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의 희망인 ‘어르신 문화’를 만들겠습니다”
“백세시대의 희망인 ‘어르신 문화’를 만들겠습니다”
  • 신미조 기자
  • mjshin05@naver.com
  • 승인 2019.03.04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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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인물] 김월선 (사) 대한노인회 경상북도 경로당 광역센터장

대한노인회 경상북도 경로당 광역센터장. 인생 2막을 열고 있는 김월선 씨(63)의 직함이다. 40년 동안 지방 공무원으로 살아온 그는 작년에 경상북도 어르신 52만 명을 위한 건강과 행복의 길을 앞장서 열어가는 중요한 책임을 맡았다. 센터장 면접에서 “경상북도 어르신들을 행복하게 할 자신이 있습니다. 저를 안 뽑으시면 후회하실 겁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했던 그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걸까? 경북에서 홍익의 ‘어르신 문화’를 만들어 전국으로 전파하겠다는 비전을 가진 김월선 센터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지방 공무원으로 40년을 근무한 김월선 대한노인회 경상북도 경로당광역센터장은 인생 2막으로  경상북도 어르신 52만 명을 위한 건강과 행복의 길을 앞장서 열어가는 중요한 책임을 맡았다. [사진=김경아 기자]
지방 공무원으로 40년을 근무한 김월선 대한노인회 경상북도 경로당광역센터장은 인생 2막으로 경상북도 어르신 52만 명을 위한 건강과 행복의 길을 앞장서 열어가는 중요한 책임을 맡았다. [사진=김경아 기자]

김월선 씨의 얼굴은 밝고 빛이 나고, 목소리는 당당하고 힘이 있다. 그는 경상북도 의성에서 나고 자랐다. 부모님은 벼농사를 해서 1남 4녀를 키우셨다. 둘째 딸로 관심을 크게 받지 못해서인지 항상 인정받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부모님께 칭찬받으려는 욕심에 공부를 열심히 했다. 교사가 꿈이어서 교육대에 진학하려고 했는데, 우연히 공무원 시험을 치러가는 친구들 틈에 끼여 갔다가 친구들은 낙방했고, 그는 합격했다. 딸의 합격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대학교에 가는 것도 좋지만 동생들도 많고, 공무원도 대단한 일이니까 그냥 하는 게 어떠냐”라고 말씀하셨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갓 스물의 나이에 양 갈래머리를 땋은 처녀는 면사무소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지금으로 치면 9급 공무원인 셈이다. 당시 의성군 공무원 중에 여성은 드물었다고 한다. 그가 전화를 받으면 소사라고 생각하고 직원을 바꾸라고 하고, 직원이라고 하면 다시 남자 직원 바꾸라고 했단다. 반말은 예사였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초등학교 때 잠깐 배운 한자가 전부여서 업무에 필요한 한자 공부를 옥편이 닳도록 열심히 했다.

그러다 공무원인 남편을 첫사랑으로 만났다. 남편은 교사시험에 합격해 놓고 적성에 안 맞는 것 같아 군대를 다녀와 다시 공무원 시험을 치렀다고 한다. 남편은 공무원이 된 게 아내를 만날 인연 때문이라고 말한단다. 3년 연애 끝에 결혼해서 두 아들을 낳았다.

부부는 함께 고향인 의성군에서 공무원 생활을 했고 차례로 정년 퇴임을 했다. 그가 처음 근무할 때 의성군 인구는 20만이었는데, 지금은 5만 4천 명이라고 한다. ‘마늘, 사과, 컬링 팀킴’으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의성이지만, 전국에서 가장 빠르게 인구가 줄어들고 고령화 지역이 되었다며 그는 안타까워했다. 의성에 대한 사랑과 애착은 남달랐다.

김월선 대한노인회 경상북도 경로당 광역센터장이 경상북도 내 경로당에서 어르신들에게  건강과 행복한 경로당 만들기에 관해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김월선]
김월선 대한노인회 경상북도 경로당 광역센터장이 경상북도 내 경로당에서 어르신들에게 건강과 행복한 경로당 만들기에 관해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김월선]

그는 공무원 일이나 바깥 활동을 좋아했다. 아이를 키우는 일과 집안일은 친정어머니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 전교 회장을 했던 그는 리더십이 있어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었다. 하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승진을 하지 못했다. 당시 결혼하면 그만두는 것이 관례였고, 남편도 아내가 직장 다니는 것이 부끄럽다고 퇴직을 권유했다. 같은 공무원으로 승승장구하는 남편이 부러웠다.

