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동식 연세대 명예교수

우리나라 민족문화사 중에서 절정을 이룬 시기는 7~8세기경이다. 신라 지증왕(6세기 말) 때 교육제도를 제정하고 그 이름을 화랑이라 했다. 신라는 이 화랑교육제도로 민족문화의 중심을 우뚝 세우고 삼국을 통일하는 저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이 교육제도는 서로 간에 예의를 행하는 도의(道義), 노래와 춤으로 예술 활동을 즐기는 가락(歌樂), 명산대천을 주유하는 자연 속에서 수행(修行)을 윤리도덕으로 삼았다.

신라 말기에 가장 뛰어난 대학자 최치원은 역대 처음으로 ‘민족의 얼, 민족정신이 무엇인가’를 규정지어 밝혀놓은 사람이다. 그는 난랑비문(鸞郞碑文)에서 “우리나라에는 우리 민족이 갖고 있는 오묘한 도가 있는데 유불선 삼교를 다 포함하는 풍류도(風流道)가 선사(仙史)에 있다.”고 했다. ‘풍류’는 중국이나 일본, 우리 모두 사용하는 말이다. 그런데 최치원은 신라의 교육제도인 화랑도가 있었음에도 왜 풍류도를 우리 것이라 했는가?

그것은 화랑도가 우리의 가장 오랜 정신문화의 뿌리인 풍류와 연결되며 종교적으로 해석된 때문이다. 우리 역사의 가장 오랜 기록은 중국 삼국지의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으로 객관적인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당시는 부족시대로 만주에서 멀리 부산까지 한 뿌리의 정신사상을 가진 많은 한민족이 말은 다르지만, 항상 10월 상달이면 하늘에 제천을 했다. 그런 제사는 어느 부족이나 다 지내겠지만 그들의 눈에 타민족인 동이들의 며칠간 연일 음주가무를 즐기는 제천절차가 너무나 독특했기에 기록했던 것이다.

신라는 그런 오랜 전통을 교육과정으로 집어넣어 화랑도라 했던 것이다. 최치원이 풍류도가 우리 것이라고 한 것도 바로 천제가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고 연일 계속된 음주가무의 특성을 종교예술로 해석한 때문이다. 그렇게 종교적으로 쭉 이어져 온 것이 오늘날 무교(巫敎)요, 무속(巫俗)이다. 그러므로 우리 속에는 예술성의 DNA가 있다. 종교와 예술은 직결된다. 종교 없는 예술, 예술 없는 종교는 없다. 당시 알고 있는 종교는 유교와 불교, 선교 셋으로 각 종교의 핵심을 다 갖고 있는 풍류도는 인생, 예술, 자연이 혼연일체가 된 종교예술적인 ‘영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최치원은 이런 ‘풍류도’를 우리 것이라 했던 것이다.

이를 사자성어로 집약한다면 하나님의 마음인 근원으로 돌아가라는 유교의 극기복례(克己復禮)다. 이는 부처의 귀일심원(歸一心源)과 같고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과도 같은, 감성(感性)과 이성(理性)의 자아를 극복하고 하늘(天)을 자각함이다. 이런 하늘의 천령을 발현함은 불과 5천 년에 불과하고 자기를 버리고 하늘의 뜻을 따른다는 것도 2,500여 년으로, 말은 하기 쉬워도 직접 실행하기란 극히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풍류도의 접화군생(接化群生)은 뭇사람들에게 접해서 그들을 교화하여 실로 ‘사람다운 삶’을 이루게 하는 민족의 얼이요, 우리 고유의 사상체계로 누구나 다 신인합일을 이룰 수 있다. 삼교를 포함하는 풍류도의 신인합일은 신과 인간이 둘이면서 하나요, 하나이면서 둘인 불일부이(不一不二)의 관계로 음양 태극도와 같다.

기독교에서의 신인합일은 다른 측면이 있다. 기독교의 이치는 예수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로써 종교의 가치를 지닌다. 인간에게는 자기를 극복하고 무아에 이를 능력이 없자 하나님은 창조목적인 아름다움을 달성하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예수를 죽게 하고 다시 부활로 인류를 위한 신인합일의 역사를 완성한 것이다.

인간의 부정을 예수님이 대신 죽음으로 받으셨기에 인간은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받아들임으로써 자기를 극복하고 신인합일의 궁극적 아름다움에 이른다. 따라서 기독교의 복음은 반드시 예수를 통한 신인합일이다.

기독교를 단적으로 설명한 부분이 요한복음 14장에서 16장의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한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는 내 안에 있고 나는 너희 안에 있음을 알리라.”는 말이다. 이는 인간이 예수를 매개로 하나님과 하나 되는 삼태극 구조로 자유와 평화와 사랑의 기쁨 속에 아름다운 인생을 창조적으로 살아가는 실존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