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국무총리는 8월 15일(목) 광복절 74주년을 맞아 수유리 애국선열 묘역(서울시 강북구)에 있는 광복군 합동묘역과 이시영 선생 묘소를 참배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8월 15일(목) 광복절 74주년을 맞아 수유리 애국선열 묘역(서울시 강북구)에 있는 광복군 합동묘역과 이시영 선생 묘소를 참배했다. [사진=국무조정실]
이낙연 국무총리는 8월 15일(목) 광복절 74주년을 맞아 수유리 애국선열 묘역(서울시 강북구)에 있는 광복군 합동묘역과 이시영 선생 묘소를 참배했다. [사진=국무조정실]

이 총리는 지난 1월 손병희 선생 묘소와 2월 백범 김구 선생 묘소, 3월 한용운·오세창 선생 묘소를 참배한 데 이어, 대한민국 국무총리로서는 처음으로 광복군 합동묘역과 이시영 선생 묘소를 참배했다. 이 자리에는 국가보훈처 이병구 차장, 서울 강북구 박겸수 청장, 이시영 선생 유족이 함께했다.

이 총리는 광복절을 맞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셨던 애국선열들에 감사를 표했다.

광복군 합동묘역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으로 중국 각 지역에서 일본군과 싸우다가 전사하거나 순국한 17위의 합동묘이다. 중국에서 무장독립투쟁 활동을 하던 광복군의 유골을 동료가 수습하여 귀국한 후, 후손이 있는 경우 국립묘지에 안장하였다. 후손이 없어 안장되지 못한 선열을 위해 1967년 (사)한국광복군동지회에서 합동묘를 조성했다.

광복군 김성률, 김순근, 김운백, 김유신, 김찬원, 동방석, 문학준, 백정현, 안일용, 이도순, 이한기, 이해순, 전일묵, 정상섭, 조대균, 현이평, 한휘 님이 안장되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74주년 광복절인 15일 강북 수유리, 광복군 합동묘역을 찾아 이시영 선생 묘역과 광복군 합동묘역에서 헌화하고 참배했다. [사진=국무조정실]
이낙연 국무총리가 74주년 광복절인 15일 강북 수유리, 광복군 합동묘역을 찾아 이시영 선생 묘역과 광복군 합동묘역에서 헌화하고 참배했다. [사진=국무조정실]

성재 이시영 선생은 서울 출생으로 1905년 신민회를 조직하고 구국운동을 벌였으며, 1910년 가족 50여명을 이끌고 중국 유하현(柳河縣) 추가가(鄒家街)로 망명했다.

1911년 경학사와 신흥강습소 설립을 주도하고 1912년 통화현 합이하에서 신흥강습소를 신흥무관학교로 발전시켰다. 신흥무관학교는 1920년 폐교될 때까지 3,500여 명의 독립군 간부를 배출했으며, 청산리독립전쟁의 주축을 이뤘다. 1913년 북경에서 중국의 원세개 총통을 통하여 동삼성의 한교문제를 원조하는데 기여했고, 1919년 4월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해 법무총장, 재무총장 등을 역임했다. 1929년 한국독립당 감찰위원장, 1933년 가흥에서 임시정부 국무위원 겸 법무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1934년 ‘감시만어’를 저술하여 한국사의 주체성을 고취했다. 1935년 한국국민당 감사, 1938년부터 임시정부 국무위원, 재무부장, 의정원의원 등을 역임하며 1945년 8월까지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인정하여 1949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한편, 정부는 그간 국가차원의 관리가 미흡했던 국립묘지 외 독립유공자의 묘소를 체계적으로 관리해나갈 계획이다. 이와 관련하여 독립유공자 묘소 실태조사 주기적 실시, 묘소 정보 시스템 개발, 합동묘역의 국가관리묘역 지정·관리, 묘소 미확인 독립유공자 유족 DNA 채취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