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당이 입는 감응신령의 복색. 홍갓을 쓰고 홍포를 입는다. 홍포와 홍갓은 단군왕검의 관복官服이다. 방울과 부채를 들었는데, 백포白布를 들고 있으면 단군왕검을 청배한다는 뜻이 된다. 방울은 팔여八呂의 음音을 진동시키고, 부채는 풍이족風夷族 조상을 불러들인다는 뜻이 있다.

“굿을 자주 보셨나요?”
“이곳에 있으면, 굿을 자주 보게 되지요. 무당이 굿을 하는데, 하늘이 뚫리고 영들이 모여들어 내려다보이므로 보지 않을 수 없어요.”
“보기 싫으면 보지 않으면 되지 않아요?”
“그렇게 할 수 없답니다.”
“왜요?”
“굿을 할 때 무당이 보내는 주파수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요? 왜요?”
“내게 맞는 주파수를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름달 무당에게 감응신령이 붙어 있었다. 감응신령은 홍색 포를 입었고, 머리에 홍갓을 쓰고 있었다.

“저분이 감응신령입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아요.”
“저분이 왜 무당 흉내를 내고 있지요?”
“무당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무당을 돕고 있는 것입니다.”

미우라 도시코 여사는 굿을 자주 보아서 그런지 굿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일본에도 굿이 있지요?”
“있습니다. 일본 샤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요.”
“그렇군요.”
“영험한가요?”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형식적이라 할까…….”
“왜 그렇다고 생각하시나요?”
“한국의 무당처럼 감응신령을 불러내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미코가 추는 춤은 아름답고 예쁘더군요.”
“그러나 한국의 무당처럼 신명이 없어요.”
“굿에 대하여 연구를 많이 하신 것 같습니다. 지루하다거나 질리지 않아요?”
“그런 건 없습니다. 요즈음은 신령한 무당에게 굿을 부탁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제가 영계에 있으니 방법을 모색 중입니다.”
“무당에게 실려 굿을 해 달라고 청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제가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더군요.”

나는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내가 보름달 무당에게 가서 지바 씨를 위하여 굿을 해 달라고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이곳에서 풀려나면 지바 선생을 위하여 굿을 해 달라고 부탁하겠습니다.”

나는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유체이탈상태에 있는 나의 육신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였다.

“저기를 보세요. 방이 있고, 방안에 누군가 누워 있어요. 아무래도 탈혼상태(脫魂狀態)에 있는 것 같습니다.”
 
미우라 도시코 여사가 놀라 말하였다. 나는 그가 가리키는 곳을 내려다보았다.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은 외모로 보아서 내가 틀림이 없었다.

“나예요.” 

나는 가슴이 떨리는 것을 느끼며 말하였다. 나는 감응신령에게 제발 나를 불러달라고 청원하였다. 내가 이런 이상한 곳에서 벗어나 내 몸으로 찾아 들어갈 수만 있다면 나는 소생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나는 갑자기 내 몸이 화끈 달아오르는 충격을 받았다. 나는 내 몸이 붕 뜨는 느낌을 받았을 때, 미우라 도시코 여사에게 작별인사를 나눌 새 없이, 쏜살 같이 양주 땅을 향하여 떨어졌다.

“일어나라.”

감응신령이 내게 명령하였다. 나는 일어섰다. 그런데 내가 보니 나는 굿청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 보름달 무당의 집이 있는 뒷산에 떨어진 것이었다. 보름달 무당의 집이 산 밑에 있는데, 전철역에서 20분은 족히 걸어야 할 거리였다. 주위가 송림으로 덮였는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소나무의 신선한 향기가 더 짙어지는 것 같았다. 드디어 나는 집을 향하여 산에서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보름달 무당의 집은 개량식 농촌주택으로 지은 집인데, 마치 무슨 별장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농로 입구에서부터 콘크리트로 포장한 길을 따라가니 그 끝에 집이 있었다. 노산 선생이 대문을 등지고 서 있었다. 나는 대문으로 들어섰다. (계속)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