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창설 80주년을 맞은 조선의용대(朝鮮義勇隊) 화북지대는 일제 패망 때까지 중국 팔로군과 연대하여 무장선전활동을 전개하는 등 항일의지를 널리 알렸다. 조선의용대는 1938년 10월 10일 중국 호북성 한구(漢口)에서 창설한 중국 만리장성 이남의 한국인 최초 군사조직이다.

조선의용대는 무장투쟁을 위해 화북지역에 있는 태항산에 입산하면서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로 조직하였다. 이후 일본군 점령지역에서 무장투쟁 및 선전활동을 펼치는 무장선전대로 재편하였다.

그러던 중 조선의용대 화북지대 제2대원들이 1941년 12월 민중대회 개최를 위해 중국 하북성(河北省) 원씨현(元氏縣) 호가장 마을에서 숙영하던 중 일본군 등에게 포위당하였다.

국가보훈처는 독립기념관, 광복회와 공동으로 조선의용대 화북지대에서 활약하였던 독립운동가 손일봉(1912~1941), 최철호(1915~1941), 박철동(1915~1941), 이정순(1918~1941) 선생을 2021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포스터=독립기념관]
국가보훈처는 독립기념관, 광복회와 공동으로 조선의용대 화북지대에서 활약하였던 독립운동가 손일봉(1912~1941), 최철호(1915~1941), 박철동(1915~1941), 이정순(1918~1941) 선생을 2021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포스터=독립기념관]

 

 

이때 제2대 분대장 손일봉(孫一峯)과 대원 최철호(崔鐵鎬)·박철동(朴喆東)·이정순(李正淳)은 죽음을 각오하고 후위대(後衛隊)에 자원하여 다른 대원들이 추격에서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사격하며 끝까지 싸웠다. 후위대의 헌신으로 화북지대 대원들은 포위망을 돌파할 수 있었지만, 후위대로 남은 이들은 일본군의 집중 포화 끝에 결국 전사하였다.

이와 같은 손일봉·최철호·박철동·이정순의 숭고한 희생은 각계에서 추도되었다. 팔로군 총사령관 주덕(朱德)은 1942년 9월 중국 연안(延安)에서 거행된 추도회에서 화북지대 대원의 희생을 칭송하였고,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 제1지대에서도 1942년 12월 순국 1주년 기념대회를 거행하였다. 또 4열사의 헌신을 잊지 않던 조선의용군(朝鮮義勇軍) 대원들은 일제 패망 후 귀국 중 순국 4열사 묘역에 참배(參拜)하여 희생정신을 기렸다.

호가장전투에서 보여준 4열사의 용맹함은 중국 소학교 교과서에 실리는 등 중국인들에게 귀감이 되었으며, 한중연대를 통한 항일투쟁 강화로 이어졌다.

손일봉은 평안북도 의주 출생으로 3·1운동에 참여한 아버지를 보며 독립운동의 꿈을 키웠다. 의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1934년 일본군 사령관 폭살 계획에 참여했으나 실패했다. 이후 육군군관학교에 입교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조선의용대 화북지대 무장선전대 제2분대장이 되어 용감히 싸웠다.

최철호은 대전에서 출생했으며, 대전 제2공립고등학교(현재 대전 삼성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그 역시 육군군관학교에서 군사역량을 키웠고, 조선의용대 창설 일원으로 참가하여 활동했다.

박철동은 충청북도 출신으로 강직한 성품을 타고났고, 공립보통학교 시절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민족혁명당의 명령을 받고 임무를 수행하던 중 체포되어 3년간 징역을 살았고, 출옥 후 중국으로 건너가 조선의용대 1지대에 입대하여 활동했다.

이정순은 평안북도 벽동 출신으로 의열단 간부인 형(이영준, 1995년 독립장)의 영향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중일전쟁 이후에는 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의용대 창설 일원으로 참가하여 활동했다.

이처럼 불굴의 희생정신으로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된 손일봉·최철호·박철동·이정순의 공훈을 기리어 정부는 1993년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에 국가보훈처는 독립기념관, 광복회와 공동으로 조선의용대 화북지대에서 활약하였던 독립운동가 손일봉(1912~1941), 최철호(1915~1941), 박철동(1915~1941), 이정순(1918~1941) 선생을 2021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

독립기념관은 네 분의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7월 한 달 동안 독립기념관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제5·6관 통로)에서 개최한다. 조선의용대 성립 기념사진 등 8점을 전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