가지 소원이 생겼다. 그 자리에 가면 안중근 의사를 만나게 해 달라는 소원이었다. 그를 만나서 안중근 의사를 힐링할 수 있는 소설을 쓸 자료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아울러 내가 도용했다는 오해를 받고 있는 안중근이라는 이름도 주어 버릴 생각이었다. 나는 남자 관리인에게로 불려갔다. 그는 내 머리를 툭툭 건드려보았다. 
 
“왜, 이러십니까?”
 
나는 불쾌한 느낌이 들어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말머리를 수집하는 자들이 있대. 잃어버리지 않도록 간수 잘 해야 해.”
“그런 걱정은 아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지금은 튼튼하게 아주 잘 붙어 있지만 무당이 주문을 외우고 무슨 수작을 부릴지 모르니까 조심하란 말이야. 말머리를 빼앗기면 마두나찰과 우두나찰에게 잡혀와 이번엔 더 크고 더 무거운 말머리를 쓰게 될 것이다.” 
“다시 풀을 먹어야 한단 말씀입니까?”
“다른 자들은 다 잘 먹는다.”
“저는 먹지 못하겠습니다. 게다가 제게 밥을 해다 주는 여인도 있습니다.”
“그대는 그 여자에게 자네처럼 말머리를 씌어주고 싶은 거야?”
 
남자 관리인이 꽥 소리 질렀다. 내게 조건 없이 호의를 베풀어주는 여자에게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런 것은 제가 바라는 바가 아닙니다.”
“잘 생각했다.”
“우에노 도시코 여사가 오면 대동굿판에 가도 되겠습니까?”
“그 자리는 감응신령이 가시는 자리니까 가도 좋다. 감응신령이 부르면 갔다 와야 하니까.”
 
나는 잠깐 대동굿판을 상상해 보았다. 그 자리에 가면 탈출할 방법이 생길지 모르겠다. 왜 그런 상상이 떠올랐는지 알 수 없었다. 드디어 우에노 도시코 여사가 나를 데리러 왔다. 그러나 도시락은 들려 있지 않았다. 
 
“선생님에게 도시락을 가져다주지 말라는 엄명이 떨어져서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다음부턴 선생님이 잡숫는 풀을 가져다 잘 갈아서 즙을 내어 오겠습니다. 배가 고프셔도 참으셔야 합니다.”
 
우에노 도시코 여사가 안쓰럽다는 듯이 말하였다. 식사를 할 수 없어서 고민에 빠져 있던 나에게 그 정도만 해도 낭보였다. 
 
“고맙습니다.”
 
그때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보름달 무당이 내게 준 안경의 효능이 정지가 된 것 같았다. 나는 눈물이 줄줄 흘러서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미안합니다. 눈물을 흘리고 있어서…….”
“무슨 일이 있나요?”
 
미우라 도시코 여사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울어야 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눈물이…….”
 
그것은 플라스마처럼 나를 혼란에 빠뜨렸다. 플라스마에 빠지면 몸이 죽처럼 흐믈흐믈 해졌다. 나는 미우라 도시코 여사에게 이끌려 굿판이 벌어진다는 중공간으로 갔다. 그곳은 지구 상층부 하늘인 성층권과 맞닿아 있는 공간으로 그 위쪽은 광활한 우주가 시작되는 곳이었다. 그래서 중공간이라 부를 수 있었다. 말하자면 우주의 마당과 같은 곳이라 할 수 있었다. 누구나 다 영계 터미널을 통과해야 그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는 영계 터미널을 통과하였다. 내가 영계터미널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몸이 유체이탈을 하여 플라스마처럼 변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영으로 변할 수 있는 중간 단계에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었다. 
 
우리는 행동이 자유스러워 보이는 무수한 영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은 위에서 원형으로 둥글게 뚫려 있는 구멍으로 지구의 한 곳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눈물이 흐르고 있어서 그곳을 정확하게 볼 수 없었다. 미우라 여사가 손으로 내 눈물을 닦아 주었다. 그러자 뻥 뚫린 공간으로 지구의 한 곳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보입니다. 보여요.”
“굿을 하고 있지요?”
“그렇습니다.”
 
내가 보니 그곳은 양주에 있는 보름달 무당의 집 앞에 있는 마당이었다. 집 주위가 숲에 둘러싸여 있었다. 보름달 무당이 방울을 흔들고 부채질을 하면서 중공간을 향하여 무엇인가 사설을 읊고 있었다. 말하자면 주문을 외우는 것이었다.(계속)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