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있는_object, oil on canvas, 72.7×116.8cm, 2022  [이미지 아트스페이스휴]
앉아있는_object, oil on canvas, 72.7×116.8cm, 2022 [이미지 아트스페이스휴]

화가 김자연은 글을 쓰는 작가이다. 소설을 쓰고 그것을 바탕으로 회화 작업을 한다. 그가 쓴 장편소설이 《유령섬(Phantom Island)》이다. 이 소설의 두 번째 장 '오렌지색 사막(Orange desert and a windowless house)'을 기반으로 회화 작업을 하여 20점의 신작을 선보인다.

9월 20일부터 휴+네트워크 창작스튜디오 두 번째 릴레이전으로 경기도 파주출판단지 아트스페이스 휴에서 열리고 있는 김자연 개인전 '유령섬 오렌지색 사막과 창문 없는 집Phantom Island_Orange desert and a windowless house' 에서다.

‘유령섬’은 유령들이 있는 곳이 아니다. 김자연 작가는 그가 경험한 일 가운데 추상적이고 감상적인 파편에 허구적 요소를 더해 ‘유령섬(Phantom Island)’이라는 허구의 세계를 만들었다. 말하자면 지도에는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앉아있는_object, 72.7×60.6cm, oil on canvas, 2022  [이미지 아트스페이스휴]
앉아있는_object, 72.7×60.6cm, oil on canvas, 2022 [이미지 아트스페이스휴]

유령섬을 만든 건 작가가 다루는 작업 대상과도 연결된다. 작가는 인간의 내면, 그중에서 쉽게 부정하고 감추도록 요구하는 우울, 무기력, 상념과 같은 감정을 주로 그린다. 각자 갖는 이러한 감정은 분명 존재하는데,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서는 그 존재를 공공연하게 드러낼 수 없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들, 유령같은 것들이다.

작가는 대형 캔버스에 낮은 채도의 짙은 색을 사용해 자신의 심상을 담은 유령섬의 풍경을 담았다. 이번 시리즈에서 의자에 ‘오브제’와 같이 앉아있는 인체를 회화의 대상으로 삼는다. 무의식과 직관의 움직임을 따라 나무와 숲이 무성한 자연의 이미지를 그려내던 작가다. 기존에 숲의 나무 형상에 빗대어 표현하던 사람의 인영을 <앉아있는_object>, <앉아있는_사람>, <앉아있는_얼굴>의 작업을 통해 더욱더 전면에 드러낸다.

앉아있는_얼굴, 100×72.7cm, oil on canvas, 2022 [이미지 아트스페이스 휴]
앉아있는_얼굴, 100×72.7cm, oil on canvas, 2022 [이미지 아트스페이스 휴]

‘의자 위의 앉아 있는 인물’이 이번 전시의 특징이다. 몸을 동그랗게 말아 웅크린 자세를 취하거나 의자에 기대 팔다리를 늘어뜨린 채 널브러지거나 드러누운 자세 등 앉아있다는 느낌보다는 의자 위에 놓인 오브제를 연상하게 한다. 어딘가 불편한 느낌을 준다. 안락한 의자의 이면에서는 다른 것이 있다. 안락하지만, 그 안락의 대가로 받아야 하는 사회적인 속박이다. 이렇게 하여 그림에서 인물을 인물이 아닌 하나의 대상으로서 보게 하게 하는 장치가 된다.

“그림 안에서 인물은 의자 위에 오브제처럼 존재한다. 늘어지거나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며 딱히 심리를 예측할 수 없는 어딘가 공허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인물의 의상이나 머리 모양으로 관객에게 특정 인물을 상기시키고 싶지 않았다. 소설은 인물이 느끼는 감정 변화에 의해 전개된다. 색감을 통한 묘사나, 은유적으로 표현된 대상들이 나열되는데, 마치 악몽 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다. 부정적이라고 분류되는 감정들을 직시하며 부정하지 않고 그것을 도상으로 실재화 하고 싶었다. 날것을 찾기 어려운 시대이지만, 포착한 날것에 가까운 것을 회화로 표현해내는 것이 요즘 작업 주제이다.” (작가노트)

풍경에 빗대어 자신의 감정을 에둘러 표현하던 작가는 이제 돌아가지 않고 자신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에서 자신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게 하는 공간인 ‘창이 없는 집’으로 관람자를 초대한다.

김자연 개인전 '유령섬 오렌지색 사막과 창문 없는 집Phantom Island_Orange desert and a windowless house'  전시 모습. [사진 아트스페이스 휴]
김자연 개인전 '유령섬 오렌지색 사막과 창문 없는 집Phantom Island_Orange desert and a windowless house'  전시 모습. [사진 아트스페이스 휴]

김자연 작가는 추계예술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현재 휴+네트워크 창작스튜디오의 입주작가로 활동한다. 올 7월 제주 스튜디오126에서 첫 개인전 <열린 문틈 사이로>를 개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