하지만 그는 결혼 후 퇴직하지 않고 꿋꿋이 버텨, 결국 실력과 성실함으로 의성군 1호 여성사무관이 될 수 있었고, 4급 공무원으로 퇴직했다. 그가 의성군 공무원 세계의 유리천장을 깬 셈이다. 늦게나마 대학공부에도 도전했다. 사이버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지구경영학과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렇듯 그는 남들이 보기에는 외양적으로는 순탄하게 살아온 듯이 보였다.

하지만 그의 인생에는 지옥 같은 고통의 ‘6년’이 있었다. 그의 아들 둘은 착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다. 인물도 좋고 공부도 잘하는 큰아들은 장래를 위해 안동에 있는 중학교로 진학했다.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간 큰아들이 학교폭력의 대상이 되었다. 착하기만 했던 큰아들은 친구들의 놀림과 폭력으로 만신창이가 되었고, 몇 번이나 자살하려고 시도했다. 공부는 내팽개치고, 학교에 가지 않고, 오락실에서 게임에 빠져 살았다.

그가 울면서 매달려도 아들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다. 6년을 그렇게 살면서 그 자신도 만신창이가 되었다. 응급실에 실려 가기를 여러 번 했다. 그때 우연히 집에 온 홍보지를 보았다. 그 홍보지에 실린 수련 체험기를 보니 마치 자신의 이야기 같았다. 그 길로 뇌교육명상센터에 찾아갔다.

“원장님이 기진맥진한 저를 보더니 활공을 해 주셨어요. 아무 말씀이 없으셨어요. 그냥 얼굴만 봐도 딱하게 보였나 봐요. 활공을 받는데 눈물이 계속 나왔어요. 하염없이 울었어요. 한참 울고 나니까 원장님께서 내일부터 수련하러 나오라고 했어요. ‘수련’이 뭐냐고 물었더니, ‘그냥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하시면 된다’고 하셨어요.”

그는 이어 말했다. “다음날부터 뇌교육명상 수련을 시작했는데, 신나게 소리를 내면서 몸을 두드리고 기체조를 하고 나니까 속이 다 시원했어요. ‘아~ 이제 살겠다’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상황은 변한 게 없는데 기분이 달라지는 게 신기하고 좋았어요.”

그의 마음속에 있던 응어리가 녹아내린 것은 심성교육을 받았을 때였다. 그는 자신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작지만 있었던 남아있던 부모님에 대한 원망과 지금 상황에 대한 분노와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섭섭함을 모두 풀어낼 수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자신으로 인해 비롯되었음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만났다.

김월선 대한노인회 경상북도 경로당 광역센터장은 경로당을 다니면서 행복경로당 만들기 교육 등 여러 가지 교육을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경북의 23개 시·군을 누빈다. [사진제공=김월선]
김월선 대한노인회 경상북도 경로당 광역센터장은 경로당을 다니면서 행복경로당 만들기 교육 등 여러 가지 교육을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경북의 23개 시·군을 누빈다. [사진제공=김월선]

그러자 아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갈 마음의 힘이 생겼다. 진심을 담아 ‘사랑한다’라고 말하며 안아주자, 아들 둘은 엄마의 마음을 받아들였다. 꾸중하고 나무라기만 하던 엄마가 아니라, 친구 같은 엄마가 되기로 마음먹고, 아침에 두 아들의 다리를 주물러 주고, 꼭 껴안아 주면서 깨웠다.

그러던 어느 날, 큰아들이 말했다. “엄마가 다니는 데가 어디야? 나도 가면 안 돼요?” 고등학교 3학년인 큰아들은 그날로 뇌교육명상을 시작했다. 그리고 한 달 뒤 아들은 엄마가 받았던 심성교육에 갔다. 심성교육장에서 아들은 지난 6년간의 억누르고 외면했던 마음의 고통을 쏟아내었다.

“아들이 손을 들고 앞으로 나갔대요. 사람들 앞에 나서는 애가 아닌데. 지난 6년 동안 자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리고 엄마를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엉엉 울면서 말했답니다.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교육장이 눈물바다가 되었답니다.”

심성교육을 받고 온 아들은 그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아들이 말했어요. ‘엄마, 저와 같은 청소년이 있어서는 안 돼요. 사람한테 제일 중요한 게 인성인데, 학교폭력 때문에 인성이 망가져서는 안 돼요. 그래서 마음먹었어요. 제가 인성교사가 될래요.”

