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우리나라에 뼈아픈 역사가 일어났다. 서구열강과 일본 등 제국주의의 침략이 가속화되면서 나라의 근간을 흔들었다. 그동안 조선이 갖고 있던 자기만의 세계관을 고수하기에는 사회변동의 폭이 너무나도 컸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밖으로는 근대화를 갈구하고, 안으로는 자주성 고취에 주력했다. 당시 역사서술에서 고대 상고사와 관련된 서술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이와 더불어 국조 단군에 대한 관심도 급증했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까지 서당교육 교재로 널리 보급되었던 《동몽선습(童蒙先習)》을 보면 우리 역사의 첫머리를 ‘단군의 건국’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이 책은 숭유(崇儒)의 관념에 따라 쓰였지만, 단군이 요(堯)와 같은 때에 단군이 건국했음을 기록함으로써 민족사의 유구함을 각성시키고 있다.

구한말 동학, 천도교, 대종교 등 모두 우리나라 고유의 선도문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으며, 그 중심에는 단군의 홍익정신이 있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종교운동, 민족주의 국사학, 국어학 운동을 주도했던 대부분 국학자들은 대종교의 교도이거나 대종교 철학과 역사관에 사상적인 뿌리를 두고 있었다.

대종교는 단군 중심의 민족주의를 일본에 대항하는 무장독립투쟁의 중심이념으로 삼았다. 당시 민족지도자들은 종교차원을 넘어 대종교에 입교했다. 당시 독립운동가 중 대종교 관련 인사가 상당수였다. 홍암 나철, 김교헌, 윤세복 등은 대종교 교주로서 독립운동을 주도한 인물들이었다 또한 서일, 박은식, 신채호, 이동녕, 이시영, 이상룡, 김좌진, 신규식, 유동렬, 이범석, 홍범도, 이상설, 박찬익, 김승학, 김두봉, 안희제, 서상일 등도 교인이자 당대를 대표하는 우국지사 독립운동가들이었다. 

대종교 창시자 홍암 나철 선생의 “나라는 망했어도 정신은 존재한다”는 시대적 명제는 무장 항일운동의 정신적 지침이 되었다. 이러한 민족정신의 부활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홍익인간 정신을 구심점으로 신앙 운동, 국학 운동, 항일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나라에 부처가 들어오면 한국의 부처가 되지 못하고 부처의 한국이 된다.

우리나라에 공자가 들어오면 한국을 위한 공자가 되지 못하고 공자를 위한 한국이 된다.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오면 한국을 위한 예수가 아니고 예수를 위한 한국이 되니, 이것이 어쩐 일이냐!

이것도 정신이라면 정신인데, 이것은 바로 노예 정신이다.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려거든 역사를 바로 읽을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거든 역사를 읽혀 바로 알게 할 것이다.

이는 단재 신채호 선생이 《낭객(浪客)의 신년 만필(新年漫筆)》에 쓴 글의 일부이다. 신채호 선생은 일본으로부터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먼저 역사부터 바로 알아야 한다고 외쳤다. 1931년 6월 10일부터 10월 14일까지 103회 <조선일보>에 연재됐던 신채호 선생의 《조선사》는 1948년 안재홍에 의해 《조선상고사》라는 책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그는 이 책에서 우리나라의 사대주의자 및 식민사관에 의해 왜곡되고 축소되었던 우리 고대사의 영역을 한반도에서 만주 지역으로 확장시켰다.

▲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이처럼 홍익인간 정신은 사상적, 계급적 차이를 뛰어넘어 민족적 대단결을 이룬 3·1 운동의 중요한 정신적 배경이었다. 우리는 반만년의 역사를 이어 온 배달민족, 단군의 자손이라는 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독립의 의지로 떨쳐 일어날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단군의 홍익인간 정신은 나라가 융성할 때는 예술혼으로 살아나 신선도, 풍류도, 화랑도 등의 사상으로 발전했고, 민족의 수난기에는 호국의 정신으로, 일제 침략기에는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민족의 구심점으로 피어났다. 외세의 침략 때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기의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 다 도망갔을 때도 수많은 의병들이 일어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우리 민족의 무의식 속에 배달민족이 지녀야 할 자부심과 홍익인간 정신이 꿈틀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단군 조선의 건국이념이자 통치이념인 홍익인간 사상은 종교적, 영토적, 인종적 차원의 배타성을 뛰어넘는 포용성과 보편성을 갖고 있다. 홍익인간 사상 속에는 한민족뿐만 아니라 세계인이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 평화 사상이 담겨 있다.

[기획] 21세기 다시 살아나는 ‘홍익인간(弘益人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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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전은애 기자 hspmaker@gmail.com
참고. 《한국인에게 고함》. 이승헌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