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pi 인디언의 예언바위에 새겨진 예언지팡이. 하늘에서 우주인이 땅에 내려오고 이들이 땅에 정착하여 곡식이 자란다. 예언지팡이는 그들이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1세계에서 제5세계까지 이동한다고 한다. 나바호 가까운 곳의 Bear Clan(熊族 마을) 가까운 곳에 있는 고대유적이다. 예언지팡이를 잡고 있는 사람을 kachina라 한다. 우리말로 클란을 인솔하는 지도자라는 뜻인데 우리 무교에서 말하는 神將, 山神 급의 사람들이다.

나는 내가 먹은 마초가 내게 힘이 솟게 하는 것을 느꼈다. 마초의 힘을 믿고 그들의 귀신저지선(鬼神沮止線)을 향하여 접근하였다. 문득 지팡이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났다. 지팡이의 용도가 궁금했는데, 꺼내어 한 번 써보기로 하였다. 내가 지팡이를 꺼내서 보니 호피 인디언의 예언 문장이 새겨있었다. 나는 지팡이를 창처럼 앞으로 내밀고 전진하였다. 나는 인디언 전사들이 어디에선가 이리로 몰려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고 그들이 내 눈에 보였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조상은 그대의 조상과 같은 조상이다.”
 
인디언 추장으로 보이는 자가 말했다. 내가 책에서 읽은 카치나로 불리는 존재였다. 인디언들의 이동을 이들이 주도하였다. 그들은 북미와 중미를 거쳐 남미에 도달하였다. 나는 저들이 갑자기 나타난 이유를 몰라서 헷갈리고 있었다.  
 
“제5세계! 하고 소리치게.”
 
노산 선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노산 선생이 외치는 소리가 이해되지 않았다.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제4세계에서 탈출하란 말이야!”
 
다시 더 강도가 높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주로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영계로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왜귀 추종자로 보이는 한귀韓鬼가 내 앞을 막았다. 대단히 흉측한 가면을 쓰고 있는 자였다. 그의 뒤에 왜귀가 있었다. 예언의 지팡이가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한귀를 향하여 다가가고 있었다. 
 
“제5세계!”
 
내가 소리쳤다. 그러자 한귀가 기력을 잃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는 한귀를 넘어 앞으로 전전하였다. 나는 지금 제4세계를 뛰어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문과 지팡이의 위세에 눌렸는지 왜귀들은 내게 접근하지 못했다. 
 
드디어 나는 노산 선생의 사무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사무실은 해악을 끼치는 귀신들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선반 위에 신물들이 놓여 있거나 벽에 붙어 있었다. 모두 별난 것들이었다.
 
“보름달 무당이 인디언이나 인디오나 유목민에게서 수집해 내게 준 것들이야.”
 
노산 선생이 웃으며 말하였다.
 
“종류가 다양하군요.”
“이 신물(神物)들은 모두 다 맥족의 후예들에게서 나온 것들이야.”
“맥족의 후예라면?”
“동이족의 원족(遠族)이 라는 말이지.”
“원족이라……. 너무 막연하군요.”
“그들의 근거지는 만주에 있는 송눈평원(松嫩平原)과 송화강(松花江) 유역이야. 이들이 이동을 시작하여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어. 단군왕검이 조선을 선포하기 전에 세계 순방을 했기 때문에 그들이 전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었지. 그래서 이들의 종족이나 국토 이름에 막이나 맥이나 마가 들어가게 된 것이야.”
 
노산 선생은 방안을 빙 한 바퀴 돌면서 설명하였다.
 
“호피 인디언의 신화에 보면 그들의 조상이 하늘에서 온 우주인이라 하던데요.”
“우리의 단군신화를 보게. 그게 우주인 신화가 아니고 무엇인가?”
 
단군신화에 보면, 한웅천왕이 오가와 함께 삼위성과 태백성 사이의 하늘에 떠 있었다. 그들은 인간이 홍익할만한 곳을 찾아서 착륙하였다. 거기가 아사달이었다. 신화의 내용이 그러하였다. 
 
“하긴 그렇군요.”
“자네에게 그림을 하나 주고 싶은데 하나 고르게.”
 
나는 노산 선생이 준다는 호의가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선생이 또 무슨 장난을 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필요 없습니다.”
“나를 믿지 못하는군.”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받게.”
 
▲ 남산의 조선신궁 입구. 남대문에서 올려다볼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 지금의 도서관 자리 근처가 된다. 필자의 기억에 따르면, 일제로부터 해방된 후에 중부경찰서에서 신임 순경들이 훈련을 받았다. 그들은 이북에서 이남으로 피란 온 학생들이었다. 나는 충무로 3가 중부경찰서 맞은편에 살았으므로 이곳은 동네 조무래기들의 놀이터였다. 저 3명의 조무래기들 중의 하나가 나일지도 모른다. 해방이 되던 해에 나는 7살이었다. 일제는 남산의 이름 목멱산木覓山을 춘무산春畝山으로 고쳤다.
 
노산 선생이 강압적으로 나오니 나는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벽에 걸린 그림들을 하나하나 둘러보았다. 그림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이 그림을 주십시오.”
“좋아. 가져가게. 자네가 매일 물 한 그릇을 올려준다면 횐 버펄로를 탄 여인이 좋아할 거야.”
 
노산 선생이 묘한 말을 하였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아냐. 그냥 한 소리야.”
 
노산 선생이 시치미를 떼었다. 나는 노산 선생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이 그림을 창과 마주 보는 벽에 걸었다. 그전에 풍경화를 걸었다가 떼어낸 자리였다. 그 풍경화가 힐링이 되지 않아서 뻥튀기장수에게 주어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그 자리가 늘 허전하였다. 흰 버펄로의 여인을 그 자리에 걸으니 방 안의 분위기가 신비한 느낌이 돌기 시작하였다.(계속)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