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명의 신선神仙이 바둑을 둔다!

전라북도 순창은 고추장으로 유명하다. 고려 말 이성계(李成桂, 1335~1408)가 무학대사가 있는 회문산(현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에 가던 중에 배가 고팠다. 어느 농가에서 고추장에 밥을 비벼 먹었는데 그 맛을 잊을 수 없었다. 이후 한양으로 돌아가서 고추장을 왕실에 바치라고 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물론 우리나라가 고추장을 담그기 시작한 것은 1700년대 후반이다. 고추장 설화에서 주목할 것은 왜 이성계가 순창을 찾았는가에 있다. 바로 무학대사(無學大師, 1327~1405)가 이성계를 임금의 자리에 오르게 하려고 기도한 만일사(萬日寺)가 있었기 때문이다.

▲ 전라북도 순창군 회문산(사진=윤한주 기자)

또 전라도에서 풍수지리가로 유명한 홍문대사라고 불렸던 홍성문(시대미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회문산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이어 회문산가(回文山歌) 24혈(穴)의 명당 책자를 만들었다. 그는 ‘회문산에 24명당과 오선위기(五仙圍碁)가 있는데, 그곳에 묘소를 쓰면 당대부터 운이 틔어 59대까지 갈 것’이라 주장했다.

오선위기혈이란 ‘다섯 신선이 둘러앉아 바둑을 두고 있는 형국’을 말한다. 풍수가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회자됐다고 한다. 한국의 5대 명당으로 불린 이유다.

근대 이후는 종교인들의 성지라고 할 수 있다. 강증산(姜一淳, 1871∼1909)은 “모악산을 어머니 산이고 회문산은 아버지산”이라고 했다. 지금도 증산교인들은 이곳을 성지처럼 찾는다. 또한 순창출신 강대성(姜大成, 1890∼1954)은 회문산 금강암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민족종교 갱정유도(更定儒道)를 창시했다. 회문산이 새로운 나라를 준비하고 깨달음을 추구했던 명산임을 알 수 있다.

천제단을 세운 이유는?

회문산(고도 837m)은 임실군, 순창군, 정읍시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산으로 회문봉, 장군봉, 깃대봉의 세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옥정호에서 흘러내린 섬진강이 회문산을 두 팔로 감싸듯 휘감아 사방으로 물길이 흐르고 있어 산 정상에서 바라봤을 때 전망이 장관을 이룬다. 순창 단성전으로 유명한 단군사상선양회가 이곳에 천제단을 건립하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 김법종 단군사상선양회 총무(사진=윤한주 기자)

양상화 단군사상선양회장은 “호남의 명산 모악산은 호남의 기두봉이고 아버지 산인 회문산과 여분산의 중간에 솟아있는 산을 장군봉이라 부르는 천제산이요 아버지 산”이라며 “회문산에서 조선조 이성계가 천제를 올렸던 장소가 지금까지 구전으로 내려오고 있다”라고 말했다.

선양회는 2010년 10월 3일 천제봉 정상에 천부경비를 세우고 천제를 올렸다. 지난달 10일 순창 단성전에서 김법종 단군사상선양회 총무와 함께 회문산을 찾았다.

회문산 중턱에 그의 집이 있다. 이날은 천제단에 오르지 못하고 이야기만 들었다. 그는 국조를 홀대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영토를 확고히 만들었습니다. 일본은 신사를 통해 종교와 관계없이 하나가 됐어요. 우리나라는 하나가 되는 문화가 없어요. 단군 이야기라고 하면 다 미신이고 헌신짝처럼 자기 조상을 버렸습니다.”

▲ 회문산 장군봉 천제단이다. 단군사상선양회에서 임시로 돌을 쌓고 천부경비를 세웠다.(사진=김법종 총무)

그는 회문산을 주목했다.

“우리나라 문화는 단군 때부터 내려왔지만 지금은 말살돼 우리 것이 없잖습니까? 민족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문화를 무엇으로 할 것이냐? 그것이 회문입니다. (산의 이름이) 회문이라고 하잖아요. 돌아올 회(回), 글월 문(文)자다. 문화를 돌이키는 자리를 말합니다. 종교와 관계없이 우리 민족이라면 읍할 수 있는 것은 만들어야 하지 않느냐? 그런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순창 단성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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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편 단성전은 개인의 것이 아니다!(바로가기 클릭)

글. 윤한주 기자 kaebin@lyco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