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 조선-청 관계, 근대 제국주의 형태였다
19세기 후반 조선-청 관계, 근대 제국주의 형태였다
  • 정유철 기자
  • npns@naver.com
  • 승인 2021-12-07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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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커크 W. 라슨 지음 “전통, 조약, 장사: 청 제국주의와 조선, 1850-1910”(양휘웅 옮김, 모노그래프)

19세기 후반 조선-청의 관계는 더는 조공체제가 아니라 근대 제국주의 형태였다고 기존의 통설을 뒤집는 새로운 시각에서 본 책이 번역되어 나왔다.

《전통, 조약, 장사: 청 제국주의와 조선, 1850-1910》(양휘웅 옮김, 모노그래프, 2021)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미국 브리검영대학교 역사학과 커크 W. 라슨(Kirk W. Larsen) 교수의 저서 Tradition, Treaties, and Trade Qing Imperialism and Chosŏn Korea, 1850–1910 (Harvard East Asian Center, 2008년 출판)을 한국학중앙연구원의 2018년 해외한국학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최근 국문 번역판으로 발간한 것이다.

커크  W. 라슨 지음. "전통, 조약, 장사: 청 제국주의와 조선, 1850-1910" 표지. [사진=정유철 기자]
커크 W. 라슨 지음. "전통, 조약, 장사: 청 제국주의와 조선, 1850-1910" 표지. [사진=정유철 기자]

19세기 후반의 한중 관계, 즉 조선과 청의 관계는 보통 전통적인 조공체제가 적절히 운영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저자 커크 W. 라슨은 이 같은 기존의 통설을 뒤집는다. 즉, 19세기 후반 조선에 대한 청의 전략과 성패가 근대 제국주의 국가의 형태를 모방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1882년 중국의 윤선초상국(輪船招商局)에서 제조한 증기선 흥신호의 인천 입항과 이 배에 타고 있던 마건상(馬建常), 당정추(唐廷樞), 진수당(陳樹棠)과 파울 게오르크 뮐렌도르프(Paul Georg Möllendorf)가 조선 땅을 밟은 사실은, 청 제국이 조선에서 자국이 취할 이익을 예측하고 증진하기 위해 활용한 제국주의 전략과 전술이 계속 변화하는 과정을 반영한 것이다.”

커크 W. 라슨은 청이 보수적으로 조공 체제나 존 킹 페어뱅크(John King Fairbank)가 주창한 ‘중화적 세계 질서’의 가치를 지키려고 했다는 일반적 견해를 강하게 거부한다. 그는 청 제국이 다양한 방식으로 제국의 안팎에 있는 무수한 집단, 국가, 민족을 상대했고, 그들 중 다수가 중국 중심의 조공 체제라는 틀 안에 쉽게 적응하지 않았므로 단일한 중화적 세계 질서라는 개념은 허구라고 비판한다.

“세계 다른 지역의 제국들과 마찬가지로, 청은 거대한 다민족 제국을 운영하기 위해 여러 가지 복잡한 이념과 관행을 활용했다. 관료들은 제국의 경계를 표시하기 위해 근대적인 지도제작법을 활용했고, 청 제국의 국경 안팎에 예속되어 있는 다양한 민족을 관찰하고 분류했으며, 어렵게 확보한 영토에 대한 청의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집단 이주와 식민지 건설을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커크 W. 라슨은 청 제국의 제국주의자들이 조선과 관계를 맺게 된 동기, 전략, 성공(과 실패)을 지역사와 세계의 주류에서 벗어난다거나 예외적인 현상을 보는 것을 거부한다. 왜냐 하면 조선에서 청 제국이 취한 조치들은 다른 제국주의자들이 조선에서 취했던 조치들과 여러모로 흡사했기 때문이다. 몇몇 측면에서 청 제국은 제국주의자가 되려는 사람들이 따라올 수 있도록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고, 조선을 아시아 지역과 세계의 정치, 경제 체제에 편입시키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커크  W. 라슨 지음. "전통, 조약, 장사: 청 제국주의와 조선, 1850-1910" 표지. [사진=정유철 기자]
커크 W. 라슨 지음. "전통, 조약, 장사: 청 제국주의와 조선, 1850-1910" 표지. [사진=정유철 기자]

그러면서 라슨 교수는 19세기 후기 조선과 청 제국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비공식 제국(informal empire)’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비공식 제국’이란 제국주의 세력이 군사적 위협을 바탕으로 영토의 직접적인 지배 없이 ‘불평등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통해 주로 경제적으로 한 나라를 지배하는 형태를 말한다. 청의 관료들은 유럽이 만든 ‘비공식 제국’과 불평등 조약의 틀을 활용해 조선에서 청의 권력을 확대하고 한반도에서 중국인의 상업적 이익을 증진하려고 노력했다.

