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전 오늘, 상해에서 독립의 의지를 알린 윤봉길 의사
87년 전 오늘, 상해에서 독립의 의지를 알린 윤봉길 의사
  • 김민석 기자
  • arisoo9909@naver.com
  • 승인 2019.04.29 18: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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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매헌기념관서 매헌 윤봉길의사 상해의거 87주년 기념식 개최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회장 황길수, 이하 기념사업회)는 29일, 윤봉길 의사의 상해의거 87주년을 맞아 서울 매헌기념관에서 기념식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오진영 서울지방보훈청장, 김구환 광복회 사무총장, 박경미 국회의원 등 내외빈과 유족을 비롯한 시민 300여 명이 참가했다.
 

매헌 윤봉길의사 상해의거 제87주년 기념식이 29일, 서울 매헌기념관에서 개최되었다. [사진=김민석 기자]
매헌 윤봉길의사 상해의거 제87주년 기념식이 29일, 서울 매헌기념관에서 개최되었다. [사진=김민석 기자]

한편, 이날 중국 상해 루쉰공원에서도 현지시간 오전 10시에 매헌기념관 광장에서 기념식이 개최되었다. 또한, 윤봉길 의사의 출신지인 충남 예산 충의사에서도 유족과 시민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다례가 열렸다.

서울 매헌기념관에서 열린 기념식은 윤봉길 의사의 전기를 간략하게 쓴 약전봉독, 기념식사, 기념사, 유시봉독, 매헌윤봉길의사 노래 공연, 만세삼창 순으로 진행되었다.

황길수 기념사업회장은 “고귀한 목숨을 받쳐 조국 광복의 초석이 되고 이국 땅에서 홀로 의연히 순국했던 의사의 영전에 삼가 명복을 빈다. 그의 의거는 고통으로 신음하던 세계의 수많은 피지배 약소국에 희망이 되었고, 정의와 자유, 그리고 평화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세계만방에 일깨운 역사적인 일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존폐에 위기에 빠졌던 임시정부를 살렸고, 독립운동 활성화로 이어져 오늘날 대한민국을 있게한 것이다. 겨레의 영원한 스승인 의사의 거룩하고 숭고한 정신을 받들고 배움으로써 우리는 어떠한 도전과 시련도 함께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추모사를 전했다.
 

황길수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장이 29일, 매헌기념관서 열린 매헌 윤봉길의사 상해의거 87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식사를 하고있다. [사진=김민석 기자]
황길수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장이 29일, 매헌기념관서 열린 매헌 윤봉길의사 상해의거 87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식사를 하고있다. [사진=김민석 기자]

오진영 서울지방보훈청장은 “일본군의 한 가운데로 뛰어들어 역사에 길이 남을 의거를 단행한 의사께 진심 어린 경의를 표한다. 일제에게 엄중한 경고를 전하고 우리 민족의 확고한 독립 의지에 감명받은 세계 각국의 지원을 이끌어 내어 침체 되었던 독립운동의 새로운 활로를 마련할 수 있었다.”며 “어렵게 되찾고 지킨 대한민국과 그 속에서 일궈낸 값진 성취를 지키고 발전시켜나가는 것은 우리 모두의 당연한 책무이다. 그 고귀한 정신을 계승해 대한민국의 청사진을 그려 나가자.”고 말했다.
 

29일, 서울 매헌기념관에서 열린 매헌 윤봉길의사 상해의거 87주년 기념식에서 오진영 서울지방보훈청장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김민석 기자]
29일, 서울 매헌기념관에서 열린 매헌 윤봉길의사 상해의거 87주년 기념식에서 오진영 서울지방보훈청장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김민석 기자]

박유철 광복회장은 김구환 광복회 사무총장이 대독한 기념사를 통해 “우리의 항일독립운동사에 크고 작은 의거들은 결코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다. 사전에 치밀한 준비와 노력, 특히 기다림의 결과였다. 윤봉길 의사도 의거 성공을 위해 수없이 의거 현장을 둘러보며 치밀하게 준비했다.”며 독립운동 선열들의 인내와 신념에 대해 언급했다. 또한, “우리가 소원하는 남북관계 개선이나 한반도의 평화는 결코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 서로 간의 이해 부족으로 진통도 따른다. 인내를 갖고 우리의 역할을 모색하다보면 분명 기회가 오고,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헌 윤봉길의사 상해의거 87주년 기념식이 열린 29일, 서울 매헌기념관에서 김구환 광복회 사무총장이 박유철 광복회장의 기념사를 대독하고 있다. [사진=김민석 기자]
매헌 윤봉길의사 상해의거 87주년 기념식이 열린 29일, 서울 매헌기념관에서 김구환 광복회 사무총장이 박유철 광복회장의 기념사를 대독하고 있다. [사진=김민석 기자]

이어 윤봉길 의사가 상해 의거 이틀 전, 자신의 두 아들에게 남긴 유시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를 박병우 윤봉길함 행정장이 봉독했다. 뒤이어 테너 김현욱 교수(한국가온예술종합학교)와 소프라노 윤선경 교수(숭실대학교)가 상록수, 향수, 매헌윤봉길의사의 노래 공연을 펼쳤으며, 역사어린이합창단의 공연과 만세삼창으로 기념식이 마무리되었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 박병우 윤봉길함 행정장의 유시 봉독, 소프라노 윤선경 교수와 테너 김현욱 교수의 '상록수'와 '향수' 그리고 '매헌윤봉길의사의 노래' 공연, 역사어린이합창단의 합창 공연, 만세삼창을 하는 참가자들. [사진=김민석 기자]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 박병우 윤봉길함 행정장의 유시 봉독, 소프라노 윤선경 교수와 테너 김현욱 교수의 '상록수'와 '향수' 그리고 '매헌윤봉길의사의 노래' 공연, 역사어린이합창단의 합창 공연, 만세삼창을 하는 참가자들. [사진=김민석 기자]

윤봉길 의사는 1908년 6월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일제의 식민교육을 배척해 학교를 자퇴하고, 사설 서당인 ‘오치서숙(烏致書塾)’에서 한학을 수학했다. 1928년에는 ‘부흥야학원(富興夜學院)’을 설립해 농민의 자녀를 교육하였고, 이듬해에는 ‘월진회(月進會)’를 조직해 농민계몽운동과 농촌부흥운동, 독서회 운동을 전개했다.

‘농민독본’을 편찬하여 농민의 단결과 농촌운동에 헌신하던 그는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쳐 큰일을 해야겠다는 신념으로 ‘장부가 집을 나가 살아 돌아오지 않겠다 (장부출가생불환, 丈夫出家生不還)’는 내용의 편지를 남기고 만주로 떠났다. 김구 선생이 이끌던 ‘한인애국단’에 가입하고 거사를 자청했던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일왕(日王)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을 맞아 일본군의 상해 점령 전승 경축식이 열리던 홍커우 공원에서 일본의 수뇌부를 폭사시켰다.

이 거사로 우리 독립운동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으며, 조선과 중국의 항일연대에 크게 기여하였다. 의거 직후 현장에서 일경에게 체포된 윤봉길 의사는 상해 일본 헌병대에서 가혹한 고문과 취조를 받았으며, 그해 5월 상해 파견 일본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았다.

이후 11월 18일 오사카 육군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2월 19일 오전 7시 40분 가나자와 미고우시 육군 공병 작업장에서 총탄을 맞고 순국하였다. 윤봉길 의사의 유해는 김구 선생의 요청에 의해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유해와 함께 봉환되어 1946년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 국민장으로 안장되었다. 정부에서는 의사의 공적을 기려 지난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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