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미국인이 쓴 ‘마고성의 비밀’을 읽고 있다. 한국의 ‘창세 신화’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엔젤린, 노아, 토비, 선아, 루터스, 카타테 등이 운명적으로 만나는 과정을 흥미롭게 풀었다. 이들은 지구를 구한다. 독수리 5형제의 리뉴얼 버전은 아니다. 그보다 한국의 ‘창세신화’를 왜 외국인이 소설로 펴냈는가에 주목한다.

저자 레베카 팅클은 “충격이었던 것은 많은 한국인이 이 이야기를 모른다는 사실”이라며 “우리가 진정으로 누구인가를 보여주는 이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 싶은 열망으로 내 가슴은 뜨거웠다”라고 작가의 말에서 고백했다.

본론을 읽기도 전에 부끄러웠다. 자국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열광하는 한국인의 모습이 비쳤기 때문이다.

마고신화가 담긴 박제상의 ‘부도지’는 1986년에 한글로 번역됐다. 이후 제대로 된 연구는 많지 않았다. 일부 국사학자들은 '한단고기’와 함께 이 책을 위서라고 낙인 했다. 신화적으로도 연구가 많았다면 만화, 영화, 뮤지컬 등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로 알려지지 않았을까? 한국 고유의 콘텐츠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무관심이 아쉽다. 이는 오늘날 국경일 인식으로도 이어진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글날이 국경일이자 공휴일임을 정확히 아는 비율은 설문조사 응답자의 절반(52.1%)에 그쳤다고 밝혔다. 한글날이 훈민정음 반포일을 근거로 제정한 것을 모르는 경우는 42.2%나 됐다. 개천절과 광복절은 어떠한가? 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는 서울 시내 초·중등학생 92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초등학생은 41%, 중학생은 36%가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연대 소속 강사들은 ‘국경일 이야기’를 주제로 무료강연회를 열고 있다. 청소년 인식을 바꾸기 위해 팔 걷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아이들에게 국경일을 물어보면 대부분 노는 날이요. 빨간 날이라고 대답한다. 더 놀라운 것은 국조가 누구인가 물으면 ‘아브라함, 주몽’이라고 대답하는 아이도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역사교육이 잘 되었다면 우리 같은 사람은 필요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개천절은 외국 성인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보다 못한 처지다. 대통령은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은 지 20년이 넘었다. 이러니 국민은 태극기를 게양하지 않고 여행길에 오르는지도 모른다. 방송국은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 소식이 먼저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1천여 명의 개천절 거리퍼레이드’ 뉴스는 편집됐는지 찾기도 어렵다.

프랑스 정치학자 도미니크 모이시는 ‘감정의 지정학’에서 “20세기가 이데올로기의 시대라면 21세기는 정체성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나의 뿌리를 알고 제대로 전하는 것은 시민단체나 작가만의 일은 아니다. 정부와 언론,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지원할 때다. 그래야 후손들에게 떳떳한 선조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글. 윤한주 기자 kaebin@lyco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