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셔요. 안 선생!”

보름달 무당이 사설하는 목소리로 나를 맞아들였다. 경기민요조의 창법이었다. 
 
“자네,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있군.”
 
노산 선생이 말하였다.
 
“저는 선생님에게 따져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는 노산 선생을 노려보며 말하였다. 
 
“말 가면을 쓰고 내게 따지겠다 이거지? 그렇다면 따져 보게.”
“왜, 저를 곤경에 빠트리십니까?”
“자네가 타고난 팔자가 그러니 난들 어찌하겠는가.”
 
그렇다면 나는 더 따질 말이 없었다. 보름달 무당이 내게 다가와서 역시 경기민요조로 사설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어떤 할머니가 선생님이 오신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가 누구인지 궁금하였다. 혹시 미우라 도시코 여사의 어머니이거나 내 할머니일지 모른다. 
 
“들어오세요.”
 
보름달 무당이 말했다. 나는 누워있는 나를 보아야 하였다. 
 
“나를 보고 싶습니다.”
 
나는 감응신령에게 말했다. 
 
“나를 따라와라.”
 
감응신령이 말하였다. 감응신령은 나를 건넌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물론 보름달 무당과 노산 선생이 동행하였다. 내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이 사람을 원상태로 돌려놓아라.”
 
감응신령이 보름달 무당에게 명령하였다. 보름달 무당이 방울을 흔들고 부채를 부치면서, 
 
“몸 안으로 들어가세요.”
 
하고 명령했다. 나는 잠시 내 몸을 내려다보다가 코안으로 들어갔다. 보름달 무당이 한동안 신장축원을 하였다.  
 
감응신령이 한기가 감도는 서늘한 손가락으로 내 두 눈을 지그시 눌렀다. 그러자 나는 눈이 떠졌다. 나는 이제 지겨운 명상에서 깨어나 소생한 것이었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앉고자 했으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두나찰과 우두나찰이 내게 달려들었다. 
 
“너는 하늘의 종교법을 위반하였다. 몸에 들어가라는 판결을 받지 않고 몸에 들어가는 것은 위법이야.”
 
짜증스러운 일이었다. 
 
“여행의 결과를 말하라.”
 
감응신령이 내게 명령하였다.
 
“말머리 가면을 쓰고 풀을 먹었습니다.”
 
나는 이실직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의 이름을 도용한 죄를 지었구나. 그래서 마두나찰이 된 것이야.”
“데리고 가야 하겠습니다.”
 
마두나찰이 감응신령에게 말하였다.
 
“이 자가 할 일이 있는데 왜 데려가려는 것이냐?”
 
감응신령이 물었다.
 
“도주의 우려가 있습니다.”
“이자가 할 일은…….”
 
감응신령이 마두나찰의 귀에 대고 무엇인가를 말하였다. 마두나찰과 우두나찰이 내 곁에서 떨어졌다. 
 
“네가 일본에 다녀와야 하겠다.”
“왜요?”
“일본에 가면 안중근을 모욕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 그자에게 네 말머리를 씌워주고 오는 것이야.”
“그 자가 누구입니까?”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하는 자이지. 너처럼 안가 성을 가진 자이다.”
“그런데 이게 벗어지지 않아서…….”
걱정할 것이 없다. 자연히 벗어질 테니까.”
 
나는 나의 영이 말머리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을 깜빡 잊은 상태에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짜증스럽게도 머리가 몹시 아팠다.  
 
“벗겨 드릴게. 기다리세요.”
 
보름달 무당이 말했다. 
 
“어떻게 벗겨 주겠어요?”
“마두나찰거리가 있습니다. 그 굿을 해야 합니다. 예전엔 공부하던 선비들이 잘못해서 영계에 가서 마두가면을 쓰고 나찰이 되어 돌아오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런 경우에 마두나찰거리를 하여 말머리를 벗겨주었습니다.”
 
마두나찰거리가 있다는 말은 처음 듣는 말이었다. 어쨌거나 안심이 되는 말이었다.
 
“그런데 안 선생님 대신에 말머리를 쓰고 말춤을 추어야 할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말춤을 잘 추는 사람을 하나 구했습니다.”
 
나를 위하여 그 정도의 배려를 해 줄 수 있다니 안심이었다. 내 눈에 한 사내가 보였다. 그는 말춤을 추고 싶어서 엉덩이를 들썩거리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제가 미안하지요. 본의 아니게 말머리를 쓰시게 해서.”
 
보름달 무당은 마두나찰거리로 들어갔다. 한바탕 알아들을 수 없는 사설을 읊고 나서, 말머리 탈을 쓴 한 사내를 불러내어 춤을 추게 하였다. 그가 추는 말춤은 기수가 말 위에 앉아서 말과 함께 달려가는 춤이었다. 춤이 아니라 말위에 앉아서 몸을 들까불리는 흉내를 내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몸이 가벼워졌고, 나도 모르게 춤을 추고 있었다. 그냥 겅정겅정 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땅에서 말춤을 추면 하늘에서 말머리를 벗겨주소서.”
 
보름달 무당이 주문을 외었다. 그러자 내 머리에서 말머리가 스르르 벗겨지더니 내 손에 들려 있었다. 나는 홀가분함을 느낄 수 있었다. 마두나찰거리가 끝났다.
 
“자네가 다시 잡혀가지 않으려면 아베(安部)라는 자에게 말머리를 씌어주고 와야 해.”
 
감응신령이 말하였다.    
 
“제가 두 분의 안중근을 위하여 춤 한번 추어 드리겠습니다.”
 
보름달무당이 말하였다. 
 
“듣던 중 반가운 말이야.”
 
노산 선생이 말했다. 노산 선생이 왜 보름달무당을 사랑하셨을까?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보름달무당이 혼자서 대감타령을 부르며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여느 무당이 추는 춤과는 다른 춤을 추고 있었다. 요란스러운 춤이 아니라 임금님 앞에서 추듯 예의를 갖추어 추고 있었다. 격식을 따라 춤을 추었고 동작을 조신하게 하였다.
 
“지금 추는 춤이 대감님 춤인데 말이야. 대감님이 누군지 아나?”
 
감응신령이 물었다.
 
“글쎄요…….”
“그야 당연히 모르겠지.”
 
보름달무당이 내게 다가와서 “단군왕검이 감응신령이십니다.”하고 말했다. 
 
“잘 알아두게.”
 
감응신령이 말했다. 나는 바보 멍청이가 된 느낌이 들었다. 노산 선생은 보름달무당이 추는 신비스러운 춤에 취하여 전생과 이승을 넘나들었다. (계속)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