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 대신 한복 입은 서양동화, 동서양 만남이 주는 독특한 재미
드레스 대신 한복 입은 서양동화, 동서양 만남이 주는 독특한 재미
  • 강나리 기자
  • heonjukk@naver.com
  • 승인 2022-06-14 1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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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입은 서양동화’ 일러스트레이터 흑요석 작가의 한복이야기 강연

“제 그림이 저 같아요. 어렸을 때 디즈니 만화를 좋아했고 전래동화보다 안데르센동화를 먼저 접했죠. 서양문화에 익숙하게 커서 동양화를 만나고 한복에 빠졌어요.”

지난 11일 조선왕릉 선릉의 재실에서 한복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한복입은 서양동화' 흑요석 작가(오른쪽)와의 만남이 진행되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지난 11일 조선왕릉 선릉의 재실 한옥에서 한복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한복입은 서양동화' 흑요석 작가(오른쪽)와의 만남이 진행되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친근한 서양동화뿐 아니라 외국영화 속 히어로에게 한복을 입힌 독특한 일러스트로 알려진 흑요석(본명 우나영) 작가. 그가 지난 11일 조선왕릉 선릉 재실에서 열린 한복 문화행사에서 한복과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자신이 처음 한복에 관심을 갖게 된 순간을 ‘치였다’라고 표현했다. “교통사고 같은 거다. 드라마 ‘황진이’에 나오는 김혜순 한복 명장의 한복 의상에 치였다.”

흑요석 작가는 “오랫동안 N사에서 게임캐릭터를 그리는 원화가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면서 한계를 느꼈을 때 자신을 돌아보며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하면서 찾은 답이 한복”이라며 오랫동안 작품활동을 할 수 있던 원동력은 ‘한복을 너무나 좋아해서’라고 밝혔다.

선릉의 제례를 준비하는 재실에 흑요석 작가의 일러스트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선릉의 제례를 준비하는 재실에 흑요석 작가의 일러스트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사진 강나리 기자]

“한복을 아이템으로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었는데 원칙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원래 ‘선녀와 나무꾼’ 같은 전래동화를 생각했는데 그건 너무나 당연해서 재미가 없었다. 당연하지 않게 그리려다 보니 좋아하던 서양동화가 떠올랐다”

그의 작품이 널리 알려진 것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시리즈를 내놓았을 때이다. “쉽지 않았다. 대학 때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오랫동안 픽셀아트만 하다 보니 손이 굳어서 선 하나를 제대로 그릴 수 없어 울면서 그렸다. 엘리스는 4~5번째 작품인데 당시 회사를 다니면서 점심시간, 새벽시간을 쪼개 가며 그리다 보니 힘들고 슬럼프가 왔던 때여서 그리다 놨다, 마음에 안 들어 다 지웠다가 하면서 힘들게 6개월 만에 완성했다. 이 작품이 효녀가 되어주었다.”

2013년 ‘엘리스, 한복을 입다’로 작가로서는 첫 전시회를 열었다. 그는 크라우드 펀딩 후원금과 전시 수익금 1,400만 원을 일본군‘위안부’할머니를 위해 기부했다.

“펀딩 모금할 때쯤 뉴스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이 심리치료 겸 그림을 그리신다는 소식을 들었고, 할머니들의 그림을 보면서 가슴이 메어왔다. 그림 그리는 것에 대해 깊이 고민할 때라 ‘내가 저때 태어났으면 그림을 못 그렸겠구나. 반대로 할머니들도 지금처럼 좋은 시대에 태어났다면 나랑 그림을 같이 그렸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흑요석 작가는 자신의 작품 장르를 ‘패러디’라며 “보는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찰떡같이 표현했지?’라고 느껴야 한다”고 했다. 그의 엘리스 그림 속에는 영국여왕 초상화가 있어야 할 위치에 명성황후 초상화를 넣고, 서양놀이 트럼프 대신 전통놀이 골패를 넣었다. “한복뿐 아니라 관련된 많은 지식이 늘었다. 전통놀이 문화, 세시풍속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흑요석 작가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시리즈 중 한 작품. 왼쪽 하단에 영국여왕 초상화 대신 명성황후 초상화, 트럼프  대신 골패가 보인다. [사진 문화재청]
흑요석 작가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시리즈 중 한 작품. 왼쪽 하단에 영국여왕 초상화 대신 명성황후 초상화, 트럼프 대신 골패가 보인다. [사진 문화재청]

그는 《흑요석이 그리는 한복이야기》 책을 냈다. “처음 그림을 그릴 때 한복을 잘 몰랐다. 책을 찾아봐도 어려웠다. 안섭, 여밈 등 용어도 잘 모르겠더라. 배운 지식을 가지고 전시도 가보고 색감을 표현해보았다. 그러면서 한복을 잘 몰라도 한복을 그리거나 드라마를 제작하고 싶은 사람들이 나처럼 고생하지 말고 한복을 쉽게 이해하는 길잡이가 되었으면 해서 책을 쓰게 되었다.”

