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사이의 숨바꼭질이 끝을 모르고 이어지고 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위안부 피해 사실 부인, 야스쿠니(靖国) 신사 참배, 안중근 의사 논란 등 제 주장만 펼치는 일본 정부에 대해 한국 정부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장면 하나,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2일(현지시각)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제44차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다보스포럼)에서 '창조경제와 기업가 정신'을 주제로 개막연설을 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 예고에 없던 인물이 등장했다. 바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이다. 그는 예고 없이 연설장에 나타나 무대 맨 앞줄에 앉았다. 불과 5m 정도밖에 되지 않는 거리를 두고 아베 총리는 15분간 이어진 박 대통령의 연설을 들었다.

▲ 박근혜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제44차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일명 다보스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장면 둘,
 아베 총리는 같은 날 오후 다보스포럼(박 대통령과 다른 세션) 기조연설을 통해 "(지난해 12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것은) 나라를 위해 싸운 분들에게 존경을 표하고 명복을 비는 것은 세계 어느 나라의 지도자들이나 다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고 23일 일본의 복수 언론들이 전했다.
 아베 총리는 "(한국과 중국 등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반대, 안중근 기념관 등) 한·중과 일본 간에는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며 "흉금(胸襟)을 털어놓고 정상 간의 논의가 필요하다. 대화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고 했다.


 스위스에서 일어난 두 장면을 통해 아베 총리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아베 총리는 자신은 잘못이 없고 한국과 중국 측이 문제를 만들고 있다는 의중을 에둘러 표현했다.

 아베 총리는 세계 제2차 대전의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것에 대해 "국가 지도자로서 의무"라 표현했다. 이 표현이 걱정이 되었는지 "추도 대상은 일본군만이 아니라 세계 모든 전쟁의 희생자들"이라며 변명했다. 여기에 "흉금을 털어놓고 대화하자"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행동에 문제 될 것은 없으며 언제든 대화의 의사가 있는데, 한국과 중국이 그것을 꼬투리 잡고 대화에 나서지 않고 있다고 점을 둘러서 비난한 것이다.

 이는 아베 총리의 적극적인 언론플레이가 한몫했다. 박 대통령과 겹치는 시간이 없었던 아베 총리는 당초 오후 세션 기조연설을 할 예정이었으나 오전 세션 박 대통령의 기조연설 세션에 참석했다. 일본 복수의 언론이 밝힌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갑작스럽게 일정이 당겨졌다. 다른 하나는 여성의 사회 참여 관련 행사에 참석할 예정인데 이를 위해 여성 대통령인 박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가기로 했다는 것.

 아베 총리는 이에 대해 일본 니혼TV와의 인터뷰에서 "아쉽게도 박 대통령과 악수할 기회가 없었다"고 말했다. '나는 이렇게 적극적으로 한국과의 소통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한 마디였던 것이다.


 숨바꼭질을 할 때 어린아이들은 웅크리고 앉아 양손으로 눈을 가리고 가만히 있는다. 내가 안 보이니 남들도 내가 안 보이리라는 어린 생각이 빚어낸 상황이다. 아베 총리의 행보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은 듯하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도, 안중근 의사를 두고 벌인 설전(舌戰)도 내가 문제가 아니라면 남들에게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어린 생각에 따른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얼이 어린 사람을 어린이, 얼이 큰 사람을 어른, 얼이 커져서 신(神)과 같이 된 사람을 어르신이라 한다. 얼이 아직 커지지 못한 일본을 언제까지나 탓할 수만도 없는 문제다. 한민족을 '얼의 민족'이라고 하지 않던가. 동북아 정세는 물론 지구촌의 평화를 위해 일본보다 더 얼을 차린, 어른스러운 우리나라의 선택이 더욱 중요한 시기이다.