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1일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는 ‘철기 이범석 장군 제46주기 추모제’가 봉행됐다.

철기 이범석 장군(1900.10.20.~1972.5.11.)은 누구인가. 그는 청산리 전투를 대승으로 이끌고 광복 후에는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독립투사이다.

이범석 장군을 알려면 그가 남긴 어록을 살펴보는 것이 빠를 것이다.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에는 장군의 어록비 2기가 있다. 그 비석 중 하나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새겨져 있다.

천안 독립기념관에는 이범석 장군이  일본이 항복하기 직전 서해안 상륙작전을 계획하며 남긴 어록을 새긴 비석이 있다. [사진=김경아 기자]
천안 독립기념관에는 이범석 장군이 일본이 항복하기 직전 서해안 상륙작전을 계획하며 남긴 어록을 새긴 비석이 있다. [사진=김경아 기자]

 

“배는 산산조각이 나고 몸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나의 혼과 정열은 한 방울이 피 한 점의 살이라도 내 사랑하는 조국 땅에 뿌려주고 던져 줄 것을 나는 확신한다.”- 일본이 항복하기 직전 서해안 상륙작전을 계획하며.

광복군이 미군과 합작하여 국내 진공작전을 펼칠 때 이범석 장군은 광복군 총사령부의 핵심 부대라 할 수 있는 제2지대장으로서 이 작전에 참가했다. 작전 계획을 세우며, 비문처럼 결의를 다졌던 것이다.

또 다른 비석에는 다음과 같은 어록을 새겼다. 

"苟存猶今 志在報國"(구존유금 지재보국)

내가 지금까지 구차하게 살고 있는 것은 나라에 보답하려는 뜻이 있어서이다라는 뜻이다. 군인으로 전장에서 죽지 않고 지금까지 구차하게 살아 있는 것은 다른 뜻이 아니다. 오직 나라에 보답하는 뜻에서다.  이범석 장군의 친필로 된 비문. 글씨에서 기개가 용솟음친다. 

그 아래는 “조국, 이 말처럼 온 인류, 각 민족에게 강력한 감동과 영향을 주는 말은 없다.”를 새겼다. 이범석 장군은 ‘조국’이라는 말에 강한 감동과 영향을 받았음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그리하여 조국을 위해 살고 조국을 위해 죽었던 것이다. 이런 이범석 장군을 기억하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다.

이범석 장군의 친필 '구존유금 지재보국( 存猶今 志在報國)'을 새긴 비석이 천안 독립기념관에 건립되어 있다. [사진=김경아 기자]
이범석 장군의 친필 '구존유금 지재보국( 存猶今 志在報國)'을 새긴 비석이 천안 독립기념관에 건립되어 있다. [사진=김경아 기자]

철기 이범석 장군은 1900년 서울 종로 용동에서 출생하였다. 1913년에는 경성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 전신)에 입학했다. 3학년 2학기 재학 중인 1915년 여운형의 권유로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이후 민족지도자 신규식의 주선으로 운남강무당(雲南講武堂)에 입학하여 기병과(騎兵科)를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1919년 3·1운동 소식이 알려지자 독립운동에 동참하기 위해 중국 장교직을 사직하고 신흥무관학교의 고등군사반 교관으로 취임하여 독립군 장교 양성에 주력하였다. 1920년 4월 왕청현에 있는 북로군정서로 가서 사관연성소를 창설한 뒤 생도 600여 명을 독립군 장교로 교육하여 부대의 전투 역량 강화에 기여하였다. 이는 한국독립군 전사 가운데 가장 찬란한 전과를 올린 청산리 대첩의 기반이 된다.

이범석 장군은 1920년 10월 20~21일 중국 지린(吉林)성 청산리 백운평에서 벌어진 ‘청산리 전투’에서 김좌진 장군과 함께 일본군을 대파하는 등 큰 전공을 세웠다.

이범석 장군은 보병 1개 대대를 인솔하고 청산리 백운평에서 유리한 지형을 이용하여 일본 토벌군 주력 부대를 강타하여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내게 한 대전과를 올렸다. 이후 김좌진 장군과 함께 북로군정서군을 지휘하며 일본군과 10여 차례 격전을 치러 큰 승리를 거두었다.

1940년 9월 17일에는 한국광복군 창설에 참여하여 참모장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광복군 총사령부의 핵심 부대라 할 수 있는 제2지대장으로서 미국 전략정보국(OSS)과 합작하여 국내 진공작전 수행 계획을 세우는 등 항일투쟁을 전개하다 광복을 맞이하였다.

1946년 6월 3일 500여 명의 광복군 동지들과 인천항을 통해 조국에 돌아온 이범석 장군은 1946년 조선민족청년단을 결성하여 민족국가 건설에 힘썼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부 장관으로서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고, 국군 창설과 육성에 크게 공헌하였다. 정부는 장군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