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쇄원, "조선의 선비가 꿈꾼 이상세계를 담은 별서정원"
소쇄원, "조선의 선비가 꿈꾼 이상세계를 담은 별서정원"
  • 강나리 기자
  • heonjukk@naver.com
  • 승인 2022-01-07 17: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연과 인간의 사유가 만나는 담양 10정자를 가다] (10)소쇄원瀟灑園(1)

490년 전, 소쇄옹 양산보가 담양의 깊은 골짜기에 자신의 삶을 바쳐 자신이 꿈꾸었던 이상적인 세계와 조선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담아 조성한 소쇄원瀟灑園. 소쇄원은 우리나라 별서정원의 표본이자 정수로,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 명소이다.

아침 물안개가 피어올라 신비감을 주는 산들로 둘러싸인 소쇄원의 초입에서 만난 것은 10미터를 훌쩍 넘는 굵고 키 큰 왕대숲 오솔길이었다. 완만하게 구부러진 길을 걷다 보면 한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이 불며 대나무 잎이 바람결이 나풀나풀 꽃잎처럼 떨어져 속세와는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설렘을 안긴다.

소쇄원으로 들어가는 길은 왕대숲으로 난 오솔길이다. '소쇄원 48영' 중 제29영 '오솔길의 왕대숲'이라는 시가 있다. [사진=강나리 기자]
소쇄원으로 들어가는 길은 왕대숲으로 난 오솔길이다. '소쇄원 48영' 중 제29영 '오솔길의 왕대숲'이라는 시가 있다. [사진=강나리 기자]

숲길 끝에 왼쪽 소쇄원과 오른쪽 양산보 후손이 사는 마을을 구분 짓는 황토돌담, ‘애양단愛陽壇’이 눈에 들어온다. 초정과 제월당으로 이끄는 길잡이 역할을 하는 애양단은 소쇄원과 속세와의 경계이자, 소쇄원을 완만하게 감싸 안아 자연스럽게 바람이 흐르는 길이 됨으로써 거친 비바람과 태풍에도 소쇄원을 보호하고 있다. 양산보가 소쇄원을 조성할 때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이 바로 애양단이라고 한다.

소쇄원 영역 안으로 들어서면 또다시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 왼쪽으로는 냇가 위에 다리를 건너 ‘광풍각’과 ‘제월당’으로 향하는 길이고, 정면으로는 황토돌담을 따라 초정草亭을 지나 오곡문五曲門, 화계, 광풍각과 제월당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소쇄원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초정(왼쪽)과 소쇄원과 속세를 경계짓는 황토돌담 '애양단'. [사진=강나리 기자]
소쇄원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초정(왼쪽)과 소쇄원과 속세를 경계짓는 황토돌담 '애양단'. [사진=강나리 기자]

곧게 뻗은 길을 따라 걷다가 작은 원두막처럼 보여 지나칠 뻔한 초정은 이곳에 별서정원을 조성할 때 가장 먼저 지은 정자이다. 가장 위쪽 제월당과 그 아래 광풍각을 비롯해 정자의 중심을 이루는 골짜기의 모든 전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초정에는 ‘대봉대待鳳臺’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봉황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유교적 이상세계를 펼쳐 태평성대를 가져올 어질고 뛰어난 성군을 기다린다는 의미이다.

초정에서 사방을 둘러보다 문득 정자 아래를 보니 작은 연못에 물고기가 노닐고 있었다. 골짜기에 굵은 나무에 홈을 파낸 나무홈대를 이용해 물을 끌어와 정자 아래 작은 연못이 된 것이다. 그리고 작은 연못에서 흐르던 물은 다시 큰 연못으로 흘러갔다가 계곡물로 합쳐져 흐르게 되어 있어 사시사철 맑은 물이 순환하는 구조였다. 자연의 흐름에 인간의 지혜를 잠시 더하고 다시 자연의 흐름에 맡기는 구조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잠시 이 정자와 연못을 조성한 주인의 생각을 읽은 듯하다.

