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서울 종로 보신각. 단기 4348년 개천절을 축하하는 타종식이 열렸습니다. 육중한 종소리는 마치 천지를 진동하듯이 울려 퍼졌습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국학원 회원과 시민 1천여 명이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습니다. KBS와 MBC 등 주요 방송에도 보도됐습니다. 

하지만 한민족의 건국을 기념하는 이 날에 온 국민이 축하했을까요? 박근혜 대통령은 올해도 개천절 경축식에 불참했습니다. 대부분의 시도지사도 경축식에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니 국민 또한 휴일로 지냈을 뿐입니다. 이는 개천절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개천절은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을 기린 것에 유래하지만 사실은 대종교가 만들었고 임시정부에서 제도화한 것입니다. 바로 일본의 정신적 침탈에 맞서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지키려고 했던 것이죠. 이것은 2000년 만에 잃어버린 국가를 되찾기 위해 이스라엘이 역사 교육에 혼신을 다했던 것에서도 잘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한글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창제했고 단군사당도 세웠던 조선의 성군(聖君)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양반들은 제후국인 조선보다 천자국인 명나라를 떠받들었습니다. 그러니 한문을 고집했습니다. 오늘날 영어를 사용하듯이 말입니다. 한글이 되살아난 것은 조선왕조가 몰락하고 일본이 지배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주시경과 제자들이 독립운동의 목적으로 한글지킴이에 나섰습니다. 바로 조선어학회입니다. 박용규 한글학회 연구위원은 <조선어학회 항일투쟁사(한글학회2012)>에서 “조선어학회는 우리의 말과 글이 없어지면 우리 민족은 영원히 없어진다고 보았다”라며 “일본말이 아닌 우리말을 일본글이 아닌 우리글을, 일본 얼이 아닌 우리 얼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조선어학회 대표를 역임한 이극로(1893-1978)는 1922년부터 1927년까지 베를린대학에서 조선어강좌를 개설해 유럽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과거 독일과 영국이 각각 폴란드와 아일랜드를 식민지로 만들어 지배했을 때 폴란드어와 켈트어를 말살했듯이 이들 나라를 모델로 하여 식민정책을 펴고 있던 일본 제국주의자들도 조선을 지배하면서 민족말살 차원에서 조선어를 말살할 것을 예견하고 한글운동을 전개했다고 합니다. 
 
그러한 점에서 모국어를 잃어버린 후손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아일랜드 학자 실라 컨웨이(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학부 교수)는 EBS 논술세대를 위한 철학교실(2006년 5월 9일)에 출연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불행하게도 식민지배자의 언어로 혀 놀림을 하고 있어요. 일본 통치를 못 벗어났다면 여러분도 역시 식민지배자의 언어를 말하고 있겠죠. 저를 식민지의 인간으로 만든 사람들의 언어를 가르치며 먹고 산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아이러니입니까?”
 
개천절과 한글날은 단순한 국경일이 아닙니다. 선조들의 목숨을 건 투쟁의 산물입니다. 광복 70년을 맞은 올해 한민족의 후손로서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