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권 때 제정된 정부기(政府旗)의 태극 문양이 근본적인 문제들을 지니고 있어 이제라도 현행 정부기를 계속 사용할 것인지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주장이 나왔다.

우실하 한국학공대학교 인문자연학부 교수(동양사회사상학회 회장)는 최근 발간된 《비교민속학》 73집에 게재된 ‘현행 정부기(政府旗)의 태극(太極) 디자인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라는 논문에서 이같은 주장을 제기했다.

우 교수는 논문에서 “정부기는 ‘국가상징’ 가운데 하나이고,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국기인 태극기 다음으로 ‘대한민국 정부’를 상징하는 깃발이다. 행정안전부, 외교부 등등 대한민국 정부에 속하는 국가행정기관들은 이 정부기 아래 각각의 기관명을 넣어서 모든 기관에서 사용하고 있다”라면서 “그러나 현재의 정부기는 음양태극도라 할 수 없고 삼일태극도라고 하기도 어렵다. 태극 관점에 대한 철학적 이해 없이, 디자인적인 감성에만 기댄 디자인으로 이제라도 정부 차원에서 재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우 교수는 유일하게 철학, 사상, 문화사적으로 삼일태극 문양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발표했다.

현행 정부기는 박근혜 정권 때인 2016년 3월 29일 ‘대통령공고 제264호’<정부기에 관한 공고>로 정식 사용되기 시작했다. 누가 보아도 청색, 빨간색, 흰색 3가지 색을 이용해서 그려진 전통적인 ‘음양태극 혹은 삼일태극 문양’을 이용한 디자인이다. 이 정부기가 사용된 지 이미 5년 가까이 되었지만, 현재까지도 별다른 이견 없이 사용되고 있다.

현행 정부기의 태극 디자인 확대. [이미지 제공=우실하]
현행 정부기의 태극 디자인 확대. [이미지 제공=우실하]

이 정부기를 검토하여 우 교수는 현행 정부기의 태극 디자인의 바탕이 ‘음양태극도’인지, ‘삼일태극도’인지 불분명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즉 (1)‘진한 파랑’, ‘선명한 빨강’ ‘흰색’ 3가지 색을 사용하여 언뜻 보기에는 삼일태극도를 바탕으로 한 것 같지만 면 분할이 3등분 되어 있지 않고, (2) ‘진한 파랑’과 ‘선명한 빨강’을 하나로 묶어서 ‘흰색’과 비교해보아도 음양태극도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면 분할이 비대칭적이다.(현행 정부기의 태극 디자인 확대 참조)

태극 개념은 《주역》에 최초로 보이는데, 우 교수의 견해에 따르면 도(道 )는 천극(天極) ㆍ지극(地極) ㆍ인극(人極)의 삼극(三極)이 뒤섞인 삼극지도(三極之道)이자 천도(天道)ㆍ 지도(地道) ㆍ인도(人道)의 삼도(三道)가 뒤섞인 삼재지도(三才之道)이므로 3.1도(三一道)라 할 수 있고 이 삼재지도 또는 삼극지도인 3.1도를 도상화한 것이 삼일태극도(三一太極圖)이다.

또한 삼도(三道) ㆍ삼극(三極)에 섞여 있는 천도(天道) ㆍ천극(天極)이 작용하는 원리인 유(柔)와 강(剛), 인도(人道) ㆍ인극(人極)이 작용하는 원리인 인(仁)과 의(義)가 서로 번갈아가며 움직여 가는 원리를 도상화한 것이 음양태극도(陰陽太極圖)이다.

둘째로 문제가 되는 것은 현행 정부기가 음양태극도를 바탕으로 하였든 삼일태극도를 바탕으로 하였든 균등한 면 분할이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우 교수는 “역사적으로 발견되는 모든 태극 관련 도상은 모두 음-양 또는 천-지-인 사이에 균일한 면 분할을 하고 있다. 이것은 음-양, 또는 천-지-인 가운데 어느 하나가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둘 또는 셋의 기(氣) 사이의 어울림과 조화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또한 현행 정부기 디자인이 ‘음양태극도’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면, 면적의 분할로 볼 때 ‘진한 파랑’, ‘흰색’만으로 표현되었어야 하며, ‘진한 파랑’과 ‘흰색’이 음양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분할된 면적이 당연히 같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또한 중간에 띠처럼 들어간 ‘선명한 빨강’은 태극도라는 철학적 의미와 연결된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게 우 교수의 지적이다.

아울러 ‘삼일태극도’를 바탕으로 현행 정부기 디자인을 한 것이라면 ‘진한 파랑’, ‘선명한 빨강’ ‘흰색’의 면 분할이 3등분으로 균등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또한 ‘진한 파랑’의 꽁무니에 띠처럼 들어간 ‘선명한 빨강’은 태극도의 중앙에서 보면 독자적으로 배당된 면적도 없이 ‘진한 파랑’ 부분에 곁들여 있어서 삼일태극도로 볼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우 교수는 결국 현행 정부기는 (1)음양태극도나 삼일태극도 그 어느 것에도 바탕을 두지 않았으며, (2)태극도처럼 보일 뿐 철학적 의미를 지닌 ‘태극도’가 아니며, 행정안전부가 설명하는 ‘국가상징’의 개념과는 다르게 (3)“어느 한 순간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고, (4) 또한 “그 나라의 역사·문화·사상이 스며들어 자연스럽게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져 만들어진 것”이라는 내용과 맞지 않으며, (5)“그 나라 국민이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며 누구나 공감하고 하나가 될 수 있는 최고의 영속적인 가치”를 가질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결론적으로 우 교수는 “현행 정부기에 관해 정부 차원에서 재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음양태극과 삼일태극에 대한 각 분야의 학문적 성과들이 반영되지 않고, 한 사람의 디자이너에 의해 아무런 철학적 의미나 바탕도 없이 창안된 ‘태극도도 아닌 동그라미의 다양한 변형 디자인’들이 또다시 ‘태극도를 바탕으로 한 디자인’인 것처럼 여러 곳에서 재등장할 수 있다.”며 “특히 국가나 정부를 대표하는 상징들을 디자인하는 것은 좀 더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