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편("클릭" 국학원 전시관에서 한민족이 인류의 장손이라는 증거를 만나다)에 이어...


우리 선조들은 중앙아시아의 ‘천산(天山)’에서 발원하여 기나긴 세월 동안 ‘환국(桓國)’을 통치한다. 그리고 홍익의 터전을 찾아 다시 동진한다. 이윽고 백두산 근처에 이르러 ‘신시 배달국(신시를 도읍으로 한 밝은 나라)’을 건설한 여러 환웅천왕은 문자를 사용하여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다.

‘배달국 시대’가 1565년간 이어져 내려오는 동안 환웅천황은 그 지역의 원주민인 곰을 숭앙하는 곰 종족과는 융화하고 통혼(通婚)을 하였다. 또한 범을 숭앙하는 범 종족은 무력으로 정복하기도 했다. <단군사화>에 등장하는 ‘곰과 호랑이’는 동물이 아닌 ‘곰 부족’과 ‘호랑이 부족’을 지칭한 것이다. 캄캄한 동굴에서 마늘과 쑥을 먹고 지냈다는 것은 아무것에도 메이지 않고 “내가 누구인가”를 깨닫기 위하여 지감(止感), 조식(調息), 금촉(禁觸) 수련을 했다는 은유적인 기록이다.

배달국의 마지막 환웅천왕인 18대 거불단(居弗檀) 환웅천황이 웅 씨(氏)의 왕녀와 결혼하여 기원전 2370년(신묘년) 5월 2일 인시(寅時)에 아들을 출산하니, 그가 바로 단군조선을 개국한 초대 단군왕검이다. 단군왕검은 14세에 웅씨 국의 비왕(임금을 보좌하는 으뜸가는 벼슬)을 역임했고, 38세 되던 해인 기원전 2333년(무진년) 10월 3일에 조선(朝鮮)을 건국했다.

올해로부터 4848년 전인 10월 3일에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여 조선을 개국하였다. 이날을 우리는 하늘이 열린 개천절(開天節)이라고 한다. ‘아사달’은 ‘아침의 땅’이고, 조선은 ‘밝은 아침의 나라’라는 뜻이다. 우리 선조들은 밝음, 환함, 아침, 해, 하늘을 좋아하였다.

이때 중국에서는 요임금이 즉위하였는데, 초대 단군왕검과 동시대를 이룬다. 그 후 모두 47분의 단군이 2,096년 동안 나라를 통치하였다. 고고학에서 한반도와 만주지역의 청동기 문화의 시작을 기원전 2400년경으로 보고 있는데, 이 시기가 바로 고조선 왕국의 건국시점이다.

▲ 경당에서 수련하는 국자랑들의 모습 [제공=국학원]

어떻게 이리 오랫동안 통치 할 수 있었을까? 옛 조선에서는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하는 국자랑(國子郞), 또는 천지화랑 같은 엘리트 집단을 육성하는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국자랑(천지화랑)들은 경당에서 궁술, 무예, 천문학, 신선도 수련을 교육 받았다. 그들의 정신과 전통은 고구려의 조의선인, 백제의 무절, 신라의 화랑도로 이어진다. 한편 나라를 진조선, 번한조선, 마한조선으로 3등분하여 통치하면서 침략으로부터 서로를 도와주었기에 오랜 기간 존속할 수가 있었다.

단군이란 단어를 중앙아시아 몽골, 만주, 터키, 에벤키족, 카자흐스탄에서는 탱그리(TANGRI)라고 하는데 ‘하늘’이라는 뜻이다. 우리말에도 ‘탱글탱글하다’ 또는 ‘둥글둥글하다‘는 형용사가 있어 ‘하늘처럼 원만하고 동그랗다’는 뜻으로 쓰여 지고 있다. ‘단군’은 하늘을 대신하여 백성을 다스리고 천제(天祭)를 주관하는 최고의 직책이고 ‘왕검’은 개인의 이름이다. 비교가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현대로 말하자면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 박정희’처럼 최고통치자를 뜻한다. 그래서 47분 모두의 이름과 생몰(生沒)연대, 치적들이 일일이 명기 되어 있는 것이다. 그 일부만 알아보자.

