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김연아가 아니다. 너는 4분 8초 동안 숨죽인 대한민국이다. 너는 11번을 뛰어오르는 대한민국이고 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한민국이다. 너는 1명의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을 응원합니다. 대한민국 LPG E1"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피겨선수 김연아가 광고에 등장했다. '김연아(Yuna Kim) 선수 응원영상(from E1)'이라는 제목의 33초짜리 광고다. 얼음 위를 가르며 달리고 또 점프하는 김연아의 모습 위로 이 문장들이 하나하나 차례로 떠오른다.

▲ (위) 김연아 선수가 모델로 있는 LPG수입회사 E1의 기업 이미지 광고 한 장면
(아래) E1의 광고에 반대하며 만들어진 누리꾼의 김연아 선수 영상 [유튜브 화면 캡쳐]

 이 영상은 김연아 선수가 전속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E1의 기업 이미지 광고이다. 국내 최대 LPG 수입회사인 E1은 소치 동계 올림픽으로 관심이 집중된 김연아 선수를 광고 전면에 내세웠다. 이와 함께 광고 속 '대한민국'이라는 단어를 무려 7번이나 노출시켰다. 올림픽 시즌에 맞춰 자사 모델을 통해 최대한 E1이 애국하는 기업이라는 점을 강조하겠다는 속셈이다.

 하지만 이 광고는 누리꾼들의 빗발치는 항의와 원성을 사고 있다. 국민 선수인 김연아를 모델로 왜곡된 국가주의를 강조하는 광고라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광고는 조회 수 42,000여 건에 영상에 대한 반대나 불만을 담은 댓글 142개가 달렸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한 누리꾼(유튜브 아이디 Olive Oh)은 'Sochi 2014 Yuna Kim - 당신은 김연아입니다'라는 제목의 패러디 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공개했다. 조회 수는 이미 원래 광고의 4배에 달하는 158,000여 건에 이르렀다. "당신은 대한민국이 아닙니다…당신은 김연아입니다"라는 내용의 이 영상에는 댓글도 칭찬 일색이다.

 비슷한 상황은 소치 올림픽 현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스피드 스케이팅 이승훈 선수는 지난 8일 남자 5,000m 경기가 끝난 직후 언론의 인터뷰 요청에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남긴 채 사라졌다. 언론들은 일제히 '예상 밖 졸전' '이승훈 부진' '메달은커녕 10등 안에도 못 들어'와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이승훈 선수는 이날 경기에서 12위에 올랐다.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는 15일 열린 여자 1,500m 결승에서 1위를 달리다가 중국 선수에게 밀려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경기 직후 우리나라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심 선수는 "많은 분들이 금메달을 기대하셨는데 기대에 못 미쳐 죄송하다"고 말했다. 열일곱 살에 세계 2위에 오른 선수의 입에서 나온 겸손한 한 마디였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그 어느 나라 선수들보다 뛰어난 것임에 틀림없다. 13억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과 막상막하의 대결을 펼치고, 컬링 경기장이 1,000개나 있는 캐나다와 경기해 아깝게 역전패했다. 우리나라 인구는 5천만 명이고 컬링 경기장은 전국에 딱 두 곳뿐이다. 그럼에도 열악한 환경을 뛰어넘어서 집념과 의지로 세계에 맞서는 당당한 선수들의 모습은 성패를 떠나 그 존재만으로도 국민에게 큰 힘이 된다.

 김연아 선수에게 더 이상 개인을 지우고 국가이기를 강요하지 말자. 더는 금메달이 아니라는 이유로, 나아가서는 메달을 따지 못했다는 이유로 선수들의 입에서 '죄송하다'는 말이 나오게 하지 말자. 우리 선수들은 이미 충분히 자랑스럽고 충분히 뛰어나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이처럼 국민에게 힘을 주고 희망을 주는 이들이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에서 임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