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우 저 《고철 정철수 평전 격랑만리》(도서출판 큰길사, 2022)는 경기도 용인 묘현 능원에서 1924년 1월 16일 포은 정몽주 선생의 23대 종손으로 태어나 일제강점기 말기에 강제로 일본군 학병으로 끌려갔다 학병 탈출 1호가 된 고철(高哲) 정철수(鄭哲洙) 선생의 격랑의 생애를 집대성한 책이다.

이 책을 쓴 조성우 저자는 《KAIST-IP CEO》, 《서양득이 답이다》, 《길 없는 길》, 《행복한 덕질》 등 다수의 평전과 기록물을 집필했다.

"고철 정철수 평전 격랑만리" 앞 표지 [사진 조성우]
"고철 정철수 평전 격랑만리" 앞 표지 [사진 조성우]

 조성우 씨는 정철수 선생의 아들인 정래정 씨의 의뢰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하지만 발간하기까지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정래정 씨는 질곡의 현대사 속에서 파란만장한 삶을 사셨던 아버지 정철수 선생의 이야기가 묻히는 것이 안타까워 정철수 선생이 사신 이야기를 기록에 남기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막상 집필을 하려니 세월도 많이 흘렀고, 자료도 별로 없어 단 한 줄이라도 관련 기록을 찾기 위해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은 물론 관련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전국 곳곳의 도서관과 정부기록원을 돌아다니며 자료 수집에만 5개월 정도가 걸렸습니다. 그리고 집필이 완료된 후에도 새로운 논문이나 연구자료가 발간되면 이를 찾아 내용을 수정한 적도 비일비재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무척 힘들었지만 남과 북 모두에서 잊혀진 존재였던 조선의용군의 치열했던 항일투쟁과 여정을 조명할 수 있어 한편으로는 뿌듯함도 느낍니다."

2016년 초부터 자료조사를 시작하여 그해 10월에 원고가 완성되었지만 바로 책으로 발간할 수 없었다. 의뢰한 분의 건강상 문제로 연기되어 6년이 지나 올해 여름에 드디어 발간할 수 있었다. 

정철수 선생은 경성제2고보와 보성전문학교를 다닌 '인텔리'이자 조선의용군 출신 독립운동가, 또한 민족교육자이자, 극작가, 박애주의자였다.

정철수 선생은 대일항쟁기와 항일투쟁, 반우파 운동과 문화대혁명 등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벌어진 격변을 온몸으로 겪으며, 피와 땀, 눈물과 한숨으로 모진 세월을 견뎠다. 그래서 그의 일대기는 한국과 중국의 현대사를 압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시기 그는 민족애로 피끓는 항일투사에서 수많은 작품을 발표한 극작가로, 다시 패망 후 버려진 일본인 수백 명의 목숨을 구한 박애주의자였다가 동족상잔의 비극에 동참하지 않고 민족 교육에 뛰어든 교육자로, 다시 현실에 대한 매서운 비판을 아끼지 않는 문인에서 반우파의 누명을 쓰고 강제노역에 처한 노동자이자, 인쇄공장의 탄부로 전락한다. 다시 대학교수가 되어 기나긴 굴곡의 세월에 유종의 미를 거둔다.

이후 40여년 만에 고국에 돌아와 어머니를 모시며 포은 종손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다 1989년 2월17일 영면에 들었다.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인정받아 2011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고철 정철수 평전 격랑만리》는 제1부 입영(入營) 제2부 탈출(脫出) 제3부 태항산(太行山) 제4부 동북행(東北行) 제5부 야만(野蠻)의 시대 제6부 엽락귀근(葉落歸根)로 나누어 선생의 생애를 소개했다. 또한 ‘화보 사진으로 보는 고철 정철수의 생애’을 책 앞 부분에 두어 선생의 생애를 알기 쉽게 했다.

"고철 정철수 평전 격랑만리" 앞 표지 [사진 조성우]
"고철 정철수 평전 격랑만리" 앞 표지 [사진 조성우]

특히 이 책에는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조선의용군이 남장에서 찍은 사진과 해방 직후 태극기를 들고 호가장 전투에서 희생된 전우들의 묘를 참배하는 사진, 그리고 동북을 향해 도보로 대륙을 횡단하는 조선의용군의 모습 등 귀중한 사진이 들어 있다. 사진만 봐도 조선의용군이 목숨을 걸고 항일투쟁에 매진했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들이다.

독립기념관 한시준 관장은 추천사에서 “이 책은 포은 정몽주의 종손이 독립운동에 참여했다는 사실과 더불어, 현대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또 격랑의 파도를 헤치며 모질고 어려운 시련을 이겨낸 인간 승리의 장엄함, 그리고 격랑을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앞서간 이들의 발자취는 뒤따르는 이들의 이정표가 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