“부분적으로는 지정학적인 관심과 안보 문제에 영향을 받고, 또 일부는 잠재적인 상업적 이익에 자극을 받은 청 제국은 공격적으로 조선의 내정을 간섭하는 방침에 착수했다. 그러나 청의 정책 입안자들은 조선을 직접 합병하자는 요구를 확고하게 거부했다.”

청의 제국주의적 행태에 관해 이미 몇몇 학자들의 선행연구가 있었지만, 저자는 이들의 연구보다 훨씬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청의 제국주의적 행태를 설명한다는 점이 돋보인다.

저자는 “조선에서 원거리 통신에 대한 지배권의 추구, 해외무역에서 매출 추산과 규제 방식의 제도, 해외로부터 차관을 도입하려는 조선 국내의 시도에 대한 통제 또는 영향력을 발휘하려는 시도는 과거의 청 또는 중국의 관례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영국과 일본 등 이른바 근대 열강의 제국주의적 관계와 더욱 많은 유사점을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새로운 방식의 청 제국주의가 전적으로 서구식 제구주의가 아니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청 제국주의는 동아시아와 서구식 체제 및 관습을 섞은 혼합체에 해당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종종 ‘조약항 체제(treaty-pot system)’로 불려왔다. 이는 일본의 메이지 정부가 도입한 것으로 조선에서 일방적이고 배타적인 특권을 확실하게 추구했다. 이 일방적 제국주의에 도전한 것은 청 제국이 조선에 도입한 다자적 제국주의였다. 1882년에 벌어진 조선 내부 사건, 임오군란에 청이 극적으로 개입한 이후 조선을 일본뿐만 아니라 해외의 모든 제국주의 세력에 문호를 개방했다. 청은 조선에 관심을 보이거나 조선과 연관된 많은 열강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해 조약과 국제법을 이용한 그 순간에도, 전통적인 종주권에 근거하여 조선에 대한 배타적인 특권 같은 것을 유지하려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 책은 조선에서의 청 상인들의 활동을 구체적으로 조명한다. 저자는 1920년대 당시에 조선에서 동순태호(同順泰號)를 운영하며 개인으로서 가장 많은 세금을 낸 것으로 알려진 담걸생(譚傑生) 이야기, 중국 상인들이 조선 상품을 구매하러 조선 내지로 들어갔다가 도적 떼에게 습격당한 이야기, 중국 상인들이 이범진(李範晉) 형제로부터 토지를 구매했다고 벌어지는 소동 등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중국 상인들은 기존과 신규의 다양한 업종과 분야에서 지리적, 조직적 장점을 비롯한 여러 가지 이점을 누렸고, 이러한 사실은 그들의 상업적 명성이 성장하게 된 배경의 설명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조약이 보장하는 특권과 특혜의 배경인데 바로 이러한 특권과 특혜를 청이 조선에 도입하고 지원한 다자적이면서도 비공식적 제국 체제가 제공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중국 상인들이 조선에서 이룩한 상업적 성취는 청 제국이 해외에서 엄청난 상업적 이익의 증대를 이룬 첫 번째 성공사례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성공의 일부는 물론 청이 조선에 대한 종주권과 배타적인 특권을 공격적으로 행사한 덕분이었다. 그러나 1894~1895년에 벌어진 청일(淸日)전쟁으로 조선에 대한 청의 종주권이 소멸된 이후에도 중국 상인들은 조선의 대외 무역에서 중요하고 놀라울 정도로 경쟁적인 요소로 남아 있었다. 결국, 조약항 체제와 이 체제에 수반된 제도인 다자적, 비공식 제국주의는 중국의 상업적 성공을 설명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이 책은 미국인인 저자가 제삼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바라본 한중관계사이다. 앞으로 한중 관계를 전망하고자 한다면 과거 중국이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알아야 한다. 이 책은 그러한 노력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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