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는 1776년 3월 경희궁 숭정문에서 즉위하였다. 세손으로서 할아버지 영조를 이어 왕위를 계승했지만 생부 사도세자가 1762년(영조 38)에 뒤주에 갇혀 죽는 일을 당했기 때문에 왕권의 정통성에 대한 부담이 즉위 후에도 늘 따라 다녔으며, 신변위협에도 노출되어 있었다. 1777년(정조 1월) 7월 경희궁 존현각 자객 사건을 계기로 정조는 국왕 숙위체계에 대한 새로운 구상을 하게 되었다. 정조는 신변호보화 함께 군권장악을 위해 새로운 군영인 장용영(壯勇營)을 설치하였다. 장용영은 1785년(정조 9년) 창설되어 국왕의 호위를 전담하는 군영으로써 영향력을 끼치다 1802년(순조2년) 혁파되었다. 장용영이 해체된 이후 수원 화정에는 장용영 외영의 맥을 이어 총리영이라는 소규모의 군영을 두었다. 

"역주 장용영대절목" 표지.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역주 장용영대절목" 표지.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이 장용영은 어떻게 운영되었나? 이를 알 수 있는 책이 국내 최초로 번역됐다.

정조가 왕권 강화 및 신변보호를 위해 창설한 군영(軍營)‘장용영’의 연혁과 운영의 전반적인 시행규칙이 담긴 《역주 장용영대절목(壯勇營大節目)》이 그것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출신 5명이 1년 넘게 머리를 맞댄 결실이다.

《장용영대절목(壯勇營大節目)》은 1793년 조선 후기 정조가 기존 5군영 외에 별도로 왕권 강화를 위해 설치한 군영(軍營) ‘장용영’의 연혁과 운영의 시행규칙을 정리한 절목(節目)이다. 이 책은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장용영대절목(壯勇營大節目)》(K2-3369) 3권 3책으로 소장되어 있다.

《장용영대절목》의 간행경위는 언제 누구에 의해 정리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 없고 장용영에서 편찬되었다고 추축할 뿐이다. 책 구성은 서문에 대한 내용은 없고 목차와 본문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이번에 번역한 《역주 장용영대절목》권1은 정조가 왕권을 강화하고 수원 화성을 중심으로 새로운 친정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설립한 장용영의 실태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특히 장용영 군제의 운영과 시기별 사안들을 관직(官職)부터 곤치(棍治: 곤장을 쳐서 다스리는 시행규칙)까지 33개 항목으로 제시하여, 장용영의 전반적인 운영 실태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과 중앙 군영으로서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점은 상당히 의미 있는 부분이다. 이를 통해 장용영에 대한 정조의 각별한 관심과 애정 또한 엿볼 수 있다.

아울러 《역주 장용영대절목》권1을 통해 조선 후기 군영 절목(節目)에 대한 중요한 특징들을 확인할 수 있다. 장용영 군제의 운영과 시기별 사안들을 구체적인 시행규칙으로 제시하여 설명하고 있다. 특히 이 책에는 어디에도 드러나지 않은 장용영 운영에 관한 유일한 기록들이 많이 실려 있어 국가에서 장용영을 창설하고 운영하며 제정한 시행령과 시행규칙의 자료적 특징들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은 기존의 딱딱한 전문서의 이미지를 탈피해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제와 번역 그리고 각주들을 실어 대중서의 이미지를 반영하고자 노력했다. 또한 전문 연구자들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하여 원문 사진을 실어 번역과 원문을 비교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또한 정조와 장용영 그리고 수원학을 이어주는 가교의 역할을 할 것으로도 기대된다.

《역주 장용영대절목》권1은 2020년~2021년 수원시정연구원 수원학연구센터의 연구지원을 받아 번역 및 출간되었다. 해제 및 번역을 담당한 5인은 향후 권2, 권3의 번역서를 추가 발간하여 장용영대절목의 번역 완결편을 최종 마무리 지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