(위)초정에 걸린 '대봉대' 현판은 어진 성군을 기다리는 마음을 뜻한다. (중간) 나무홈대를 이용해 계곡물을 받아 만든 작은 연못. (아래) 작은 연못에서 흘러나온 물은 소쇄원 초입 큰 연못으로 흘러갔다가 다시 계곡물에 합류한다. [사진=강나리 기자]
(위)초정에 걸린 '대봉대' 현판은 어진 성군을 기다리는 마음을 뜻한다. (중간) 나무홈대를 이용해 계곡물을 받아 만든 작은 연못. (아래) 작은 연못에서 흘러나온 물은 소쇄원 초입 큰 연못으로 흘러갔다가 다시 계곡물에 합류한다. [사진=강나리 기자]

초정을 내려와 길을 나서면 완만하고 둥글게 꺾인 담에 우암 송시열이 쓴 ‘오곡문’이라는 글귀가 눈에 띈다. 냇물 위를 가로지른 담은 잠시 끊어졌다가 제월당을 돌아 광풍각으로 이어지는데 바로 잠시 끊겨 열린 공간이 오곡문인 것이다. 냇물 위에 소원탑을 쌓듯 자연석으로 위태롭게 쌓아 올린 돌들이 담을 바치고 있어 냇물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다. 그 담 밖에는 독특하게도 냇가에 우물이 있다. 바로 옆에 맑은 물이 흐르는데 따로 우물을 둔 것은 어떤 의미인지 남아있는 자료가 없어 알 수 없다. 아마도 양산보를 찾은 손님들을 위한 찻물이나 의례를 위한 정한수를 떠오기 위한 용도가 아니었을까?

우암 송시열이 쓴 '오곡문'과 담장 밖 우물. [사진=강나리 기자]
우암 송시열이 쓴 '오곡문'과 담장 밖 우물. [사진=강나리 기자]

제월당과 광풍각 쪽으로 가려면 세속의 번잡스러움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단교斷橋’라 불리는 외나무다리를 건너야 한다. 그 밑으로 냇물은 경사가 급한 커다란 암반을 따라 쏟아져 흘러간다. 다리를 건너면 자연석으로 4단의 축대를 쌓아 맨 아랫단은 광풍각으로 이어지고, 그 윗단은 원로圓路로 제월당으로 이어진다. 그 위에는 2단의 ‘화계(花階, 꽃 계단)’가 펼쳐진다. 맨 윗단인 담 밑에는 오랜 세월에 말라죽은 큰 측백나무와 늙은 산수유나무, 느티나무를, 아랫단에는 난초, 매화 등 계절마다 다른 꽃들을 볼 수 있다.

작은 공간을 층으로 나누어 꽃과 나무를 심어 입체적인 공간으로 만든 선조의 지혜에 감탄했다. 창덕궁의 후원에서는 반듯반듯하게 섬돌을 쌓은 화계를 볼 수 있는데 소쇄원의 화계는 물 흐르듯 굴곡을 이루어 더욱 자연스럽다. 그리고 화계 위 담장에는 ‘소쇄처사양공지려瀟灑處士梁公之廬’라고 하여 이 공간의 주인을 나타낸 송시열의 글귀가 있다.

오곡문에서 제월당과 광풍각으로 향하는 길에 조성된 화계(꽃 계단). 계절마다 다른 꽃들이 핀다. [사진=강나리 기자]
오곡문에서 제월당과 광풍각으로 향하는 길에 조성된 화계(꽃 계단). 계절마다 다른 꽃들이 핀다. [사진=강나리 기자]

화계 계단을 따라가면 지붕 처마의 끝선이 자연스럽게 휘어져 우리 한옥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소쇄원 주인의 공간, 제월당霽月堂에 도착한다. 제월당은 대청의 창살문이 분합문(分閤門, 들어열림문)이어서 처마 밑 걸쇠에 방문 끝을 걸면 정면과 오른쪽 공간이 열리는 2경景 정자이다.

대청에 올라서면 ‘제월당’현판과 함께 소쇄원 곳곳에 배치된 48가지 아름다운 정경을 노래한 48영詠을 비롯해 당대와 후대의 시인 묵객들이 소쇄원에 바친 싯구가 걸려있다. 48영은 양산보가 둘째 아들 자징을 장가보내 사돈을 맺은 하서 김인후가 1548년에 지은 오언절구이다. 1755년 판각된 ‘소쇄원도’에 48영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어 정유재란 때 불타 소실된 소쇄원을 원래대로 복원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48영을 통해 이곳에서 발견한 꽃 한송이, 나무 한 그루, 바위 하나도 우연히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며 특별한 의미라는 걸 깨닫게 된다.

