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클릭" 한민족은 가위바위보만 알아도 깨닫는다)에 이어...


지금 국학원과 한민족 역사문화공원에는 꽃들이 아우성치듯 피어나 서로 나를 보아달라고 자태를 뽐내고 있다.

어느새 산수유가 지더니 목련꽃 역시 시들었다. 샛노란 개나리꽃 속으로 푸른 잎이 돋더니 아프도록 화려한 꽃 잔디가 걸음을 잡는다. 골짜기엔 곧 진달래가 수줍게 피어나고 축대 가득히 영산홍과 희고 붉은 참꽃이 무너질 듯 피어날 것이다. 햇볕 가득한 양지에는 모란꽃이 너울거리고 뒤를 이어 작약이 둥 두렷한 자태로 올망졸망 피어날 것이다.

단군산 깊은 속살에는 이팝나무, 조팝나무가 흰 여신처럼 피어오르고, 소나무 전나무 거기에 히말리아 시어타가 푸르고 긴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다. 밤마다 소쩍새가 피를 토하듯이 울고, 아침마다 산 꿩의 울음이 계곡을 울리며, 한낮이면 후투티는 날아들 것이다. 계절은 한 치의 빈틈없이 없이 오고 가고, 그에 따라 온갖 생명도 오고 간다.

그 긴 생명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우리 겨레 ‘한민족’이란 이름은 누가 언제부터 이름 지었는가? 그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길을 여행하여 지금의 한반도에 정착하였는가?

▲ 천손민족의 1차 대이동 '오미의 변'. 마고성은 티벳고원의 '수미산'으로 추정된다. 계단식 피라미드 형태로 있을 것 [제공=국학원]

그것을 알면 우리의 정체를 제대로 알게 된다. 우리 한민족의 역사가 반만년 또는 온 만년이라고 하면서도 대부분이 뚜렷한 근거를 대지 못한다. 약 9천 년 전, 중앙아시아의 천산(天山, 한탱그리 마운틴) 기슭에서 한 무리의 밝은 부족들이 겨레를 이루고 살았었다. ‘탱그리’는 몽골, 터키, 여진족, 예벤키 족 등에게는 하늘을 뜻한다. 우리말도 하늘처럼 둥글고도 참되다는 뜻으로 ‘탱글탱글’하다는 표현이 있다.

그들을 천손, 하늘의 자손이라 불렀으며, 그들은 지도자인 ‘중심이 되는 환한 큰 어른’ 곧 환인(桓因, 7세)을 중심으로 오랫동안 하늘을 믿고 의지하며 하늘 마음(천심, 天心)으로 살아왔다. 글자로 기록되기 이전의 역사로 이미 이때부터 그 무리의 어른들로부터 중심 철학으로 천부경이 구전됐다. 이제 다음 방으로 걸음을 옮겨본다.

그렇게 ‘하늘 산기슭’에서 3301년을 존속하다가, 인구가 늘어나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환인의 말씀을 쫓았다. “가히 홍익할 만한 땅”을 찾아 ‘해 뜨는 곳, 동쪽’으로 떠나 드디어 신령스러운 백두산기슭에 둥지를 틀고 ‘겨레를 이룬다. 서기전 3897년의 일이다. 그들의 중심이 ‘환웅(桓雄)’이니 신시(神市)를 도읍으로 밝은 나라 ‘배달국(倍達國)’을 세워 18세 1565년을 이어간다. 이때부터 한민족의 역사에 ‘배달겨레’가 등장한다.

▲ 신시개천도(神市開天圖). 개천의 진정한 의미는 사람 안에 천지가 녹아들어 있음을 아는 진정한 인간존중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것으로 천부경의 핵심 사상인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을 뜻한다. [제공=국학원]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에서 지금도 쓰여 지고 있는 ‘케레이’란 말은 우리의 ‘겨레’가 되고 그 말은 다시 ‘고구려’, ‘가야’, ‘코리아’등으로 변해간다. (김정민 박사) 이는 ‘한민족 겨레’의 공간적, 시간적인 이동을 증명하는 틀림없는 증거이다.

환웅천왕들은 한민족의 영원토록 분명한 특징인 하늘을 중심 삼고, 하늘처럼 완성되기를 염원하면서, 온갖 역사와 찬란한 하늘 문화를 물려준다. 동검, 거울, 방울은 천손민족에게 내려오는 법의 상징으로서 지위리 환인이 거발한 환웅에게 하사한 물건이다. 곧 천부삼인(天符三印)을 받아 세세토록 물려주니 이는 곧 한민족이 인류의 장손이라는 증거이다.

검은 남을 치라고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의 욕망을 자르라는 의미이다. 거울은 내 안의 본성인 근원을 볼 수 있게 하고자 함이다. 방울은 내 안의 신성, 본성을 흔들어 깨우고자 하는 한민족의 치열한 선도문화(仙道文化)의 상징이다.

▲ 천부삼인(天符三印). 이는 곧 한민족이 인류의 장손이라는 증거이다. [제공=국학원]

중국인들도 군신으로 추앙하는 치우천왕(蚩尤天王, BC 2707년)은 제14세 환웅으로 ‘자오지 천왕(慈烏支天王)’이라고도 불리운다. 치우천왕은 2002년, 2006년 월드컵 경기 에서 ‘붉은 악마‘로 부활한다. 붉은 악마 응원단의 깃발에 그려진 얼굴 상은 ’치우귀면화(도깨비기와)‘를 디자인한 것이다. 치우천황은 도깨비나 악마가 아니라 투구를 쓰고 철갑을 입은 무장의 모습이다.

환웅천왕들은 중국이 가장 무서워하는 강력한 환웅시대의 통치자들이었다. 한고조 유방도 전쟁을 치르러 갈 때는 치우사당에 승리를 빌었다. 우리나라의 이순신 장군과 무인들은 부임지로 떠날 때나 전쟁에 치르기 전에 ’둑제(치우천왕께 승리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다. 거북선 앞 뱃전에는 치우천왕의 조각이 새겨져 있다.

▲ 치우천왕(蚩尤天王, BC 2707년) [제공=국학원]

이와 같이 치우천왕은 한국과 중국에서 인정하는 상승의 신, 불패의 신이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하여 우리의 역사를 자기들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치우천황을 자신의 조상으로 모실 수밖에 없었다. 다음 방에서는 ‘단군’의 바른 모습을 느껴볼 것이다.
 

(사)국학원 상임고문, 한민족 역사문화공원 공원장 원암 장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