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신유사옥(辛酉邪獄)이라 하면 조선시대 순조 원년 1801년에 일어난 천주교 박해사건을 일컫는다. 이렇게 천주교에 대한 종교 탄압으로 신유사옥을 해석하는 대신 다른 시각으로 보면 어떤 의미가 새롭게 전개될까?

출판사 박영사가 펴낸 《하늘의 신발》(설지인 지음)은 신유사옥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며 사학의 괴수로 몰려 문중의 손에 죽거나 대역죄인으로 참수된 인물 7명을 우리 앞에 소환한다. 그리고는 조선 후기, 인간 실존의 밑바닥에서 시작된 개혁의 문화사를 담아낸다.

설지인 지음 "하늘의 신발" 표지. [사진=김경아 기자]
설지인 지음 "하늘의 신발" 표지. [사진=김경아 기자]

 

저자 설지인은 신유사옥을 “조선이 서양 지식과 문화와 과학기술을 주체적인 힘으로 수용·융합하고, 서방 세계와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만나며, 사회가 안으로 진보할 수 있는 작은 가능성이 한반도의 시간 안에서 무참히 짓밟힌 사건”으로 본다.

《하늘의 신발》은 일곱 명의 인물을 통해 보는 조선 후기 동서양 문화 융합과 조선 안에서 시작된 개혁의 역사와 새로운 질서와 새로운 인간학 안에서 미래를 본 이들이 자신들의 삶과 죽음으로 만들어낸 변혁의 기록을 소개한다. 달리 말하면 18세기 조선 문명전환의 미시사이다.

“책에서 소개하는 인물들은 마치 우리가 나아갔어야 할 방향성을 안으로부터 밝히고 있는 매우 가느다란 섬광처럼 보인다. 그래서 들여다보면 볼수록 이들의 꺾이지 않는 희망과 처참한 노력이 특별하다.”

조선은 중국 이외 그 어떤 나라와도 관계하지 않은 채 세계로부터 완전히 고립돼 있던 오지였다. 그 어느 외부인도 국경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고, 그 어느 조선인도 밖으로 나가거나 교류할 수 없었다. 이를 어길 시 사형에 처했다. 굳게 문을 걸어 잠그고 있던 조선은 서양인들에게는 없는 나라였다. 그런데 18세기 후반 서양인들과 직접 접촉하는 조선인들이 나타났다. 이들이 새롭고 이질적인 세계와 만나면서 철창처럼 무겁게 닫혀 있던 조선 사회 안에 혁신과 변화가 일어났다.

이 가운데 《하늘의 신발》은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외부에서 들어온 사상을 통해 새 시대를 바라고 구현했던 7인의 삶을 조명한다. 왜 이들인가? “그들의 격렬한 노동 안에서 우리의 미래와 우리가 희망할 수 있는 것들이 진하게 담겨 있어 보여 선택했다.

광암 이벽(曠菴 李檗, 1754~1785), 만천 이승훈(蔓川 李承薰, 1756~1801), 강완숙(姜完淑, 1761~1801), 비원 황사영(斐園 黃嗣永, 1775~1801), 이순이(李順伊, 1782~1802)·유중철(柳重哲, 1779~1801) 부부, 김재복(金再福, 1821~1846).

이들은 모두 사학(邪學)의 괴수로 몰려 문중의 손에 죽거나 대역죄인으로 참수된 인물들이다. 조정에서는 이들을 이렇게 보았다.

그러나 《하늘의 신발》에서 이들은 혁신가들이었다. 이들은 서양에서 온 이질적 세계관을 마치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안에 있던 사상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리고 뛰어난 지행일치(知行一致)로 구현해 내며 조선이 새로운 문명권 안으로 진입하도록 우리 안으로부터의 혁신과 발전을 추동했다. 새 질서 안에서 국가와 사회의 변혁을 꿈꾸던, 조선 역사상 그 이전에 없던 새로운 인간들이었다.

경직된 사고로 빛을 잃어가는 시대, 구조적 모순이 겹겹이 쌓여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나라 안에서 이 인물들은 사해(四海)와 구주(九州)의 안목을 지니고, 천하의 책을 읽어 변혁을 위한 상상력을 키웠고, 조선을 새로이 해 조선 사람들의 삶도 온전히 하고 싶어 했다.

이렇게 이들이 ‘사학의 괴수’에서 전혀 다른 혁신가들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설지인 저자의 경험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국제 개발금융 및 정책 전문가로서 서방이 중심이 돼 만들어 놓은 불완전한 국제 정책·금융·기술 시스템과 이와 판이한 가치 체계와 역사를 지닌 개도국들 사이에서 일해왔다. 이러한 저자에게 18세기 조선 외부 지식과 가치 체계를 흡수해 우리 안으로부터의 변화를 자극하고 이끈 이 인물들의 힘과 주체성의 깊이는 각별했다. 이는 21세기 오늘날 그 많은 개도국의 사례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래서 저자는 책을 통해 그들을 살려내 동양 문화의 전통과 서양의 가치관이 합류해 용솟음치는 지점에 놓여 있는 오늘의 우리에게 이들의 꺾이지 않는 희망과 열망을 보여주고자 했다.

《하늘의 신발》은 이벽과 이승훈을 ‘새로운 질서의 문을 열다’로, 강완숙과 황서영을 ‘사회와 국가를 변혁하다’로, 이순이·유중철 부부와 김재복을 ‘새로운 인간이 탄생하다’로 소개한다.

저자는 온갖 자료를 동원하여 이 인물들의 삶을 복원한다. 그래서 소설이나 전기처럼 그 속에 끌려 들어가 읽게 한다. 또한, 각 인물에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대비하여 각 인물의 삶을 특징적으로 잡아낸 점이 돋보인다.

저자는 왜 고흐를 조선 시대로 이끌었는가?

“글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이 조선 혁신가들을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화가의 눈과 그림 속 상징들의 힘을 빌려 그림보다 더 깊은 세계를 비추어보기로 했다. 또한 조선사 안에 숨어 있는 이 인물들이 일상에서 내린 선택과 투신의 보편성을 동양 밖으로 끌어내고 싶기도 하다. 그래서 서양 화가의 붓터치를 가미해 보기로 한다.”

조선 후기, 가슴에 광양세계를 품다 처형되거나 옥사한 이들 중 이름이 남아 있는 이들은 천 명이 조금 더 된다. 무명의 사람들을 포함하면 많게는 8천 여명까지 보기도 한다.

저자는 “이들에게 하늘(天)은 인간 안에 거하는 실체이자, 인간 자신의 생명과 영혼이 일치하여 확장된 실체였다.”라고 설명한다.

“이사람들이 그 하늘의 신발이 되어 만들어낸 조선은 한국 역사를 이해하고, 한국 역사의 변화와 진보를 이해하고, 한국인이 누구인지를 이해하는 데 주목할 부분 중 하나이다. 그리고 한국의 미래를 구상하는 데에도 중요한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