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온곡초등학교 김진희 교사. [사진=본인제공]
서울온곡초등학교 김진희 교사. [사진=본인제공]

얼마 전 교사 독서 모임에서 「9번째 지능」이란 책으로 독서 토론을 한 적이 있다. 9번째 지능이란 인간 실존에 대한 통찰력과 관련된 지능으로 한 개인이 인생에 대해 깊고 다양한 질문을 하며 그 해답을 찾아가는 능력이다. ‘영성지능’이나 ‘실존지능’, 혹은 ‘영성실존지능’이라고도 불린다. 이 책을 읽으며 삶에 대한 의문으로 외롭고 힘들었던 사춘기 시절이 떠올랐다.

그 시절 나는 답을 알 수 없는, 삶에 대한 의문으로 늘 괴로웠다.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은 유한한데 나는 왜 태어났을까? 죽음이 삶의 끝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런 해결되지 않는 물음들이 수시로 떠오를 때면 아무리 여럿이 함께 있어도 외로웠고, 알 수 없는 미래가 두려웠고, 나의 존재에 대한 불안과 삶의 허무가 늘 가슴을 차갑게 만들곤 했다.

속에서 끊임없이 이런 의문들과 씨름하고 있었지만 이런 이야기를 누구와 나눌 수가 없었다. 이런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는 친구들은 없었고, 부모님께 이런 질문을 한다고 해도 대답을 해주실 것 같지 않아 속으로 삭였다.

학교에서는 성적 올리기와 치열한 경쟁으로 몰아가는 분위기 속에서 이런 삶의 고민을 이야기하기에는 학업에 대한 부담이 너무 컸다. 당장 시험을 잘 보고, 성적을 올리는 게 더 급했기에 공부를 위해 이런 치열한 의문들은 늘 꾹꾹 눌러놓아야만 했다. 어쩔 수 없이 혼자 이 책 저 책을 둘러보아도 속 시원한 답은 보이지 않았고, 결국 삶에 대한 물음은 답이 없나보다고 포기했다.

나중에 뇌교육을 만나고, 내 안의 이런 의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며, 무엇보다 안타까웠던 것은 왜 학교 교육에서 이런 기회를 만나지 못했나 하는 것이었다. 내가 삶의 의문으로 괴로웠던 시절, “쓸데없는 고민하지 말고 공부나 하라”는 말 대신 “너는 지금 삶에서 정말 꼭 필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거야”라고 격려해주거나 혹은 스스로 질문에 답을 찾아갈 수 있게 안내해주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나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묻는 것이 필요하다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뇌교육 활동으로 ‘꿈 선언문 만들기’가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고민하고 그 고민의 결과를 하나의 문장으로 만들어 여러 사람 앞에서 선언하는 활동이다. 꿈 선언문에는 ‘자신감 넘치는 경찰이 되기 위해 어려운 일에도 도전하는 000입니다.’ 처럼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을 먼저 고민하고 어떤 일로 그 일을 이룰 것인지, 무엇을 노력할 것인지를 담는다.

보통 꿈 선언문이라고 하면 내가 되고 싶은 직업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직업이란 내 꿈을 이루는 수단과 방법일 뿐이다. 진정으로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지를 질문하는 것이 먼저이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질문을 던져보면 아이들은 굉장히 어려워한다. ‘공부해라’ 소리는 많이 듣지만 왜 공부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더욱이 ‘커서 뭐가 될래?’라는 질문은 들어봤지만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기회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언문을 만들기까지 며칠이 걸린다. 이렇게 고민을 거듭해도 모르겠다는 아이들은 ‘나는 꿈을 찾고 있는 000입니다.’로 선언문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괜찮다. 왜냐하면 이렇게 시작한 물음이 자신의 내면에서 계속 삶의 이유를 찾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재능을 모두에게 의미 있는 가치와 행복을 위해 쓴다

하워드 가드너가 말한 9번째 지능이 발달한 사람은 인간 실존에 관한 통찰력이 생겨 자신의 삶을 의미 있는 삶으로 이끈다. 자신의 재능을 개인적 가치와 행복을 위해 쓰는 게 아니라 공동체 모두에게 의미 있는 가치와 행복을 위해 쓴다. 그리고 그런 헌신이나 희생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삶에 대한 깊은 만족감을 느끼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멀리서 찾지 않아도 우리 주변에서 영적지능을 발휘해서 자신과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코로나19로 대구 지역에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을 때 기꺼이 달려가던 전국의 의료진들, 또 마스크를 제작해 더 어려운 사람에게 나눠주던 사람들, 이들의 바로 평범한 누구에게나 있는 영성지능을 증명하는 게 아닐까?

지금까지 삶의 근원적 물음에 대해선 종교의 영역으로 가름해놓고 학교는 시험을 보기 위한 지식을 배우고, 평가하는 곳이었던 것 같다. 이젠 종교의 영역이었던 영성에 대해 교육이 영성지능으로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다중지능 이론으로 교육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하워드 가드너는 “배움의 목적이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완전한 세계에서 의문투성이의 삶을 살아가는 데 자신의 지능과 개성을 온전히 이해하고 발휘하기 위해서’이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아마도 그가 8가지 지능을 넘어, 영성지능의 존재를 조심스럽게 말하기 시작한 이유일 것이다.

이제 아이들이 ‘공부는 왜 해야 하나?’ 이렇게 스스로 물어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도록 해야 한다. 남들이 알아주는 대학에 가고, 남들이 알아주는 직업을 갖기 위해 치열하게 사는 법이 아니라 나의 뇌의 능력을 어떻게 쓸 지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이 하워드 가드너가 말한 9번째 지능, 영적 지능을 키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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