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er Garage_Kronborg 여름날의 차고, 크론보그, Oil on canvas, 229 x 177.7 cm, 2020. [사진=아라리오갤러리 서울]
Summer Garage_Kronborg 여름날의 차고, 크론보그, Oil on canvas, 229 x 177.7 cm, 2020. [사진=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이 갤러리의 임시 전시공간인 ‘언더그라운드 인 스페이스’(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지하 1층)에서 이지현 작가 신작을 소개하는 개인전 “레드씬 Red Scene”을 3월 17일부터 5월 29일까지 개최한다.

이지현 작가에게 ‘레드씬’이라는 개념은 기억하거나 망각된 과거를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인 방식으로 현실에 소환할 수 있는 장치이자 상징적 표상으로 기능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이 ‘레드씬’ 개념을 직ㆍ간접적으로 시각화한 회화 작업과 인형 오브제, 그리고 덧붙여 작은 사이즈의 회화 연작인 “판타즈마(Fantasma)”를 선보였다.

작가의 내면 가장 깊숙이 자리한 기억은 유년 시절 가족이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낸 어머니의 부엌이었다고 한다. 본래 혼재된 기억을 기반으로 하는 작가의 작업은 유난히 붉은색이 부각되었던 어머니의 부엌이라는 특정 기제를 거치며 ‘레드씬(Red Scene)’이라 명명되는 이지현 작가만의 특정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지난 10여 년간의 이민 생활 동안 어머니의 부엌에 대한 기억은 작가를 지탱하는 중요한 심적 버팀목이 되었고, 그런 까닭에 10년 만에 선보인 이번 전시 “레드씬”의 출발점으로서 작용하게 된다.

Red Scene Glyptotek 레드씬 글립토텍, Oil on canvas, 243.8 x 182.4 cm, 2020. [사진=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제공]
Red Scene Glyptotek 레드씬 글립토텍, Oil on canvas, 243.8 x 182.4 cm, 2020. [사진=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제공]

 회화 작업에서 전시 중간에 하나씩 등장하는 직접적 ‘레드씬’의 표상인 붉은 색 공간들은 감상자와 회화 속 공간을 분리하는 경계로 기능하며 실재와 허상, 가상과 현실, 현재와 과거의 혼재를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레드씬’을 표상화한 회화 작업 사이에는 다소 작은 사이즈의 회화들이 의도적으로 배치된다. 대형 회화 작업을 만드는 중간중간 환상처럼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여러 가지 생각을 이미지화한 “판타즈마” 연작을 함께 배치함으로써 기억과 사유의 연결고리들을 끊임없이 잡아채고 무작위적으로 연결하는 작가만의 독특한 작업 방식과 사유의 흐름을 고스란히 보여주려 했다.

각 회화 작업이 ‘레드씬’을 매개로 한 기억 공간으로의 초대라면,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선보이는 인형 오브제는 기억을 일상화하고 몸을 통해 체화한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 오랜 기억 속 어머니의 수제 인형을 끊임없이 되짚어 보다가 어느새 작가도 엄마가 된 지점에서 그 기억을 오브제화하고 자신의 일상 속에 하나씩 더하게 되었다. 솜을 넣고 바느질을 해 봉제 인형을 만들고, 그 위에 수채화로 형상을 더하는 작업이 반복되어 일련의 입체 작업들로 귀결된 것이다.

Red Scene Parts 레드씬 기관들, Oil on canvas, 91.2 x 242.8 cm, 2020. [사진=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제공]
Red Scene Parts 레드씬 기관들, Oil on canvas, 91.2 x 242.8 cm, 2020. [사진=아라리오갤러리 서울 제공]

지난 수년간의 작가의 기억과 일상이 뒤섞인 인형 오브제 작업은 전시장에서는 도자기에 그린 드로잉, 수틀에 그린 수채화, 그 외 개인 수집품 등과 함께 기억의 진열장의 형식으로 제시된다. 이는 지극히 일상적인 대상이 모인 집합체로서 비단 작가의 사적 기억뿐 아니라 관람객의 사적 기억 혹은 집단 기억을 반추하게 만드는 도화선으로 확장된다.

이지현 작가는 성신여자대학교 서양화과 및 동 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미국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에서 수학한 뒤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