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회 창립 92주년 기념식 개최
신간회 창립 92주년 기념식 개최
  • 문현진 기자
  • moon_pt@naver.com
  • 승인 2019-02-17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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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2월, 좌우익 세력이 합작한 국내최대 항일운동단체

(사)신간회기념사업회(회장 강지원)는 2월 15일(금) 서울YMCA회관에서 150여명의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신간회 창립 92주년 기념식'을 개최하였다. 행사는 신간회 강령 및 약사 낭독, 기념사, 참석 내빈 축사에 이어 청소년 대표의 선열께 드리는 감사편지 낭독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기념식에는 오진영 서울지방보훈청장, 이상복 월남이상재선생기념사업회장, 나중화 광복회 부회장, 김인복 서울YMCA이사장, 서경덕 전 연암대 총장, 최진 전 주중공사, 민승 김상옥의사기념사업회장, 이건흥 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공동대표, 이문원 전 독립기념관장을 비롯한 시민과 학생이 참석했다. 

강지원 회장은 기념사에서 "현재 대한민국은 근대화의 주체인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을 포함해 수많은 좌우세력이 갈등하고 있다. 민족의 올바를 미래를 위해 이념, 지역, 계층, 성별, 세대를 초월에 절대독립의 의지를 모은 '신간회' 항일선열을 본받자."고 말했다.

신간회 창립 92주년 기념식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신간회기념사업회]
신간회 창립 92주년 기념식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신간회기념사업회]

신간회(新幹會)는 일본제국주의로부터 조선의 독립을 위해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이 합작하여 결성한 대표적인 항일단체이다. 신간회는 안재홍, 이상재, 신채호, 신석우, 백관수, 유억겸, 권동진 등 당시 좌우익 인사 34명이 주축이 되어 1927년 2월 15일 창립했다. 

창립 당시 민족지도자이자 조선일보 사장이었던 이상재 선생이 회장, 천도교 원로 권동진선생이 부회장으로 선출됐다. 국내외 140여 개의 조직과 4만 여명에 이르는 회원들이 독립운동은 물론이고 각계각층의 사회운동을 지원하였다.

신간회 조직 강령은 ①조선민족의 정치적·경제적 해방의 실현 ②전민족의 현실적 공동이익을 위하여 투쟁함 ③모든 기회주의 부인 등이었다. 이러한 강령을 실천함에 있어서 민족적·정치적·경제적 예속의 탈피, 언론·집회·결사·출판의 자유의 쟁취, 청소년·여성의 형평운동 지원, 파벌주의·족보주의의 배격, 동양척식회사 반대, 근검절약운동 등을 전개했다.

평안북도 서북부에 위치한 신의주에서 신간회 회원들이 창립 1주년을 맞아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사진=신간회기념사업회]
평안북도 서북부에 위치한 신의주에서 신간회 회원들이 창립 1주년을 맞아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사진=신간회기념사업회]

1929년 11월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신간회는 진상조사단을 파견하고 일제에 대해 학생운동의 탄압을 엄중 항의했다. 또한 이를 계기로 독립운동을 지향한 민중대회를 열 것을 계획했다가, 조병옥·이관용·이원혁 등 주요 인사 44명이 일경에 피체되었다. 피체된 인사 가운데 조병옥 등 6명은 실형을 받아 신간회의 뿌리가 흔들리게 되었다.

신간회 내부적으로 민족주의 진영에게 주도권을 빼앗긴 데 대해 불만이 높았던 사회주의 진영은 신간회의 주요 간부들이 투옥된 사이를 이용하여 해산운동을 벌였다. 결국 1931년 5월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에서 대의원 77명이 참석한 가운데 해소를 결의함으로써 발족한 지 4년만에 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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