아들은 사범대학에 가겠다고 마음을 먹고, 얼마 남지 않은 대학입시를 위해 머리를 싸매고 공부를 했다. 대학 입학 면접을 볼 때도 자신이 당한 학교폭력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아이들의 인성을 깨우는 교사가 되겠다고 당당하게 말해 면접 교수가 감동했다고 한다. 지금은 교사가 된 아들은 자신에게 삶의 목적을 찾게 해 준 뇌교육명상에 감사함을 한시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김월선 대한노인회 경상북도 경로당 광역센터장이 경주 경로당에서 건강과 행복에 관한 강연을 한 후 어르신들과 함께 행복하게 웃고 있다. [사진제공=김월선]
김월선 대한노인회 경상북도 경로당 광역센터장이 경주 경로당에서 건강과 행복에 관한 강연을 한 후 어르신들과 함께 행복하게 웃고 있다. [사진제공=김월선]

그는 마스터힐러 교육과정을 받고, 국학과 뇌교육 전문강사로서 의성군에서 홍익정신과 뇌교육명상을 전하며 열심히 활동했다. 지금은 의성국학원장과 지구시민운동연합 의성지회장을 맡아서 홍익을 실천하고, 의성읍에 국학기공 동호회를 만들어 전국대회에 나가 수상을 하기도 했다.

2016년에 면장으로 40년 공무원 생활을 마쳤다. 의성군 안계면과 봉양면에서 면장을 했다. 면장을 할 때 홍익마을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고 열심히 뛴 덕에 사람들은 그를 홍익면장이라고 불렀다. 경북경찰청장과 의성군수로부터 홍익공무원상도 받았다. 퇴임 후에 그가 재임 당시 만들었던 봉양면 문화체육센터를 운영할 사람이 없어 부탁이 와서 1년간 맡기도 했다.

그리고 작년에 그는 대한노인회의 경북경로당 광역센터장을 맡게 되었다. 경북에는 270만 도민 중에서 52만 명, 19%가 65세 이상 어르신이고, 8,011개의 경로당이 있다. 52만 명 어르신들의 건강과 행복을 도와주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도지사님이 행복 경북 만들기에 집중하고 계세요. 경북경로당 광역센터에서도 ’행복경로당 만들기’ 사업에 주력하려고 합니다. 경로당을 다니면서 어르신 건강과 행복, 특히 120세 인생에 관한 강의를 많이 하는데 어르신들이 정말 좋아하십니다.”

김월선 대한노인회 경상북도 경로당 광역센터장은 경북에서 행복한 경로당 모델을 만들어서 전국으로 전파하여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사진=김경아 기자]
김월선 대한노인회 경상북도 경로당 광역센터장은 경북에서 행복한 경로당 모델을 만들어서 전국으로 전파하여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사진=김경아 기자]

경로당을 다니면서 행복경로당 만들기 교육 등 여러 가지 교육을 하느라, 그는 눈코 뜰 새 없이 경북의 23개 시·군을 누빈다. 어르신들을 위한 교육을 담당할 인성강사를 매년 100명씩 양성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해 온 공무원으로서의 경험과 노하우, 국학 및 뇌교육 강사 활동이 지금 하는 일에 크게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한다.

“경북에서 행복한 경로당 모델을 만들어서 전국으로 전파하고 싶습니다. 노인이 아니라 ‘어르신’이 되셔야 합니다. 얼이 커서 어른이 되고, 그 얼이 신선의 경지까지 커진 분을 ‘어르신’이라고 합니다. 모든 분이 어르신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될 수 있고요. 그래서 ‘어르신이 되는 교육, 어르신으로 사는 교육’을 통해 행복한 경로당,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는 매일 인시(새벽 3시~5시)에 일어나서 정성수련(절)을 한다. 그리고 사무실에서나 짬이 날 때 명상을 하고, 푸시업으로 근력단련을 한다. 그는 자신의 인생 2막의 목표를 ‘죽을 때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으로 삼기로 했다고 한다. "저는 다른 사람들이 기대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슴 속에 있는 영혼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고, 그 일을 하다가 죽어도 절대 후회하지 않을 자신과 모든 사람에게 이로움을 주는 꿈과 희망으로 열정적인 제2의 인생을 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120세 인생을 목표로 정한 김월선 센터장은 앞으로 남은 60년을 홍익하며 어르신이 되는 삶을 살 것이다. ‘어르신의 문화’를 우리 사회에 꽃피우고, 자신도 ‘어르신’이 되는 홍익사회를 만들겠다는 그의 얼굴에는 열정과 희망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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