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단 모시는사람들’이 2025년 신작 연극 〈춘섬이의 거짓말〉(작가·연출 김정숙)을 발표한다. 한글 소설 《홍길동전》의 시작을 새롭게 상상한 이번 작품은 폭압의 시대를 살아낸 조선 여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극단 모시는사람들의 〈숙영낭자전을 읽다〉〈심청전을 짓다〉〈소녀〉〈꽃가마〉를 잇는 조선여자전 다섯 번째 이야기이다.
‘홍길동의 어머니는 누구였을까?’라는 물음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는, ‘흙수저’로 태어나 사랑도 미래도 빼앗긴 한 소녀 ‘춘섬’이 거짓말로 진실을 지키며 스스로 운명을 써 내려가는 여정을 따라간다. 숯 굽는 개불이와 연정을 나누고 혼례를 꿈꾸는 찰나, 씨받이로 팔려 갈 위기에 놓인 춘섬은 결국 ‘거짓말’로 스스로 운명을 짓는다. 이 연극은 과거의 재현에 그치지 않고 시대를 넘어 지금, 여기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살아있는 이야기다. 춘섬이가 지은 거짓말에는 한 아이를 위한 결단,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어머니의 시선이 숨어 있다.
그 춘섬의 곁에는 함께 거짓말을 지어내는 여성들이 있다. 마님의 몸종 쫑쫑이, 찬모 딸끝네, 춘섬의 어머니는 각자의 방식으로 춘섬에게 손을 내밀며, 춘섬을 향한 작은 연대를 실천한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거짓말’은 단지 생존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스스로 운명을 짓는 여성들의 은유적 저항이다. 홍대감댁 뒷마당에서 삶을 일으키는 그들의 목소리는 그늘 속에서도 단단하다.
열여덟 살, 꽃다운 춘섬이.
홍대감 댁에서 대대로 종살이를 하는 집안의 딸이다. 춘섬이는 숯굽는 개불이와 남몰래 사랑을 나누며 임신하여 이듬해 혼례를 올릴 꿈에 부풀어 있는데..
이를 모르는 춘섬의 부모는 매파의 권유로 춘섬이를 부잣집에 아이를 낳아주는 씨받이로 보내고 돈을 받아서 주인댁 아들 대신 군역에 간 춘섬 오래비를 면천시키려 한다.
더하여 주인인 홍대감은 낮잠을 자다가 꿈에서 청룡을 보고 장차 세상을 바꿀 인재를 낳을 태몽이라 여기고 내당에 든다. 그러나 체면을 중히 여기는 부인에게 거절을 당하자 종년인 춘섬이를 불러들여 욕망을 채운다.
개불이를 사랑하지만 양반의 첩이 된 춘섬이는
뱃속의 아이를 개불이의 아이로 낳을 것인가,
아니면 양반의 자식으로 낳을 것인가
차별의 나라 조선에 태어날 아이의 운명을 결정짓는 어머니로서 춘섬은 거짓말로 진실을 지키며 스스로 운명을 짓기 시작하는데....
그런데 왜 지금, 홍길동 어머니인가? 극단 모시는사람들은 ‘제작의도’를 이렇게 밝혔다.
저출산을 다룬 BBC 다큐멘터리에서 한국 여성들은 “우리 어머니가 불행해 보였기에, 나도 어머니가 되기 싫다”고 말한다. 예능 프로그램 속 청소년 부모들은 무방비 상태에서 아이를 낳지만, 키울 줄을 모른다. 이는 ‘모성의 위기’이며, 결국 우리 사회가 ‘어머니의 존엄’을 잃어버렸음을 드러낸다.
〈춘섬이의 거짓말〉은 바로 이 위기에 맞서는 연극이다. 고통 속에서도 삶을 선택하고, 아이를 위해 진실을 감추며 결단을 내리는 춘섬의 모습은, 오늘날 여전히 차별과 폭력에 흔들리는 우리에게 ‘생각하는 힘’이 어디서 오는지를 보여준다. 세상의 차별에 지지 않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홍길동의 꿈은 어머니 춘섬이에게서 시작된다. 차별의 운명 앞에 눈을 똑바로 뜨고 ‘어머니’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하는 춘섬이의 모습이 오늘날 불안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의 주도권을 찾아가는 길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이번 공연에는 오랜만에 연극 무대에 복귀하는 배우 신문성(〈동백꽃 필 무렵〉), 김현(〈재벌집 막내아들〉), 그리고 대전을 중심으로 활동 중인 (사)마당극패 우금치의 배우 성장순의 특별 출연으로도 주목받는다. 스크린과 방송에서 활약한 이들이 다시 연극이라는 ‘고향 무대’로 돌아와, 36년간 함께 해 온 극단 모시는사람들만의 탄탄한 앙상블을 이룬다.
연극 〈춘섬이의 거짓말〉은 7월 25일(금)부터 8월 3일(일)까지 성수아트홀(서울시 성동구 뚝섬로1길 43)에서 공연된다. 평일은 오후 7시 30분, 주말은 오후 2시와 5시 두 차례 공연되며, 공연 시간은 약 80분이다. 관람 연령은 13세 이상으로 티켓 정가는 40,000원이다. 7월 25일 첫 공연에 한 해 대학로티켓.com에서 ‘금요일 야간관람권’ 특별가 10,000원으로 예매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모녀 관객을 위한 패키지, 청소년과 예술인 할인, 재관람 할인 등 다양한 관람 혜택이 있으며 호텔포코성수와 제휴하여 도심 휴가 호텔패키지도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