그가 작품에서 중요시하는 부분은 ‘전체적인 조화’라고 했다. 그는 “한복의 색이 생각보다 다양하다. 화면 내에서 얼마나 색의 균형이 맞는지, 그리고 소품구성에 신경 쓰는데 특히 한복의 선을 중요하게 여긴다”라며 “한복의 선은 양복의 선과 다르다. 평면재단이어서 입는 사람의 몸에 맞춰 자연스럽게 주름이 생긴다. 치마도 풍성하게 입을 수도, 당겨서 입을 수도 있다. 선과 선이 만나고 주름과 주름이 만나는 묘미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흑요석 작가는
흑요석 작가는 "한복이 마냥 고와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지만 제 작품을 통해 한복을 알게 된다면 제대로 알려야 겠다는 책임감이 든다"고 소신을 밝혔다. [사진 강나리 기자]

흑요석 작가는 “한복이 마냥 고와서 시작했지만 내 그림을 통해 한복을 알게 된다면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책임감이 든다”라고 신념을 밝혔다. 그의 작품이 북미와 유럽에서 관심을 받으면서 외국 전시를 여러 차례 했다. “서양에서는 그들의 이야기인데 다른 옷을 입었을 뿐 아는 이야기이다 보니 오히려 옷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한복에 관심을 갖는 것 같다.”

그는 인상 깊은 해외전시로 브라질 전시를 꼽았다. “코로나 와중인데도 관람객이 많았고 상파울루 시장은 한인이 많이 사는 거리의 몇몇 건물외벽에 내 그림으로 랩핑 하도록 했다. 얼마 전 한국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브라질 유학생이 제 그림을 보았다고 하더라.”

흑요석 작가는 영화 ‘미녀와 야수’ 콜라보 작업을 계기로 디즈니코리아와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들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싶다는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최근에는 김홍도의 ‘씨름’을 패러디해 영화 '토르 라그나로크' 속 히어로들을 그린 작품이 주목을 받고 있다. 씨름을 하는 헐크와 토르, 엿판을 들고 있는 로키 등이 독특하게 표현되었다. “이 그림을 보고 외국인이 스스로 학습해서 그림의 원본이 김홍도의 ‘씨름’이라고 찾아서 올리더라. 그림은 (서로 다른)문화를 뛰어넘는 힘이 있다는 걸 느꼈다.”

흑요석 작가의 영화 '토르 라그나로크' 패러디. 단원 김홍도의 '씨름'을 패러디했다. [사진 흑요석 작가 인스타그램]
흑요석 작가의 영화 '토르 라그나로크' 패러디. 단원 김홍도의 '씨름'을 패러디했다. [사진 흑요석 작가 인스타그램]

그는 동양과 서양의 절묘한 만남이 가지는 시너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국인과 국제연애를 하는 외국인이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서로 다른데 이렇게 재미있게 한 화면 안에서 만나고 어우러지면서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게 꼭 우리 같다’라고 했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에서 동서양 문화가 만나고 융합하는 게 어렵진 않은 것 같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한국이지만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와 연결되어 있고 서양문화가 너무나 많이 들어와 익숙하다. 그런 면에서 동양과 서양의 융합을 우리만큼 잘할 수 있는 나라가 없지 않을까 한다. ‘우리 이렇게 융합했어. 재미있지’라고 보여줄 수 있다.”

끝으로 한복에 대한 문화동북공정에 관한 질문에 “어떤 문명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라며 문화제국주의에 대한 반대를 표명하며 "영향을 주고받을지라도 우리만의 독자적인 문화가 있고 그 뿌리가 단단하다. 우리의 뿌리를 찾았을 때 더욱 자부심을 느낄 수 있고 그것을 콘텐츠로 만들어 해외에 알리고 향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소신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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