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7월 순종이 대한제국 황제로 즉위하면서 황제가 업무를 보는 정궁(正宮)이 경복궁에서 창덕궁으로 이어하게 되면서 창덕궁 수리가 결정되었다. 이때 새롭게 단장한 창덕궁에는 당시 유입된 근대적 설비와 생활양식이 반영되었다. 전기, 수도, 자동차 등이 대표적이다.

대한제국 황제에 즉위한 순종이 이어한 창덕궁 인정전 앞 설치된 전신주 모습.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유튜브 영상]
대한제국 황제에 즉위한 순종이 이어한 창덕궁 인정전 앞 설치된 전신주 모습.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유튜브 영상]

그중 국립고궁박물관은 6월 큐레이터 추천 왕실유물로 ‘창덕궁 및 수도관 설치 계획도(수도철관복입위치지도)’를 선정했다. 이전 조선 궁궐과 다른 모습으로 변화한 근대기 창덕궁과 창경궁의 일면을 살펴볼 수 있다.

유물은 근대적 측량술로 그린 평면도 위에 철제 수도관의 배치 형태와 규격, 소화전 위치를 표시했다. 도면은 화지 1매, 클로스지 1매, 청사진 3매로 되어있는데 화지 도면에는 1908년 제작되었다는 표시가 되어있다.

1908년 제작된 창덕궁 및 창경궁 수도관 설치 계획도.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1908년 제작된 창덕궁 및 창경궁 수도관 설치 계획도.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근대적 측량 기술로 그린 도면에는 1908년 제작했다는 표시가 되어있다.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유튜브 영상 갈무리]
근대적 측량 기술로 그린 도면에는 1908년 제작했다는 표시가 되어있다.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유튜브 영상 갈무리]

도면에서 수도관은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 왼쪽 담장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와 금호문을 통해 궐내로 들어온 후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 권역을 지나 후원방향인 연경당과 낙선재 방향으로 나뉜다. 낙선재 방향 수도관은 창경궁의 주요 전각을 거쳐서 창경궁 정문이 홍화문으로 빠져 나가도록 설계되었다. 또한 인정전과 선정전, 명정전, 대조전, 낙선재 등 주요 내각 주변으로 17곳에 소화전이 설치되어 있다.

창덕궁 및 창경궁 수도관 설치 계획에 따른 경로. (위로부터) 돈화문, 금호문, 인정전, 연경당, 낙선재, 홍화문.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유튜브 영상 갈무리]
창덕궁 및 창경궁 수도관 설치 계획에 따른 경로. (위로부터) 돈화문, 금호문, 인정전, 연경당, 낙선재, 홍화문.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유튜브 영상 갈무리]

국립고궁박물관은 수도관 설치가 1904년 4월 경운궁 화재를 비롯해 궁궐에 때대로 발생했던 화재와 관련이 있던 것으로 추정했다. 주요 전각 주변으로 소화전을 설치해 수도관과 연결해 위급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이전 궁궐에는 전각 앞에 ‘드므’라고 하여 화재시 불을 끄는 데 필요한 방화수를 담아두는 용기가 있었다. 급한 불을 끄는데도 사용하였지만 화마(火魔)가 물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 놀라 도망가게 한다는 상징적 의미가 컸다. 목조건물로 화재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궁궐 전각 주변에 근대시기 수도관과 소화전을 설치해 대비할 필요성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창경궁 통명전 앞 '드므' (불을 끄는데 필요한 방화수를 담는 용기). [사진 강나리 기자]
창경궁 통명전 앞 '드므' (불을 끄는데 필요한 방화수를 담는 용기). [사진 강나리 기자]

현재 창덕궁과 창경궁 수도 배관과 소화전 배치는 계획도와 크게 달라져 있다. 그러나 1908년 이후로도 형태나 위치가 달라지지 않은 소화전 위치는 계획도와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국립고궁박물관은 1층 대한제국 전시실에서 해당 설치 계획도와 함께 대한제국을 기록한 사진자료, 서양식 가구, 복식 등을 전시한다. 또한, 국립고궁박물관 누리집과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 유튜브를 통해 해설 영상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