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고 보았다. 그가 말한 “판타 레이”(panta rhei)는 ‘만물유전’(萬物流轉)이라는 의미인데, ‘모든 것은 흐른다’라는 뜻이다.

서구에서는 오랫동안 이런 관점에서 세계를 보았다. 다 빈치 같은 예술가,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 같은 근대 자연 철학자 겸 수학자, 그리고 19세기의 위대한 과학자 켈빈 경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천재와 지성들이 소용돌이 흐름을 의미하는 보텍스(vortex, 와류 또는 와동)를 중심에 놓고 자신의 사상과 연구를 전개했다.

그러나 천체의 자전과 공전을 보텍스로 설명한 데카르트의 이론을 논파한 뉴턴의 만유인력 이론이 확산되고 화학의 발전과 함께 원자론이 부활하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이 정립된 이후 ‘유체’에 관한 연구는 에테르와 함께 과학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렇게 소멸된 것처럼 보였던 유체역학은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며 항공기와 로켓의 기초 이론으로 다시 각광받고 있다. 또한, 유체의 개념들은 에너지와 경제의 ‘유동성’으로 확장되어 현대 사회의 중요한 흐름을 이끌고 있다.

 

"판타레이" 표지. [사진=사이언스북스]
"판타레이" 표지. [사진=사이언스북스]

 

민태기 박사(에스엔에이치기술연구소 소장)의 《판타 레이: 혁명과 낭만의 유체 역학사》(사이언스북스)는 ‘보텍스’를 소환하여 유체 역학의 역사와 과학의 역사, 그리고 그 과학을 낳은 사회와 사람들의 역사를 추적한다. 저자는 유체역학을 연구한 로켓 분야 권위자로 지난해 10월 올해 10월 발사한 누리호 로켓 엔진의 핵심 부품인 터보 펌프를 개발했다.

《판타 레이: 혁명과 낭만의 유체 역학사》는 다 빈치의 소용돌이 스케치에서 시작해, 중국 로켓 기술의 아버진 첸쉐썬의 생애까지 600년 가까이의 유체 과학사를 살피며 과학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또 세상이 과학과 기술을 어떻게 진화시키는지, 치밀하게 검토하며 인간과 과학이 이루는 거대한 소용돌이를 헤치고 갈 지침을 전한다.

이 책은 계몽주의 시대 이후, 18∼19세기의 혁명의 시대, 낭만주의의 시대를 주로 다룬다. 부제가 “혁명과 낭만의 유체 역학사”인 이유이다. 1688년 영국의 명예혁명, 1775년의 미국 독립 혁명, 1792년의 프랑스 대혁명, 1800년대 초반의 나폴레옹 전쟁, 1871년 파리 코뮌, 1917년 러시아 혁명까지 혁명과 전쟁의 역사 속에서 유체 역학이 발달했다.

저자는 과학자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 사업가들도 다룬다. 과학자 곁에는 예술가들이 있었고, 사업가들은 과학자들의 연구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견했다. 이렇게 한 이유를 저자는 “과학은 사회와 격리된 어느 한 천재의 고독한 상상력으로 탄생한 것이 아니라 그가 살았던 시대의 사회 문화적 배경이 낳은 필연적 결과”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예술가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그가 살았던 시대와 삶에 대해 아는 것이 중요하듯, 과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과학자들이 살았던 시대와 그들의 삶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인간사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버린 오늘날 과학의 참모습을 찾기 위해서다”라는 점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