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동원 화순국조숭모회 명예회장이 국조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윤한주 기자)

역사는 사람이 만든다. 단군조선 이래 5천 년 역사를 잇는 것은 후손에게 달렸다. 전라남도 화순군 국조전은 강동원 씨(화순국조숭모회 명예회장)의 정성으로 일궈낸 작품이라고 보면 된다.

그는 화순 출신으로 광주에서 남도한약방을 경영한다. 그동안 화순에 관한 역사와 문화를 다룬 책만 10권이 넘게 펴냈다. 전남문화상도 받은 대표적인 향토사학자이자 철학박사다.

“고향의 역사를 찾다 보니까 그렇다면 우리 민족의 뿌리를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독지가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사비를 털dj 지역의 유지와 함께 1989년 10월 3일 화순읍 이십곡리에 단군영정을 봉안하고 국조전을 건립하였다.  먼저 ‘국조전’이라는 이름이 궁금했다. 대부분 단군전, 단성전, 단묘 등 단군과 관련한 이름을 쓴 것과 달랐기 때문이다.

▲ 전라남도 화순군 국조전 입구인 개천문(사진=윤한주 기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국조로서 받들어서 모시면 좋지 않습니까? 단군이라고 하면 젊은 사람들도 생소하게 생각해요. 나라 국(國), 할아버지 조(祖),  우리 할아버지란 말입니다. 보편적이고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그랬습니다.”

당시 최창규 성균관장이 건립비문을 썼다. 문병란 시인이 1대 회장을 맡았고 홍명재 회장이 2대를 맡아 매년 개천절 행사를 개최한다. 강 회장은 국조전 건립 이후로도 단군 연구를 계속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단군 할아버지 사당을 짓고 나니깐 손님들이 찾아올 거 아닙니까? 그런데 아는 것이 없으니까 (사람들이) 질문을 하면 대답할 수가 있어야 말이죠. 육십이 넘어서 대학원을 다녔어요.”

당시 광주 전남에는 전남대, 전남교대, 순천대, 목포대 등이 있었다. 하지만 국립대학교에서 단군사상을 전공하려는 데 지도교수가 없었던 것. 전라북도와 대전으로 학교를 알아봐야 했다. 석사논문은 원광대학교에서 ‘개천경에 나타난 효사상연구’로 학위를 받았다. 이에 대해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한다.

▲ 전라남도 화순군 국조전 전경(사진=윤한주 기자)

“심사를 받는데, 개천경이라는 말이 없다는 겁니다! 아니, 초대 문교부 장관을 지낸 안호상 박사가 쓴 책이 있는데, 왜 안 되느냐고. 당시 책을 보여주고 그랬습니다.”

박사과정은 임균택 대전대학교 교수의 지도를 받고 ‘한국사상사에 나타난 삼원적 사유체계에 관한 연구’이라는 주제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단군영정에 애착이 강했다. 전국적으로 통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국가가 지정한 단군영정은 2가지다. 대종교 단군과 현정회 단군이 그것이다. 1976년 문화공보부는 대종교의 단군 천진을 ‘국조 단군 표준성상’으로 심사해 승인했다. 그런데 이듬해는 현정회의 단군영정을 정부 표준 영정으로 승인한 것. 이후 단군영정을 한 가지로 통일해야 한다는 것은 줄곧 제기된 문제다.

강 회장은 “부여박물관에 있는 단군영정으로 통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영정은 대종교 단군 천진과 같다.(관련기사 국내 최고로 알려진 단군영정의 진실은? 바로가기 클릭)

 화순국조숭모회 단군영정은 자수로 만들어졌다는 점이 특징이다. 지난 2007년 개천절에는 북한미술협회 조선전람총국의 지도감독이 8개월에 걸쳐 완성된 대형 자수영정을 공개했다. 가로 1m 2cm, 세로 2m 40cm이다. 그런데 그 감독이 누구인지 강 회장은 모른다고 했다.

▲ 강동원 화순국조숭모회 명예회장이 자수로 만든 단군영정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윤한주 기자)

“북한 작품인 것은 맞습니다. 큰돈을 주었습니다. 5〜6개월 정도 기다렸어요. 미술품 파는 사람에게 받았습니다.”

이날 찾아갔을 때는 새 단군영정을 선보였다. 역시 자수로 만든 것이다. 고려 불화를 주로 그리는 홍승표 화가의 작품이라고 했다.

■ 화순 국조전
: 평소에 문을 열지 않는다. 전화하고 방문하면 된다.


1. 주소 :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이십곡리 612번지
2. 전화 : 010-5665-3360 / 062-222-78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