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우리 땅에 살아온 토착 식물 중에는 숨은 보물과도 같은 약용식물들이 있다. 그중 황칠나무는 뿌리에서 줄기, 잎, 가지, 씨앗, 수액까지 쓰임이 없는 곳이 없어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 할 수 있다.

한반도뿐 아니라 중국 등 동아시아에서 고대부터 희귀한 도료로 사랑받아 왔고, 이후 질병 치료와 병리 증상 개선에 활용되며 쓰임이 확장된 황칠은 최신 연구를 통해 다양하고 뛰어난 약리 효능이 입증되면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우리나라 제주도와 남해안에 자생하는 황칠나무. [사진 K스피릿 자료]
우리나라 제주도와 남해안에 자생하는 황칠나무. [사진 K스피릿 자료]

황칠나무의 학명은 ‘덴드로파낙스 모비페루스(Dendropanax Morbiferus)’. 라틴어로 ‘만병통치의 나무’라는 뜻이다. 다량의 사포닌과 카테킨을 함유하고 있어 ‘인삼나무’ 또는 ‘산삼나무’라고도 불린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익(1629~1690)은 《성호사설(星湖僿說)》을 통해 불로장생을 꿈꾸던 진시황이 찾던 ‘동방의 불로초’가 바로 제주의 황칠나무였을 것이라 추정했다.

그리고 ‘옻칠은 천년, 황칠은 만년 간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옻처럼 황칠도 수피(樹皮)에 상처를 내면 자가치유를 위해 유백색의 수액이 분비되는데 공기 중에서 굳어지면서 황금빛으로 변한다. 체질에 따라 옻이 오르는 옻나무와 달리 황칠은 독성이 없고 효능이 훨씬 뛰어나다. 하지만 아름드리 황칠나무에서 1년을 채취해도 작은 종지 하나 정도 분량으로 희소성이 매우 높아 주로 왕실에서 사용했다.

완도 정자리 황칠나무.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크고 오래된 황칠나무로 천연기념물 제479호로 지정되었다. [사진 K스피릿 자료]
완도 정자리 황칠나무.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크고 오래된 황칠나무로 천연기념물 제479호로 지정되었다. [사진 K스피릿 자료]

고대 한반도에 살던 사람들은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황칠나무의 특별한 쓰임새를 알고 있었다. 황칠에 관한 역사기록은 중국과 국내의 고대 문헌에 나타난다. 특히, 국제 교역을 통해 중국에 많이 수출된 백제 황칠의 명성은 중국사서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당나라 재상 두우((杜佑,735∼812)는 《통전(通典)》에서 “백제의 서남쪽 바다에 세 개의 섬에서 황칠나무가 난다. 6월에 백류(白流)를 채취해 기물에 칠하면 그 빛이 금빛과 같아서 안광을 빼앗는다”라고 했다.

북송의 왕운(王雲, ?~1126)은 《계림지(鷄林志)》에서 “고려의 황칠은 섬에서 나는데 6월에 수액을 채취한다. 빛깔이 마치 금과 같으며 햇볕에 쬐어 말린다. 본디 백제에서 나는 것인데, 지금 절강사람들은 ‘신라칠’이라 부른다”고 했다.

황칠은 주로 갑옷을 칠해 황금색으로 번쩍이며 권위와 위압감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송의 왕흠약(王欽若, 962~1025) 등이 쓴 《책부원귀》에는 당나라 태종이 백제에 사신을 보내 그곳에서 나는 금칠을 채취하게 하여 철갑에 칠하도록 했는데 “누런 자주빛으로 광채를 끄는 색이 겸금(兼金, 품질이 뛰어나 값이 보통 금보다 갑절이 되는 좋은 황금)보다 뛰어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황금빛 갑옷에 칠한 황칠은 비바람과 눈, 햇빛, 습기 등 풍화작용에서 금속이 녹슬지 않도록 했다.

황칠나무 수피에 상처가 나면 자가치유를 위해 나오는 수액.  수액은 유백색을 띄다가 공기 중에서 굳어지면서 황금빛으로 변한다. [사진 K스피릿 자료]
황칠나무 수피에 상처가 나면 자가치유를 위해 나오는 수액. 수액은 유백색을 띄다가 공기 중에서 굳어지면서 황금빛으로 변한다. [사진 K스피릿 자료]

황칠은 금속뿐 아니라 나무, 도자기, 종이 등 원물의 고유 질감과 문양을 그대로 살리면서 칠한 기물의 표면에 부드럽게 밀착되어 기물을 반복해서 접었다 피거나 구부려도 칠이 벗겨지지 않아 부채와 같은 기물에도 활용할 수 있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뛰어난 황칠 기술은 백제에서 통일신라, 고려로 계승되었음을 사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려사》에는 고려 원종 12년(1271) 원나라의 요청으로 황칠과 황칠 장인을 징발한 내용이 나온다.

