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세종의 지시로 1424년부터 편찬을 시작해 1432년 전국 지리지 ‘신찬팔도지리지’로 완성된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우산, 무릉 두 섬이 현의 정동쪽 바다 가운데 있는데 서로 거리가 멀지 아니하여, 날씨가 맑으면 가히 바라볼 수 있다. 신라 때에 우산국 또는 울릉도라 하였다”라고 영토의 동쪽 끝 독도와 울릉도를 기록했다.

하늘에서 바라본 독도. [사진 외교부 독도]
하늘에서 바라본 독도. [사진 외교부 독도]

우리나라의 강역에 관한 기록으로 현존하는 전국 규모의 관찬(官撰) 지리지는 고려 시기에 편찬된 《삼국사기》지리지(1145년)를 제외하면 모두 조선 시대에 편찬된 지리지이다.

국왕의 명으로 국가 차원에서 제작된 조선의 관찬지리지인 《세종실록》지리지, 《고려사》지리지, 《동국여지승람》, 《동국문헌비고》 등에는 ‘독도’가 빠짐없이 기록되어 왔다. 명칭이나 위치, 크기에 대한 기록이 지금과 차이가 있으나 독도를 우리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명백히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의 경우 에도시대 지방 정부나 민간에서 제작된 사찬(私撰) 사료에 의거하고 있다.

독도 영유권에 대한 이해와 직결된 조선의 관찬 지리지들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를 위해 조선 관찬 지리지 연구자들이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오는 23일 오후 1시 30분부터 재단 회의실에서 2022년도 독도연구소 학술회의를 개최한다. ‘조선 지리지의 세계와 해양‧도서 인식’을 주제로 한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조선의 관찬지리지에 나타난 우리 강토와 바다, 섬에 대한 인식과 특징, 그리고 독도에 관한 기록을 살펴본다. 

또한, 관찬지리지 자체에 포커스를 맞춰 제작 과정과 편찬 방식, 강토와 바다‧섬 전반에 대한 인식과 특징을 폭넓게 살펴볼 예정이다.

기조 강연은 박종기 국민대 명예교수가 맡아 ‘조선시기 관찬 지리지에 나타난 섬 인식’을 주제로 고려 시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섬에 대한 인식변화를 조망한다. 박 교수는 고려와 조선 전기에는 국가의 재정원이 되는 경제적 가치로, 조선 중기에는 영토의 일부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조선 후기와 한말에는 국토 방어의 요충지로 섬을 인식하게 된 변화과정을 분석한다.

1부 주제발표는 ▲‘고려시대 도서(섬)의 인식과 《고려사》지리지의 섬 관련 기록’ (홍영의 국민대 한국역사학과 교수, 한국 섬역사연구소 소장) ▲‘《세종실록》지리지 해도 기술의 특징과 우산·무릉도 기사의 재검토’(소순규 한양대)로 진행된다.

2부 주제발표는 ▲‘《동국여지승람》에 나타난 해도(海島) 인식’ (서인원 동국대) ▲‘《동국문헌비고》의 세계와 해로‧도서 인식’ (박인호 금오공대 교육교지과정부 교수) 순으로 진행된다.

주제발표에 이어 정영미 독도연구소 소장의 사회로 주제발표자와 토론자 전원이 참여하는 종합토론이 이어질 예정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의 근거가 되는 지방 정부 사료나 민간의 사찬 자료와 조선의 관찬 기록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그 차이점을 인식함으로써 향후 독도연구는 새로운 관점에서 진행될 것이다”라며 “이번 학술회의가 그 계기가 될 것”이라고 취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