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옻칠 예술의 독창성과 깊이를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하며 주목받는 정광복 작가가 7월 16일부터 31일까지 일본 도쿄에 있는 산반초 갤러리(三番町Sanbancho Gallery)에서 옻칠화 개인전《New Echoes》를 개최한다.
이에 앞서 같은 갤러리에서 정광복 작가는 7월 1일부터 14일까지 최은혜 작가와 한국인작가 2인전 《east window》을 개최하였다.
이번 개인전에서 외래문화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형성된 예술이자 선조들의 지혜를 간직한 한국 옻칠 예술의 진정한 가치와 현대적 가능성을 옻칠의 강국으로 알려진 일본에서 선보인다.
피카소의 <황소> 연작이나 뒤샹의 <샘>처럼 재료의 확장이 현대미술의 시작을 알렸듯이, 정광복 작가의 옻칠화는 정교한 가공과 복잡한 제작 과정을 거쳐 장인의 기술과 현대미술의 조형적 능력을 아우르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간다.

정광복 작가는 한국 전통 공예의 정수인 옻칠을 단순한 공예 재료로 인식하는 것을 넘어, 현대미술의 중요한 요소인 ‘재료의 확장’ 개념으로 접근하며 새로운 예술적 지평을 제시한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각 프레임과 전통 창살 문 형상은 작가 개인의 소통 흔적을 담은 팔레트를 의미하며, 관람객들이 옻칠화 예술의 진정한 모습을 마주할 수 있도록 이끄는 작가의 내면적 의지를 담고 있다.
정광복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이렇게 소개한다.
"십여 년의 창작 연구를 통해 예(藝) 와 기(技)를 겸하게 됐다. 예(藝)는 조형적 능력을 의미하고 기(技)는 장인의 수식어를 포함하는 능력들을 의미한다. 예와 기는 창작에 있어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 일정한 수준 이상에 도달한 기는 예를 결정하는 한편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예와 기는 내용, 형식과 같이 옻칠화가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항목이다. 오랜 시간 수 많은 옻칠예술가들에 의해 발전된 기(技)를 계승하여 현대미술의 흐름에 맞는 새로운 표현 연구로 발전시키고 있다. 이는 외래문화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형성한 예술인 동시에 우리 선조들의 지혜를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예(藝), 기(技) 두 요소를 기반으로 한 창작 연구를 통해 조합, 변형, 개발이라는 조형 원리를 정립하였다. 조합과 변형은 재료의 조합, 기법의 조합, 기법 재료의 조합, 기법의 변형을 의미한다. 창작에 있어 다양한 기법과 재료를 사용하는데 조합과 변형이 효과적으로 수반되지 않으면 이질감의 생성으로 화면 전체의 통일감과 균형을 무너트리는 결과를 도출한다. 효과적인 수반이라 함은 조합 변형이라는 조형 능력의 숙련 정도를 의미한다. 또한 조합, 변형, 개발이라는 조형 원리를 통해 계승, 발전, 창신(創新)이라는 창조 정신을 정립하였다. 이는 서양의 창조 정신과는 다른 창조 정신으로 온고지신(溫故知新), 법고창신(法古創新) 두 사자성어로 쉽게 풀이될 수 있다. 옛것을 부정, 파괴하여 새로움을 추구하는 서양식의 이분법적인 창조 정신과는 대립 되는 이념으로 조합, 변형, 개발이라는 조형 원리를 발전시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긍정, 구축 정신을 예술관으로 삼고 있다. 서양식의 이분법적인 창조 정신을 반증하기 위해 상반, 대립이라는 이분법적인 조형 요소로 하나의 자유로운 화면을 만든다. 직선과 곡선, 사각형과 원형의 간단한 요소 외에도 상반, 대립되는 개념의 요소들을 사용하였다. 나무를 부착하고 그 위에 옻칠하여 실제 문, 창과 같은 효과를 만들어 마치 실제 오브제 안에 그림이 담겨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켜 실존과 허구의 상반되는 느낌을 선사한다. 구상과 추상, 정형화된 도형의 형상과 비정형의 형상, 단순화된 블라인드 형상과 창문 형상 역시 안과 밖, 개방과 폐쇄라는 상반, 대립 되는 의미의 구성요소로 사용하여 새롭고 독특한 예술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전통 창살 문 형상이 작품에 나타나기 전에는 크고 작은 소통의 창을 의미하는 사각 프레임이 등장하였다. 이는 전통 창살 문의 연속이다. 예술적 가치의 내용을 크고 작은 창을 통해 창 밖의 사람들에게 전하는 외침을 의미한다. 개개인의 창을 통해 들려오는 작가의 외침에 블라인드를 걷어 올리고 창을 활짝 열어 진정한 옻칠화 예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기를 기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각 프레임과 전통 창살 문은 소통의 창구라는 의미 외에도 작가 개인에게 있어 소통의 흔적이 남아있는 팔레트를 의미한다."('작가 노트')
정광복 작가는 “이번 일본 도쿄 개인전을 통해 한국 옻칠 예술이 지닌 깊이와 현대적 확장 가능성을 일본 관객들에게 선보일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쁘다”라면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옻칠화의 새로운 시각적 경험과 내면의 울림을 느끼길 기대한다”라고 전했다.
1981년 서울에서 육 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정광복 작가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미술학원을 다닐 형편이 안 되어 고등학교시절에는 만화가 밑에서 만화책 출간 조수 역할을 하며 그림 그리는 꿈을 실현해 나갔다. 고등학교 3학년 때 가정 형편이 좋아져 미술학원에서 입시준비를 하여 미술대학에 진학했다.

대학시절 재료수업에서 자개, 계란껍질, 금박, 은박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여 그림 그리는 옻칠문화예술을 접했다. 당시에는 체계적으로 옻칠 수업을 하는 곳이 없어 대학교 3학년 시절부터 옻칠의 다양한 수법을 배우기 위해 옻칠로 금박 작업하는 사찰이나 공방을 전전하였으나 옻칠로 그림 그리는 지식을 습득할 수 없었다. 그러다 중국 칭화대학교에 옻칠화 전공이 있는 것을 알고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중국 유학 길에 올라 5년간의 석사과정을 마쳤다. 귀국하여 2013년 첫 개인전을 통해 그 동안의 창작연구 결과를 선보였으나 옻칠예술의 기교만을 강조했던 탓인지 주위의 반응은 싸늘했다. 이에 실망하지 않고 좀 더 현대적이고 세련된 옻칠화를 창작하고자 3년간 작업실에서 창작연구에 몰두했다. 옻칠의 복잡한 제작과정과 이질적인 재료들을 조화롭게 하나의 화면에 녹여내는 방법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다. 창작연구를 마치고 2016년 결과물을 선보이자 반응이 호의적으로 바뀌었다. 이후 여러 갤러리의 초대를 받기 시작하였고 지금은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에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정광복 작가는 현대미술의 흐름에 뒤쳐지지 않는 옻칠작품을 만들기 위해 평면 외에도 입체, 설치 등 다양한 형식의 작품을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