황칠 유물로는 2006년 경주 계림 북편 황남동 신라유적지에서 1,300년 전 7세기로 추정되는 작은 지진구합에 담긴 황칠 응고액이 발견되었다. 지진구는 지진과 낙뢰, 태풍과 같은 천재지변으로부터 중요 건축물의 안전을 기원하는 의례용 기물인데 이곳에 황칠을 담아 ‘벽사(辟邪, 삿된 기운을 물리침)’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1,300년 전 경주 계린 신라유적지에서 발견된 작은 지진구합에 담긴 황칠 응고액. [사진 문화재청]
1,300년 전 경주 계린 신라유적지에서 발견된 작은 지진구합에 담긴 황칠 응고액. [사진 문화재청]

또한, 2012년 인천 옹진군 영흥도 부근 바닷속 개펄에서 7~8세기 통일신라의 교역선이 발굴되었는데 그 안에서 작은 토기 항아리에 담긴 황칠이 발견되었다. 항아리가 밀폐된 덕분에 황칠은 특유의 은은한 향과 끈적끈적한 유기물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16세기 임진왜란 후 황칠 도료 가공법의 전승이 끊어진 상황에서 신라산 황칠 도료 발견은 의미가 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유물조사 당시 인식 미비로 황칠 유기물을 세척해버려 남지 않았다.

이렇듯 귀한 황칠나무지만 자생지의 백성에게는 수난이었다. 중원 제국들의 끊임없는 조공 요구와 함께 공납 과정에서 지방 아전들의 수탈이 심했기 때문이었다.

정약용이 1803년 유배지 강진에서 지은 시 ‘황칠’에는 황칠 공납으로 완도 주민들이 나무를 훼손하는 상황을 개탄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나무의 명성이 온 천하에 알려져 박물지에도 왕왕이 그 이름 올라 있네. 공납으로 해마다 공장(工匠)에게 옮기는데 서리(아전)들의 농간을 막을 길 없어 지방민이 이 나무를 ‘악목(惡木)’이라 여기고서 밤마다 도끼 들고 몰래 와서 찍었다네"

과도한 조공과 수탈, 그리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황칠나무의 명성은 역사에서 사라질 뻔했으나 현대에 다시 되살아나고 있다.

황칠나무는 6월에 연한 황록색으로 꽃이 피고 열매는 타원형으로 30~40여개 씩 공처럼 모여서 달리는데 10월에 검은 빛으로 익는다. [사진 K스피릿 자료]
황칠나무는 6월에 연한 황록색으로 꽃이 피고 열매는 타원형으로 30~40여개 씩 공처럼 모여서 달리는데 10월에 검은 빛으로 익는다. [사진 K스피릿 자료]

2000년대 들어 뿌리와 가지뿐 아니라 잎과 줄기, 꽃, 열매, 수액에 대해서도 성분 분석 및 시험을 통해 여러 효능들을 조사하고 입증하는 연구·보고가 활발해졌다.

현재까지 밝혀진 것을 살펴보면 ▲인체 면역력 강화 ▲인간 텔로머레이즈 활성화 가능성 ▲항노화와 피부미백 ▲항암 ▲혈당 개선 ▲고혈압 개선 ▲고혈당성 치매예방과 치료 ▲높은 항산화 및 생리적 활성 효능 ▲스트레스 및 수면 장애 개선 ▲항염증 ▲ 간질환 예방 및 치료 ▲장운동 촉진 등의 효능을 발휘할 가능성이 있다.

민간요법 측면에서는 황칠나무의 뿌리줄기는 노화를 막는 항산화 작용을 하며 성인병 예방 및 치료에 특별한 효과가 있고, 항염증, 항암 효능이 있다. 나무줄기는 간염과 간경화, 지방간 등 간질환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효능이 있고, 잎 추출물은 장운동을 촉진해 변비를 치료한다고 본다.

전 세계를 뒤덮은 코로나 대유행이 아직 종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또 다른 대유행을 염려해야 하는 시대에 면역력은 최선의 방어기재가 되고 있다. 우리 몸과 마음에 자연치유력과 면역력을 높여 주는 자연의 선물, 황칠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