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찰들에게 물었다. 

“이제 삼성대왕이 모여서 처벌의 수위를 결정할 것입니다.”
“삼성대왕이 누구입니까?”
“한인 한웅 단군왕검 3분입니다.”
“미안해요. 당신을 벌을 주려고 이곳에 데려온 것이 아니었는데…….”
 
▲ 마두나찰
 
동녀가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자세히 보니까, 죽자와 동녀가 오버랩 되어 있었다.
 
“내가 너한테 가슴을 보여주었을 때 내가 죽자라는 걸 알아보았어야지. 너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동녀가 속상해하였다.   
 
“네가 가석방될 때나 나는 오게 될 거야.”
 
동녀가 빠이빠이 하고 사라졌다. 그러나 그 자리에 죽자는 남아 있었다. 
 
“나는 늦기는 했지만 일부종사(一夫從事)하기 위하여 너를 찾아온 거야.”
 
죽자가 말했다. 그 말은 내 어머니가 늘 내게 들려주던 말이었다. 
 
“여기는 침대가 없고, 식탁도 없고, 목욕탕도 없고…….”
 
나는 불평하였다. 
 
“그러나 네 곁에 내가 있지 않아?”
 
죽자는 나를 위로하였다. 감옥에 죽자와 둘이 함께 있게 되어 다행이었다. 밖에서 나찰들이 교대해 가며 나를 지키기 시작하였다. 나찰들은 말머리와 소머리를 창살 안으로 불쑥불쑥 들이밀어 기분을 상하게 하였다.
 
“지옥이 따로 없군.”
 
나는 짜증이 나서 불평하였다.
 
“조용히 해. 삼성대왕이 오신다.”
 
우두나찰이 경고를 하였다. 삼성들이 창살 앞에 나타났다. 한인천제는 홍산에서 출토된 용을 얹은 관을 쓰고 있었고, 한웅천왕은 우하량에서 출토된 원형의 옥기를 장식한 관을 쓰고 있었고, 단군왕검은 올빼미 옥장식을 얹은 관을 쓰고 있었다. 3분이 모두 다 포를 입었는데 포에 복대(腹帶)를 두르고 있었다.  
“이 자가 여기에 잡혀 올 사람이 아닌데 왜 잡혀 왔지?”
 
한인천제가 이성(二聖)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문차요비(文車妖妃)의 농간인 것 같습니다.”
 
단군왕검이 말하였다. 문차요비는 일본 땅에서 연서(戀書) 속에서만 산다는 여자귀신이었다. 문차요비는 여자를 배신하는 사내를 공공의 적으로 여기는 귀신이었다. 그래서 늘 여자들의 청원에 묻혀 살고 있었다.
 
“너는 누구를 배신하여 여기에 잡혀왔느냐?”
 
한인천제가 내게 물었다.
 
“저는 아무도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맹세코 말씀드립니다.”
 
나는 자신 있게 대답하였다.
 
“야! 너는 평생 나를 버렸지 않아?”
 
죽자가 항의하였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야. 그렇다면 그건 6.25사변이 주범입니다. 6.25사변을 일으킨 자를 잡아다 처벌해야 합니다.”
“네가 이 여자를 찾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찾지 않은 것이 아니냐?”
 
웅녀와 결혼한 경력이 있는 한웅천왕이 심문하였다.
 
“아닙니다. 저의 능력으론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전쟁을 일으킨 주범을 잡아서 처벌해야 합니다.” 
 
나는 울화가 치밀었다.
 
“불가항력이었다 이거지?”
 
한인천제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대는 이 자를 찾아달라고 삼성부(三聖府)에 청원한 적이 있는가?” 
 
한인천제가 죽자에게 물었다.
 
“문차요비에게 청원하였습니다.”
“홍익인간죄(弘益人間罪)를 범했으므로 이 자를 처벌해야 합니다.”
 
단군왕검이 말하였다. 
 
“나는 억울합니다.”
 
나는 항의하였다.  
 
“문차요비가 원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문차요비를 호출하
라.”
 
한인천제가 우두나찰에게 명령하였다. 우두나찰이 문차요비를 대령하였다. 문차요비는 화려한 기모노 차림으로 나타났으나 다리가 연기에 감추어져 있었다. 
 
“이 자를 고발한 이유를 말하라.”
 
한인천제가 말했다.
 
“고발한 것이 아닙니다. 이 여자의 가문에서 이 자를 찾아 달라는 청원이 있어서 천신만고 끝에 찾기는 하였으나 여기에 와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석방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문차요비가 말하였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왜, 이런 착오가 일어난 거야?”
 
한인천제가 화를 내었다. 
 
“실은 이 자가 감응신령에게 보고할 것이 있는데 자기가 해야 할 일을 깨닫지 못하고 있어서 깨닫게 해 주려고 구속시켰습니다.”
 
단군왕검이 말하였다. 단군왕검은 감응신령을 겸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직무에 관한 사항이니 단군왕검이 결정해야 하겠군.”
“구류를 좀 살리고 석방하겠습니다.”
 
단군왕검은 부정기형의 구류를 선고하였다. 단군왕검이 화가 풀리면 석방하겠다는 것이었다. 삼성대왕이 감옥을 떠났다. 감옥엔 나와 죽자만 남았다. 나는 배가 고팠다. 그러나 식사를 해결할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식사는 어떻게 해결합니까?”
 
나는 창살 밖에 다가온 우두나찰에게 물었다.
 
“이 곳에 갇혀 있으면 자연히 해결책이 나옵니다.”
 