지붕 처마의 선이 우아하게 뻗은 제월당. 제월당은 소쇄원의 주인이 머물며 독서와 사색을 하던 공간이다. [사진=강나리 기자]
지붕 처마의 선이 우아하게 뻗은 제월당. 제월당은 소쇄원의 주인이 머물며 독서와 사색을 하던 공간이다. [사진=강나리 기자]

다시 발길을 돌려 ‘머리 조심’이란 한글 경고문이 붙은 작고 낮은 문을 지나 돌담을 따라 내려가면 광풍각光風閣으로 갈 수 있다. 키가 작아도 고개를 숙이고 지날 수밖에 없는 작은 문은 한옥의 특징으로 겸손하라는 의미이다.

소쇄원의 제월당이 주인이 조용히 독서와 사색을 하며 지내던 공간이라면 광풍각은 손님을 맞아 유희를 즐기던 공간이다. 들어열림문으로 정면과 좌우를 열 수 있는 3경景 정자인 광풍각에서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차와 술을 즐기고 시를 짓다 마음이 내키면 편평한 바위에서 바둑을 두고, 더운 여름에는 계곡물에 발을 담가 탁족을 즐겼다고 한다.

소쇄원의 광풍각. 광풍각은 손님을 맞아 풍류를 즐기던 공간이다. [사진=강나리 기자] 

정자를 한 바퀴 돌아보니 별서정원의 특징인 아궁이가 있어 정겹다. 별서정원은 주인과 손님이 머무는 온돌방을 데워 따뜻하나 집이나 별장과는 달리 살림공간을 두지 않았다. 선비가 글을 읽고 시를 지으며 벗을 초대해 토론하며 즐기는 공간으로, 인근에 살림집을 따로 두어 술과 음식을 가져왔다.

그런데 계곡 위 축대를 쌓아 자리잡은 광풍각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아궁이에 불을 뗀 후 연기가 나가는 굴뚝이 보이지 않는다. 광풍각 아래 축대에 난 구멍을 통해 연기가 빠져나가도록 설계되어 저녁나절 뭉게뭉게 하얀 연기를 뿜는 모습은 소쇄원에서 만날 수 있은 아름다움의 하나이다. 또한, 한여름 올라오는 하얀 연기는 모기나 날벌레를 쫓는 역할까지 한다.

광풍각의 아궁이. 별서정원에는 온돌방을 데우는 아궁이가 있지만 부엌 등 살림 시설이 있지 않다.  [사진=강나리 기자]
광풍각의 아궁이. 별서정원에는 온돌방을 데우는 아궁이가 있지만 부엌 등 살림 시설이 있지 않다. [사진=강나리 기자]
광풍각의 아궁이에서 불을 떼면 축대 아래로 연기가 빠져나온다. 옛 광풍각 사진. [자료제공=박진양 씨]
광풍각의 아궁이에서 불을 떼면 축대 아래로 연기가 빠져나온다. 옛 광풍각 사진. [자료제공=박진양 씨]

광풍각 대청마루에 앉아 눈을 감고 쏟아지는 계곡물 소리와 바람결을 느끼다 보니 의문이 일었다. 이곳 정자의 주인 양산보의 호인 소쇄옹의 ‘소쇄瀟灑’는 “상쾌하고 맑고 깨끗하다”라는 뜻으로, 공덕장의 ≪북산이문北山移文≫의 글귀이다. 두 정자의 이름은 북송의 시인 황정견이 북송의 철학자 주돈이의 인물됨을 칭송하며, “가슴에 품은 뜻의 맑고 밝음이 비 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光風, 광풍)과도 같고, 비 갠 하늘의 상쾌한 달빛(霽月, 제월)과 같다”라고 한 광풍제월(光風霽月)에서 연유했다.

그렇다면 양산보는 왜 이렇게 깨끗하고 맑은 선비의 정신을 이 공간에 구현하고자 했을까?

(2편 "“자연의 품에 안긴 인간의 사유가 만들어낸 명품, 소쇄원”에서 계속)

4
0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