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잠에 빠졌고 꿈에 시달렸다. 내가 꾼 꿈은 몇 개의 상징이 연결된 꿈이었다. 전혀 줄거리가 맞지 않는 엉뚱한 상징들이 뒤죽박죽으로 뒤섞여 나타났다. 

전쟁하는 장면이 뒤섞여 있었다. 내가 겪은 6.25전쟁과는 다른 전쟁이었다. 군인들이 입은 복장이 구식이었고, 전쟁도 구식 전쟁으로 보였다. 총을 가지고 있는데 구식 체코제 총처럼 보이는 총을 든 군인들과 화승총을 든 군인들이 나타났다. 군인들이 전투하는 데, 무성영화를 돌리듯 보이는 전투를 하고 있었다. 내가 청국과 일본이 전쟁하는 장면을 꿈꾸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3일째 되는 날 하얀 토끼가 한 마리 나타났고, 많은 사람이 이 하얀 토끼를 쫓아가고 있었다. 그들이 일본 사람들로 보였다. 그들의 뒤를 조선 사람들이 쫓고 있었다. 어디에선가 이상한 군복을 입은 청년이 나타나 오갈 데가 없는 토끼를 끌어안았다. 이어서 총소리가 들리고 토끼와 군인이 모두 쓰러졌다. 군인들의 복장이 혹시 대한민국 군대의 복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구식 복장이어서 그렇게밖에 생각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왜 이런 꿈이 꾸어지는지 이유를 할 수 없었다. 예지몽이라고하기엔 시대가 너무 멀리 앞쪽에 가 있었다. 청일전쟁이 일어난 해가 1894년 7월 25일이고 전쟁이 끝난 해가 1895년 4월이니까, 지금으로부터 1백10년 이전에 일어난 전쟁이었기 때문에 미래를 예시하는 예지몽이라 할 수 없었다. 
 
나는 꿈의 의미를 풀기 위하여 자료를 조사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왜 하얀 토끼가 나타난 것일까? 토끼는 일본에서는 건국신화와 관련이 있는 동물이다. 일본 신화에 털이 하나도 없는 벌거벗은 토끼가 나온다. 이 토끼의 몸에 약을 발라주니 털이 자라기 시작하여 정상적인 토끼로 돌아간다. 최초의 일본을 벌거벗은 토끼로 상징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에 태양만 있는 시대가 있었다. 이 시대가 천조대신의 시대, 즉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시대이다. 그래서 음양조화를 맞추기 위하여 달의 신인 월신이 필요하였다. 이 달이 조선(朝鮮)의 조(朝)자에 들어 있는 월月자였다. 월은 12지에서 보면 토끼로 상징되는 묘卯이다. 묘가 조선을 벗어버리고 왔으므로 벌거벗은 토끼가 된 것이다. 벌거벗은 토끼가 일본의 월이 되려면 상처가 아물고 없어진 털이 다시 나야 한다. 털이 다시 나면 조선(朝鮮)의 조(朝)자를 만들기 위하여 양羊의 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일日(일본)과 월月(조선)이 조화를 이루니 음양이 화합하여 욱일승천(旭日昇天)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일본은 목표 없이 달리고 있었고, 조선은 목표 없이 달리는 일본을 쫓아가고 있었다. 말하자면 장님 일본을 멍청한 바보 조선이 따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멍청한 바보가 장님을 따라가다가 한 청년에게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울리는 한 방의 총성에 일본과 한국 모두 쓰러진다. 
 
그런데 토끼를 끌어안은 청년은 누구란 말인가? 그가 안중근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였다. 그런데 지금 시대에 와서 이런 꿈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한창 불가사의한 꿈에 시달리고 있을 때 노산 선생이 내게 전화를 걸었다. 
 
“자네, 안중근 기념관으로 오게. 기념관 밖에 자네가 오기를 기다리는 친일파 종귀(從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게야. 조심하게.”
“제가 어떻게 그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나요?”
“자네가 영계에 가서 마초(麻草)를 먹었으니 영안이 열려 볼 수 있을 게야.”
“제가 먹은 풀이 저승길을 볼 수 있게 한다는 그 풀이란 말입니까?”
“그렇다네. 그 풀을 먹은 이상 자네의 의식이 어디든지 갈 수 있을 거야. 그렇다고 의식을 남용하지는 말게. 안중근에게 한정해야 해.”
“왜요?”
“안중근 콤플렉스를 치유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데에 써야 하니까.” 
 
나는 노산 선생이 하늘의 의도를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나는 집을 나서 안중근 기념관을 향하여 떠났다. 내가 친일파 종귀를 볼 수 있게 되었다니 기대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무슨 해코지를 할지 모르므로 겁이 나기도 하였다. 나는 종잡을 수 없는 심정으로 안중근기념관 입구를 바라보게 되었다. 관람객은 하나도 없었다. 대신에 도리이(조거鳥居)와 관폐조선신궁(官弊大社朝鮮神宮)이라 새긴 석주石柱가 서 있던 곳에 일진회(一進會)라 쓴 어깨띠를 비스듬히 두른 친일파 종귀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저들의 기세가 자못 등등하여 관광객이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계속)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