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옥중기를 읽고 있는데, 보름달 무당으로부터 밤늦게 전화가 왔다. 웬일인가 싶었다. 그가 늦은 시간에 내게 전화를 걸어 올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밤늦게 전화 걸어 죄송합니다.”
 
보름달 무당이 양해를 구했다.
 
“괜찮습니다.”
 
내가 말했다.
 
“제가 모시고 있는 성수 할머니가 제게 나타나셔서 선생님의 주변에 왜귀倭鬼와 한귀韓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으니, 왜귀들과 한귀들이 씌워주려는 고를 풀고 살을 풀어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기이하게 생각되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성수 할머니가 어떤 분인가요?”
“옛날에 마포나루에 유명한 당집이 있었는데, 용한 무당이 한 분 계셨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누군가 그 당집을 유지했는데, 마포나루에 있던 새우젓도가들이 없어지면서 당집도 없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언젠가 제게 그 할머니 무당이 성수로 들어오셨다는 것을 알게 되어 환을 그려 신당에 모시고 있습니다.”

▲ 당인리 쪽의 마포. 당인리 발전소가 들어서고 발전용 석탄을 하역했다.

나는 어려서 내 외사촌 형으로부터 외사촌형의 외가 쪽에 그런 분이 계셨다는 말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분이 보름달 무당의 성수로 들어오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보름달 무당이 내 어머니의 외가 쪽에 그런 분이 있다는 것을 알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듣고 계신 겁니까?”
 
내게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보름달 무당이 물었다.
 
“듣고 있습니다.”
 
나는 통화를 끝냈으나 머리를 한 방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얼마 전에, 나는 한 명상단체에서 마고에 대하여 강의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바 있었다. 내가 소설을 써서 발표하기 시작한지 얼마 아니 되는 1984년경에 마고라는 화두에 나는 갑자기 마고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마고 연구자가 되어 살아 온지 20년이나 되었다.

요즈음 마고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집단무의식의 맨 밑바닥에 마고가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칼 융이 말한 집단무의식은 우리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무의식들 중에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특정한 의미나 이미지를 말한다. 가령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단군왕검의 이미지가 그런 것이다. 단군왕검에 대한 집단 무의식은 외국인이라면 학습효과로 얻을 수 있는 이미지이지만, 우리나라 사람은 학습하지 않아도 부모로부터 받는 기억의 유전인자 속에 사라진 기억으로 내장內藏된 기억이라 언제나 접촉이 가능한 이미지이다. 다만 잊고 있는 기억이라 기억을 촉발할 수 있는 계기가 와야만 기억이 살아날 수 있게 되어 있다. 단군왕검은 사라진 기억이므로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기억을 되살려 주기만 한다면 활성화 시킬 수 있다.
 
나는 보름달 무당에게 전화를 걸어 단군왕검에 대한 기억이 나의 사라진 기억 속에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안중근 의사가 나의 사라진 기억 속에 내장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선생님의 집단무의식에 안중근 의사가 계신데, 제가 굿을 해서 믿게 해 드리겠습니다. 이미 접신의 경험이 있으니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제게 제물 값을 조금만 주시면 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는 비용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묻지 않고 불쑥 대답했다. 보름달 무당은 굿하는 날짜를 잡았고, 나는 그날 노산 선생과 함께 굿에 가기로 하였다. 그날 나는 10시 경에 노산 선생 댁에 도착하였다.
 
“가시죠.”
“오늘 굿을 한다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양주로 가는 전철에 몸을 실었다.

“자네가 굿을 한다니 별일일세.”

노산 선생은 내가 굿을 한다니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외사촌형의 당숙모를 만나보고 싶어서입니다. 그분이 마포 새우젓도가 동네에 당집을 가지고 잘 불리던 무당이었다고 합니다. 그분이 접신이 되면 무엇인가 내가 모르고 있는 저에 관한 많은 비밀이 풀릴 것 같아서요.”
“무당은 영을 부릴 줄 알아야 진짜 무당이야. 보름달 무당을 내가 좋아하는 이유가 귀신을 부릴 줄 알기 때문이야.”
“귀신을 어떻게 부립니까?”
“말로 부리지.”
 
과연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름달 무당에게서 배운 지식이었다.
 
“무당은 고풀이와 살풀이를 할 수 있어야 해. 그래야 무당 대접을 받지. 사라진 나쁜 기억을 되살려 내어 풀어내는 것이 고풀이이고 살풀이야.”
“사라진 기억이라고요?”
“다시 말하면 사라진 살과 고야. 살은 곧 내 기억 속에서 다가올 죽음이나 질병을 말하는 것이고, 고는 지금 내 기억 속에서 나를 괴롭히는 액운厄運을 말하는 것이야.”
“황당하군요.”(계속)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