우두나찰이 태평하게 말했다. 두 나찰이 떠났다. 나는 문득 동녀에게서 받은 안경과 지팡이가 있다는 생각이 났다. 안경은 이미 내 눈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지팡이는 이미 내 몸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나는 주변을 살피기 위하여 슬쩍 감옥을 나왔다. 그러자 안경과 지팡이가 도움을 주기 시작하였다. 나는 어둠 속의 안개를 뚫고 걸어갔다. 
 
“나랑 같이 가야 해.”
 
죽자가 말했다. 우리가 한곳에 다다르니 안개가 뚫려 있고 인간이 사는 세상이 내려다보였다.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고 싶어 내가 있을 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보름달 무당의 유체이탈 의자에 내가 앉아 있었다. 보름달 무당이 내 앞에서 서서 전화를 하고 있었다. 인디언 샤먼과 통화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녀도 그대로 자기 자리에 서있었다. 나는 내가 갇혀 있는 감옥으로 돌아왔다. 할 일이 없으므로 잠이나 자기로 하였다. 죽자가 자기가 입은 귀신복을 펼쳐서 내 몸을 덮어 주었다.  
 
“여보시요!”
 
나를 깨우는 목소리가 들렸다. 마두나찰이 부르는 목소리였다. 삼성이 다시 나타났다. 마두나찰이 나를 삼성 앞에 무릎을 꿇렸다. 검찰관과 변호인이 없는 재판이 시작되었다. 
 
“이제부터 그대에 대한 재판을 시작하겠다.”
 
재판관이 말하였다.
 
“피고인은 이름을 대라.”
“안중근이라 합니다.”
“왜 타인의 이름을 도용하는가?”
“도용한 적이 없습니다.”
“지금 안중근이라 하지 않았는가?”
“부모가 지어준 이름입니다.”
“그대는 지금 타인의 이름을 도용하여 쓰고 있다.”
 
나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증인을 대령하라.”
 
재판관이 마두나찰에게 명령하였다. 우두나찰이 보름달 무당을 재판정에 입장시켰다. 보름달 무당이 부복하였다. 보름달 무당과 내가 살을 스칠 정도로 붙어 있게 되었다. 
 
“피고인의 이름이 안중근이 맞는가?”
 
재판관이 질문하였다.
 
“맞습니다.”
 
보름달 무당이 진술하였다. 
 
“영계에서 자기의 이름을 도용하는 자가 있다고 탄원이 들어왔다. 본 법정에서 여러 가지 사안을 검토한바 처벌이 필요하다고 사료되어 그대를 기소하겠다. 할 말이 있으면 하라.”
“유죄판결을 받으면 지옥으로 갑니까?”
“지옥 같은 것은 없다. 우주의 부정을 청소하는 데에 동원될 것이다.” 
 
나는 한숨이 나왔다. 
 
“그대의 이름 안중근이 그대가 타인의 이름 안중근을 도용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렇다니 나는 더 할 말이 없었다.
 
“타인의 이름을 도용한 죄를 물어 2년 형에 처한다. 단 피고인이 법원의 명령에 복종하겠다고 서약하면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3년을 다 채웠을 시는 형을 면제하도록 하겠다.”
 
재판관이 판결하였다. 나는 판결에 따라 나찰들에게 연행되어 어두운 안개 속을 한참을 걸어가서 양옥처럼 지은 집에 감금되었다. 죽자가 나를 따라왔다. 집에는 남자 관리인과 여자 관리인이 있었다. 나찰들이 관리인에게 나를 인계하고 돌아갔다. 
 
“잘 왔다. 이곳에선 규칙을 잘 지키기만 하면 생활하는 데에 어려운 일은 없을 것이다.”
 
남자 관리인이 말하였다. 관리인은 내가 수감되어 있을 방을 정해 주었다. 그 방은 1층 중간에 있었다. 10여 개의 방이 1, 2층에 나뉘어 있는데, 방에 수감자들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너무나 조용해서 음산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관리인과 면담을 해야 하였다. 내가 방문을 노크하자 안에서 문이 스르르 밖으로 열리며 ‘들어오게’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방안으로 들어갔다. 남자 관리인의 책상 위에 말머리 가면이 놓여 있었다. 마두나찰이 쓰는 가면과 같은 가면이었다. 관리인은 내게 말머리 가면을 내밀었다. 
 
▲ 말머리 가면
 
“이 가면이 마음에 드는가?”
 
나는 말머리 가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래?”
“자네에게 선물로 줄까 했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니 유감이군.”
 
남자 관리인은 실망하는 눈치였다. 
 
“그렇지만 어디 써 보게나.”
 
남자 관리인이 명령하니 써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말머리를 들어 머리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리 눌렀다. 마치 여자의 스타킹을 뒤집어쓰는 느낌이 들었다. 
 
“아주 그럴 듯하네.”
 
남자 관리인은 만족하는 눈치였다.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자, 이제 벗게.”
 
나는 말머리 가면을 벗으려 했으나 벗어지지 않았다. 힘을 주어 말의 두 귀를 잡아당겼으나 허사였다. 광대뼈를 감싸고 잡아당겼으나 허사였다.
 
“안 벗어집니다.”
 
나는 용을 쓰며 말하였다.
 
“안 벗어질 거야. 죄인에게 씌우는 칼이라고 생각하게. 자네가 형기를 다 마치면 말머리 가면이 저절로 벗어질 것일세. 이제부터 자네는 안중근이라는 이름을 쓰지 못하고 마두나찰이라 불리게 될 것이야. 남의 이름을 함부로 쓴 죗값이라고 생각하게.”
 
나는 울고 싶었다.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계속)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