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벤자민학교 가도 돼?"
"엄마, 나 벤자민학교 가도 돼?"
  • 윤현숙
  • heonjukk@naver.com
  • 승인 2018.12.20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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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윤현숙 씨 (벤자민인성영재학교 학부모)

딸 효정이는 내 나이 마흔여섯에 얻은 첫 아이다. 세상에 어느 아이인들 귀하게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있을까만 늦은 나이에 어렵게 품에 안은 아이라 내게는 더 없이 귀하고 소중한 아이였다. 우스개 소리삼아 내가 이 세상에 와서 제일 잘 한 게 있다면 그건 이 세상으로 효정이를 불러낸 것이라고.

하나밖에 없는 귀한 딸이니 잘 키워야지 하는 욕심을 들어가기 시작했다. 다섯 살 때부터 한글은 따로 배울 필요가 있겠냐면서 한자부터 가르치기 시작했고, 초등3학년 때인가 한자 4급도 땄으니 얼마나 다그치며 가르쳤을까. 여섯 살부터는 피아노학원에도 보냈다. 영덕도서관에 있는 동화책은 거의 다 빌려다 읽어주었을 정도다. 그래도 양이 차지 않아 책장마다 효정이 책으로 가득 채웠다. 한자 좀 일찍 가르치고 책 좀 많이 읽어 주었다고 그리 나빴을까 마는 문제는 아이가 좋아서가 아니라 나의 욕심이 끝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잘 키우고 있다는 자기만족에 은근히 자랑도 하고 다녔으니,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움에 얼굴이 후끈 뜨거워져 온다.

벤자민인성영재학교 4기 서효정 학생의 어머니 윤현숙 씨. [사진=김경아 기자]
벤자민인성영재학교 경북학습관 4기 서효정 학생의 어머니 윤현숙 씨. [사진=김경아 기자]

어릴 때 효정이는 유난히도 고집이 센 아이였다. 평소에는 순한 아이가 한 번 고집을 부릴 때면 감당이 안 되어서 결국에는 매를 들게 되고 둘이서 함께 울면서 끝을 맺곤 했었다.

여섯 살 무렵인가 그날도 고집을 피우기 시작해서 나도 똑같이 힘으로 제압하고자 했다. 그랬더니 울면서 ‘엄마, 죽어버려. 엄마 죽어’ 악을 쓰면서 우는데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나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우리 둘은 몸으로 뒤엉켜 싸웠다. 그런 효정이가 죽어버리겠다고 창문으로 뛰어 가면서 우리 싸움은 끝이 났다. 내가 받은 충격은 대단했다. 여섯 살 아이 입에서 죽겠다는 소리를 하다니, 내가 뭘 그리 잘 못 한 걸까? 그날이 내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나에게는 삶의 전환점이 되었으니, 효정이가 엄마를 한 방 크게 먹인 셈이다.

하늘의 도우심인지 아파트에서 주민화합 윷놀이 대회가 있었다. 거기서 상으로 받은 책이 ‘아이 안에 숨어 있는 두뇌의 힘을 키워라’였다. 평소 책읽기를 좋아하던 터라 그냥 습관처럼 읽기 시작했는데,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아하, 맞아! 이렇게 키우면 되겠구나.’하고 한 줄기 빛을 본 느낌이었다. 간단했다. ‘예절, 정직, 성실’로 아이를 복 받는 체질로 키우면 되는 거였다. 책을 읽고 나서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다. ‘어떻게 하면 이 책대로 아이를 키울 수 있나요?’ 태어나서 제일 아름다운 질문을 한 것 같다.

뇌교육으로 아이는 바뀌는데 엄마는 그대로였다. 엄마 말 잘 듣는 아이가 착한 아이라는 고정된 틀이 너무나 견고하여 아무도 함부로 건드릴 수가 없었다. 그 틀 안에서 효정이는 분명 착한 아이였다. 그 틀을 깨고 나오고자 조심스레 문을 두드린 게 벤자민인성영재학교(이하 벤자민학교) 입학이었다.

지나가는 말투로 ‘엄마, 나 벤자민학교 가도 돼?’라고 했다. 지난해 가 보지 않겠냐고 권했을 때 아빠의 반대도 있었지만, 효정이도 여고에 대한 로망이 있다고 했다. 여고에 가서 정말 열심히 공부 해보겠다고 기숙사에 들어가기 까지 했던 아이라 다소 의외였다. 어떤 말이든지 쉽게 잘 하지 않는 아이라 아마 며칠을 끙끙대며 고민을 했을 터였다.

어렵게 선택한 벤자민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벤자민학교 교육과정의 중추는 ‘뇌교육’이고, 뇌교육의 핵심은 ‘체험’이었다.

지식을 주입시키는 지식 콘텐츠가 아닌 체율‧체득 원리를 바탕으로 교실과 교과목수업, 숙제, 시험, 성적표가 없었다. 3개월 이상 아르바이트하는 것만 빼고 모든 것이 자율이었다. 또 스스로 시간표를 짜고 계획을 세운다. 많은 멘토가 있어 원하면 만남도 이루어질 수 있었다.

주입식교육에 익숙한 아이는 갑자기 달라진 환경에 당황하는 것 같더니, 잠을 자기 시작했다. 한 달은 잠만 내리 잔 것 같다. ‘이대로 두어도 될까?’ 초조와 혼란스러움에 빠질 무렵 빵집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시력이 안 좋은 분의 눈이 되어 글을 읽어 드리는 아르바이트와 성당에서 피아노 반주로 봉사활동도 하면서 벤자민학교 학생들이 하는 활동은 다 했다.

성실히 수행하는 효정이를 보면서 또 다른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전에 강아지 목에 줄을 매고 말뚝에 묶어서 키운 적이 있었다. 말뚝을 뽑고 줄을 끊었는데도 그 강아지는 말뚝 주위만 맴돌 뿐 멀리 가지 못했다. 벤자민학교 일 년 동안 효정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엄마, 공부를 하지 않으니 불안해’라는 말이었다. 일 년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주어졌음에도 더 멀리 나아가지 못하는 아이를 보면서 ‘엄마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라는 틀에 맞추어 키운 것에 뒤늦은 후회를 했다.

‘부모의 자리보다 더 위대한 자리는 없다’는 말은 ‘아이 안에 숨어있는 두뇌의 힘을 키워라’(이승헌 저) 책 서론에 있는 말이다. ‘부모는 아이의 스승이 되어라’라는 말과 함께. 효정이를 바라보면 내가 너무나 빤히 보이는 것이었다. 효정이가 꿈을 찾는 벤자민학교 일 년이었다면, 나는 나를 돌아보는 성찰의 일 년을 보낸 셈이다.

이제라도 용서를 구하고 싶다. 엄마 눈높이와 틀 때문에 상처 받았을 효정이의 영혼에게. 엄마에게 착한 딸이 되려고 부단히 애쓰며 힘들었을 효정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효정아! 이제 엄마의 말뚝은 뽑아버리고 더 멀리 더 높이 뛰어 날아올라 봐. 세상은 너무나 아름답고 넓단다.

최근 벤자민인성영재학교 학생들의 생생한 성장스토리와 함께 우리 학부모와 교육계에 대한민국 교육변화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진 ‘대한민국에 이런 학교가 있었어?’라는 책을 읽었다. 벤자민학교를 다닌 딸과의 1년을 돌아보며, 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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