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4일 전라남도 진도 단군전을 찾았다. 이날 아침 7시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4시간 만에 목포에 도착했다. 마중 나온 조은세 전남국학원 사무처장의 차를 탔다. 조 처장도 오랜만에 방문하는 것이라고 했다. 성전 앞에 통일기원국조단군상이 있어 ‘세신’ 활동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조 처장과는 2010년 12월 이후 4년여 만에 만났다. 당시 뇌교육을 도입한 목포 산정초등학교가 교육부에서 주관한 2010년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전국 우수학교로 선정된 비결을 취재했다.(클릭)

목포서 진도까지 차로 1시간 정도의 거리였다. 그런데 날씨가 걱정이었다. 구름 낀 하늘이 좀처럼 해를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도문화원에 도착하니 비가 한두 방울 떨어져서 우산을 펼쳤다. 이후로도 드문드문 왔지만, 취재를 마칠 때까지 장대비는 쏟아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이럴 때 ‘단군 할아버지가 보우하사’라며 감사하게 된다.

▲ 철마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진도군 단군전이다. 통일기원국조단군상이 보인다(사진=윤한주 기자)

성전에 가기 전에 진도문화원을 들렀다. 박정석 원장은 단군전이 있는 철마산이 풍수 지리적으로 명산이라고 했다.

“말을 타는 형국인데, 산세를 보면 중심의 자리에 향교가 있고 그 왼쪽에 단군전이 있습니다.”

짧은 대화를 마치고 성전으로 10분 정도 이동했다. 철마산(304m)을 병풍으로 삼은 진도향교와 단군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산은 옛부터 진도 고을의 주산(主山)으로 정해 제사하던 진산(鎭山)이다. 진도읍성과 철마산성이 세워져 있다. 고을 수령들이 목장(牧場)의 번성을 기원하며 철마신상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마조단에서 산 이름이 유래됐다. 주민들은 북산이나 망적산(望敵山)이라고 불렀다. 적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진도 해안을 감시하기 위해 축성된 성이 있다.

박재문 단군전숭모회장의 안내를 받았다. 입구서 올라가는 데 계단이 제법 많았다. 황금색으로 도색한 통일기원국조단군상이 성전 앞을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홍익문화운동연합이 기증한 것이다.

▲ 전라남도 진도군 단군전 정문의 역할을 하는 개천문(사진=윤한주 기자)

내문은 없고 외문의 역할을 하는 개천문을 지나니 성전이었다. 문을 여니, 단군영정을 모신 제상이 있었다. 영정을 자세히 보니 낙관(落款)이 있었다. 영어로 ‘Ha shill’ 이라고 쓰여 있다. 박 회장은 잘 모르겠다고 했다. 1970년대 단군성전을 건립하면서 영정을 그린 화가로 추정할 뿐이다.

흥미로운 것은 단군의 부인을 신주(=죽은 사람의 위패)로 함께 모시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취재한 단군전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제물도 두 분씩 차리고 술잔도 두 분씩 하고 있어요. 개천절에도 잔을 2잔 올리고 있어요. 위패는 5년 정도 됐어요.”

신주는 ‘단군왕후비서갑숭모’라고 씌어 있다. 이에 관한 문헌으로는 고려말의 학자 이승휴가 쓴『제왕운기(帝王韻紀)』가 있다. 이승휴는 「단군본기(檀君本紀)」를 인용하며 “(단군은) 비서갑 하백의 딸과 혼인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부루”라고 썼다.

박 회장은 최근에 군의 지원으로 제복과 신발, 천막 등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제례비 100만 원으로 개천절을 지냈다고 한다. 이곳에 외지인은 얼마나 방문할까?

▲ 전라남도 진도군 단군전이다. 1978년 건립됐다.(사진=윤한주 기자)

“매달 오죠. 향교도 보고 성전도 보고 그래요. 일본이나 중국 사람들도 바닷길(진도군 고군면 회동리와 의신면 모도 사이에서 조수 간만의 차이로 길이 2.8㎞, 폭 40∼60m로 갈라져 ‘현대판 모세의 기적’으로 불리는 자연현상) 열리면 관광하러 왔다가 들립니다.”

단군전 현판은 진도 출신 하남호(河南鎬, 1926〜2007) 서예가가 썼다. 그는 손재형(孫在馨, 1903〜1981) 선생에게 서예를 배웠다. 이후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서예부문에 입선하고 문화예술 발전의 공로로 보관문화훈장과 세계평화예술상을 받았다. 당시 진도 유지뿐만이 아니라 문화계 인사들 또한 단군전 건립에 함께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단군전은 언제부터 세워진 것일까? 『진도군지』와 『진도향교지』에 따르면 9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진도 유림들은 1922년 단군전 건립을 결의한다. 3.1 독립운동을 기점으로 민족자존의 단합된 항거의 표상을 단군에서 찾고자 했던 것. 이듬해 봉안식을 거행했다. 그러나 일본의 반대로 한 씨 성의 비조인 기성만을 봉안했다.

▲ 전라남도 진도군 단군전 내 단군영정이다. 단군과 부인 비서갑 왕후를 위패로 모신 점이 특징이다(사진=윤한주 기자)

당시 한명이(韓明履, 1886〜1961)가 큰 역할을 했다. 그는 1920년 진도운수주식회사 이사를 거쳐 진도군참사를 지내고 전라남도 평의원 등을 역임했다. 그는 단군전 건립을 위해 1924년 동문 안 옛 향교 터인 자신의 소유 땅을 희사했다.

박 회장은 “지금은 폐가가 됐고 그 자리는 진도복지관이 들어가 있다. 후손들도 뿔뿔이 헤어져서 여기 없다”라고 말했다.

해방이 되자 단군만을 모시는 성전 건립에 나선다. 1967년 9월 15일 기성회가 결성, 진도향교 서편에 터를 닦아 1978년 6월 3일 단군전을 준공한다. 그해 7월 23일 단군신위와 영정을 봉안했다.

진도군지는 “민족정신을 수호하려는 진도군민의 염원이 표출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현재 단군전은 관리인이 따로 있지 않다. 박 회장은 진도향교와 같은 사무실을 쓰면서 성전을 알리고 있다.

■ 진도 단군전(바로가기 클릭)

: 단군전은 진도향교에서 찾으면 된다. 전라남도 진도군 진도읍 진도향교길 68-5

문의) 061-544-2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