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리 전투를 대승으로 이끌고 초대 국무총리를 역임한 철기 이범석 장군 42주기 추모제가 9일 열렸다.

이날 오전 11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추모제는 철기이범석장군기념사업회(회장 직무대리 조준래)가 주관했다.

추모제는 추모식사, 사업회 감사의 약력보고, 추모사, 헌화, 분향, 조총 발사, 묵념 순으로 진행됐다.

안중현 서울지방보훈청장, 육ㆍ해ㆍ공군 장성, 기념사업회원, 광복회원, 유족 등 250여 명이 참석했다.

이범석 장군은 1900년 10월 서울 용동에서 태어났다. 1915년 여운형의 권유로 중국으로 망명했다. 이후 신규식의 주선으로 운남강무당(雲南講武堂)에 입학해 기병과(騎兵科)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3․1운동 소식이 알려지자 독립운동에 동참하기 위해 장교직을 사직한다. 이어 신흥무관학교 고등군사반 교관으로 취임하여 독립군 장교 양성에 진력했다.

1920년 4월에는 왕청현에 있는 북로군정서로 갔다. 600명 생도들을 독립군 장교로 교육해 청산리 대첩의 기반을 마련했다.

1920년 10월 21일 보병 1개 대대를 인솔해 청산리 백운평에서 유리한 지리 지형을 이용했다. 일본 토벌군 주력부대를 강타해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내게 한 대전과를 올렸다. 이후 김좌진과 함께 북로군정서군을 지휘해 일본군과 10여 차례 격전을 치러 승리를 거뒀다.

1940년 9월 17일에는 한국광복군 참모장으로 임명됐다. 이후 광복군 총사령부의 핵심부대라 할 수 있는 제2지대장으로서 미국 전략정보국(OSS)과 합작해 국내 진공작전을 수행할 계획을 세우는 등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1946년 6월 3일 500여명의 광복군 동지들과 함께 인천항을 통해 조국에 돌아왔다.

1946년에는 민족청년단을 결성해 민족국가 건설에 힘썼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부장관으로서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고, 국군 창설과 육성에 크게 공헌했다.

정부는 장군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수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