초대 단군왕검 재위 시, 중국에서 큰 홍수가 일어났다. 이에 단군왕검께서는 네 아들 중 맏아들인 부루 태자를 중국의 우(禹)왕에게 보내어 선진문물인 ‘오행치수법’을 전수시킴으로써 (길고 고통스러웠던) 중국의 9년 홍수를 다스리게 했다. 이처럼 치수에 능한 2대 단군부루는 동북아시아의 도량형을 통일하고, 부싯돌과 부루단지의 전통을 남겼다. 3대 단군가륵은 한글의 원형인 ‘가림토 문자’를 발명한다. 이 가림토 문자를 바탕으로 재창조된 것이 세종대왕의 훈민정음(한글)이다.

한 나라의 문자는 그 나라의 정신이 깃들게 마련이다. 우리의 한글은 이미 그때부터 천지인 정신의 원리에 따라 만들어졌다. 모음의 ‘·’는 하늘, ‘一’는 땅을, ‘ㅣ’는 사람을 뜻하고, 자음의 ㅇ은 하늘을, ㅁ은 땅을, △은 사람을 뜻한다. 보통 못난 사람은 모가 난 사람을 뜻한다. 모난(못난, 모진)사람이 법과 수행을 통해 네모나게 되고, 꾸준한 수행을 통해 결국 둥글고 원만한 사람이 된다는 의미이다.

▲ '카자흐스탄의 아스타나(아사달)' 항공사의 탱그리(단군)기내 잡지

가륵단군은 소도를 세워 ‘삼륜구서’를 가르쳤다. 6대 단군달문은 백성들을 위해 오훈오사를 내리고, 홍익민주주의의 전통인 화백회의를 제정했다. 10대 단군노을은 최초로 천문대를 설치하고 신원함 설치로 백성의 억울함이 없도록 했다. 11대 단군도해는 <단기고사>를 발행하고 국선(國仙) 소도를 설치하여 신선도를 중흥시켰다. 또한 만국박람회를 개최했고 천부경을 설법하였다. 12대 단군아한은 유의자의 예언으로 가림토 문자가 없어질 것을 대비하여 금석문을 남겼다.

이토록 오래기간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이어 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철학’을 대를 이어 전승했기 때문이다. ‘홍익인간’이란 인간의 뇌로서 확립할 수 있는 스스로에 대한 가장 큰 자존감이자 가치관이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동안 우리를 쉽게 통치하기 위하여 일본은 47분께서 다스렸던 찬란한 단군조선의 홍익인간 역사를 ‘단 한 사람이 통치했다’고 왜곡하여 모호한 신화로 만들어 버리고 자기들의 역사보다 짧게 왜곡시켜 버렸다. 더 기막힌 사실은 일본이 그렇게 왜곡한 역사를 우리 국민은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뿐 아니라 바르게 교육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국학원 로비의 단군조선 방에는 47분의 단군의 이름이 일일이 명기되어 있는데 학생은 물론 선생님, 교장선생님들도 그 이름과 역사를 보고 몰랐던 사실이라면서 깜짝 놀란다. 심지어 한 지역의 교육 책임자인 교육감들조차도 단군조선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고, 정치인들 역시 자세히 모른다.

일부 특정 종교에서는 단군은 신(神)이라고 멀리한다. 신이 어떻게 생년월일과 구체적인 치적(治績)이 있고, 돌아가신 날이 있겠는가. 이 엄정한 역사적인 기준이 없어졌으니 최근에는 유명배우가 TV에 나와 ‘신시 배달국’의 배달민족(밝은 민족)을 ‘퀵서비스하는 배달’로 스스로 폄하, 왜곡하여 광고한다. 아주 잘못된 일이다. 한없이 부끄러운 일이다.

국학원에 피어난 수많은 꽃들처럼, 우리 민족의 미래가 활짝 피어나기를 기원하고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을 확신한다. ‘홍익인간’이란 인간으로서 선택하고 받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사명이기 때문이다.


(사)국학원 상임고문, 한민족역사문화공원 공원장 원암 장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